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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결혼식에서 만난 아내

오랜 사이에도, 가끔은 설렌다

by 피터팬


서울 삼청각.

푸른 잔디 위에 하얀 의자들이 나란히 놓이고,

테이블마다 작은 꽃병과 코스요리가 하나씩 자리 잡고 있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햇살은 낮게 깔려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얼굴을 보자고 약속한 이후,

이번 달의 만남은 친구의 결혼식을 겸해 이루어졌다.


굳이 따로 약속을 잡지 않아도

이런 자리는 자연스럽게 핑계가 되어주니까.


예식 시작 10분 전쯤,

식장 입구에서 아내를 만났다.


무채색 옷차림.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귀 뒤로 자연스럽게 넘긴 모습.


멀리서도, 단번에 알아봤다.


“잘 찾았어?”

“응. 처음 와봤는데, 예쁘네.”


우리는 나란히 의자에 앉았다.


서로 말을 아끼는 사이.

그러나 말이 없어도

무언가 흐르고 있는 시간.


결혼식이 시작되고

신랑 신부가 입장했다.


아내가 내 팔을 툭 건드렸다.


“오빠, 신부 드레스 예쁘다.

예전엔 이런 거 잘 몰랐잖아?”


“지금도 몰라.

그냥... 네가 입었던 건 기억나.”


“거짓말.”

“진짜야.”


아내가 작게 웃었다.


그 웃음 하나에,

괜히 가슴이 조금 내려앉았다.


예식이 끝난 뒤,

신랑 신부는 테이블을 돌며 인사를 다녔다.


드레스를 한 손에 살짝 들어 올린 신부가

조심스럽게 잔디밭 위를 걸었다.


나는 사진을 찍어주느라 여기저기 불려 다녔다.

누구는 가족끼리,

누구는 친구들끼리,

누구는 둘이 같이.


그 틈에서

아내는 말없이 내 뒤에 섰다.


아무 말 없이,

그저 같이 있었다.


우리는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
지인들과 함께 둘러앉았다.


테이블 위엔 식사가 차례로 놓였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야, 진짜 오랜만이다.”

“요즘은 뭐 하냐?”
“서울이랑 제주, 너무 멀다 진짜.”
“결혼식 아니면 언제 보냐, 우리.”


모두가 웃었지만,
그 말들이 낯설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
서로 잊지 않았다는 듯 건네는 농담.
그리고 그 사이에 앉은 우리.


별 얘긴 아니었지만,

그 ‘같이’가 중요한 날이었다.


그리고 사람들 하나둘 빠져나간 뒤,

나는 예식장을 꾸민 꽃들 중 남은 것들을 조심스레 뽑았다.


흔한 장미 몇 송이,

흰 안개꽃 조금,

리시안셔스 몇 개.


작고 엉성한 꽃다발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오늘 하루치 기념품.”


아내는 그 꽃을 받아들고

잠깐 웃었다.


그냥 그뿐이었다.


그날,

결혼식은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였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설레었다.


우리는 이미

10년 전에 결혼을 했고,


지금은

서로의 하루에 익숙해진 사이지만,


그날 그 자리에서는

잠깐,

정말 잠깐,


내가 다시

누군가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한 번 더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지금 이 꽃다발을 들고 있는


아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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