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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하지만 은근 불편했던 편의점

- 위생팩 찾으러 삼만리

by Cha향기

▮ 편의점에서 파스를 샀다.

온몸에 쑤시지 않는 곳이 없었다. 움직이기만 해도 절로 아, 아, 소리가 났다. 곰 만한 아들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했더니 근육통이 왔다. 손이 부어 주먹도 제대로 쥐어지지 않았다. 그런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남편도 있으며 활보쌤도 다섯 분이나 있지만 그 상황에서는 내게 아무런 힘이 될 수 없었다. 코로나와 독감 유행이 간병하는 영역에 사각지대적인 애로를 던지고 말았다. 중증환자 아들을 병원에서 독박 간병하는 것이 감옥에 갇힌 격이었다. 삶의 전쟁터에서 나 홀로 몸무림 치는 중이었다.


언젠가부터 편의점에서도 간단한 의약품을 판매하고 있다. 편의점에서 파스를 구입했다. 온몸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였다. 파스 케이스에 있는 설명을 보고, 파스가 시원하게 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소염 진통제라는 걸 알았다. 염증을 완화하고 통증을 줄여준다고 적혀있었다.


잔병치레를 거의 하지 않는 나는, 어쩌다 먹는 약의 효과가 즉방으로 나타난다. 2021년에 연말정산을 하기 위해 국세청 자료를 다운하여 살펴보던 중이었다. 한 해 동안에 내 이름으로 지출한 의료비가 '0원'이었다. 병원에 갈 일도, 약을 사 먹을 일도 없었던 것이다. 반면에 남편과 아들의 의료비 지출내역은 파노라마처럼 화려하고 길었다.


파스의 효능은 비교적 건강한 내게 금방 나타났다. 온몸에 붙인 파스가 통증을 완화시켰다. 아들의 체위 변경을 위해 작은 키를 더 뽑아보려고 안간힘을 쓸 때 허리에 무리가 갔던 모양이었다. 평생 처음으로 허리에 통증을 느꼈다. 그런데 파스를 붙이고 났더니 그 통증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프면 의학의 도움을 지체 없이 받으며 살아야 하는 게 맞다. 바야흐로 AI시대에, 미련하게 그냥 참거나 버티며 살게 아니다. 한낱 파스가 나의 고통을 덜어주었다. 그 파스가, 당장 달려와서 나를 도와줄 수 없는 남편보다 나았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 면도기를 샀다.

아들은 털북숭이다. 온몸이 털이다. 가슴에도 털이 났고 팔다리에도 털이 부숭부숭 났다. 아들이 털북숭이라 목욕시킬 때 좋았다. 바디워시를 바른 후에 여러 번 잘 닦아 내는 침상 목욕을 하는 데 제격이었다. 맨살이라면 각질이 일어나서 목욕시키기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아들은 수염이 유난히 많이 난다. 하얀 피부에 웬 수염이 그렇게 많은지... 하루만 면도를 하지 않아도 금방 산도적 같은 모습이 된다. 그래서 야간 근무를 마친 활보쌤은 아침마다 면도를 반드시 해 준다. 면도를 끝낸 후에 면도기를 분해하여 청소한 후에 그 부품들을 말려둔다. 그다음 날 아침에 그 부품을 다시 조립하여 면도를 해주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은 값비싼 B라운 면도기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병원에 미처 챙겨 오지 않았으니 우리 집에 B라운 면도기 있다 한들 뭐 하겠는가?


그래서 편의점에서 일회용 면도기를 구입했다. 편의점은 참 편리한 곳이다. 면도기까지 구입할 수 있으니...


"00아, 면도하자. 너, 산도적 같아. 아무리 그래도 면도는 해야지."


예전 이발소에서 하던 것처럼 세숫비누로 거품을 내어 일회용 면도기로 면도를 했다. 면도를 하고 나니 아들의 얼굴이 훤해졌다. 아무리 중증환자라 해도 청결해야 하고 멋을 내야 하는 법이다. 엄연히 사회생활 중이니 말이다. 면도를 하고 나니 환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환자가 또 있을까?


▮ 편의점에 기본 의료용품도 있었다.

병원 내에 입점한 편의점이라 매장 밖에 의료용품을 따로 진열해 둔 매대가 있었다. 기저귀, 물티슈, 위생장갑, 위생팩, 슬리퍼, 소변통, 세수 대야 등등이 눈에 띄었다. 거기서 세숫대야와 깔개 매트, 위생 장갑 등을 구입했다.


그런데 내가 13년간 주구장천 구입해 왔던 브랜드가 아니었다. 깔개 매트의 부직포가 금방 밀리는 느낌이었다. 눈으로 봐도 비닐 커버 부분이 조잡해 보였다. 세숫대야는 마지못해 살 수밖에 없었다. 집에 그렇게 많은 세숫대야가 있지만 당장 필요하니 어쩔 수 없었다.


의료용품 매대에서 구입한 위생장갑이 말썽이었다. 그야말로 딱 한번 사용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조악했다. 이게 무척 얇고 재질이 허접하여 0.5회용 정도였다. 아들의 응가를 치울 때 위생장갑을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데 금방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것으로는 석션 한 번 해주고 버리는 정도로 딱이었다. 그 위생장갑을 끼고는 수건을 빨 수도 없었다. 그냥 곧바로 구멍이 나서 손가락에서 금방 빠져나왔다. 아, 그립다. 내가 줄곧 사용해 오던 크0랲 위생 장갑이여.


다시 편의점으로 갔다. 다행히 편의점 안쪽 진열장에 별도로 크0랲 위생장갑 (50매 들이)이 있었다. 그래서 위생장갑을 두 종류로 비치하여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석션용과 다른 용도로 구분하여 사용했다.


▮ 30 ×45cm 위생팩 사러 삼만리

수건을 빨 때나 간단하게 빨래를 해야 할 때는 편의점 의료용품 매대에서 샀던 위생장갑을 도저히 사용할 수 없었다. 차라리 맨 손이 더 나았다. 그러나 계속 물에 손을 담그니 금방 손이 거칠거칠해지고 손톱 부분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무장갑이 있어야 했다. 아, 집에는 여분의 고무장갑을 냉장실에 재놓고 사용하는 데... 그런 사소한 것 때문에, 남편더러 이것저것 챙겨 오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냥 이번에는 나 혼자 독박 간병을 끝내고 남편이라도 수고에서 제외시키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 것 하나 때문에 남편이 먼 길을 달려오면 비경제적이요 비합리적이다. 그것도 로비에서, 마약 주고받듯이 얼른 물건만 전달하고 떠나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편리하다는 편의점으로 갔다.


"혹시 고무장갑 있나요?"

"그런 건 없습니다."

"그러면 세프장갑은 있나요?"

"그런 것도 없습니다."

"아, 혹시 30 ×45cm 위생팩은 있나요?"

"없습니다. 더 작은 것은 있습니다."


내가 찾는 것이 없다. 편의점이지만 불편하다. 내게는.


"그런 건 병원 앞 의료기 용품 가게에 있을 거예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다시 병실로 올라가 패딩을 걸쳐 입은 후에 30 ×45cm 위생팩을 구하러 병원 밖으로 나갔다. 상주 보호자 팔찌를 낀 채로. 그 사이즈로 13년째 아들의 소변을 받아 내고 있다. 하루에 위생팩을 대략 15~20장 정도 사용한다.


"아, 크0랲 사장님은 뭐 하시는 거야.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이 제품을 줄기차게 사용하고 있는 데 감사 인사하러 한 번 와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나는 우스개 소리를 하곤 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알고 보면 그 제품의 안정성과 품질 때문에 사용했던 것이다. 단 한 번도 소변이 샌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제품 외에 다른 것은 써볼 엄두를 내지 않았다. 더군다나 의료기 용품 가게에서 구입하는, 들어본 적 없는 브랜드의 위생팩은 소변 받아 내는 용도로는 적합하지 않다. 다행히 집에서 여분으로 얼마를 챙겨갔기 때문에 며칠은 잘 버텼다. 그런데 그것이 소진되어 다시 구해야만 했다. 그 사이즈 정도 되어야 소변이 역류하지 않고 잘 받아진다.


패딩을 입고 병원문을 나섰다. 딴 나라에 온 느낌이었다. 사이렌을 시끄럽게 울리며 응급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건널목 앞에 대형 편의점이 보였다. 그곳에는 내가 찾는 위생팩이 있을 것만 같았다.


"30 ×45cm 위생팩 있나요?"

"그런 건 없습니다. 요 밑에 있는 의료기 상사에 가시면 구입하실 수 있을 겁니다."


몇 걸음 지나니 의료기 용품 가게가 있었다. 있긴 있었다. 그 사이즈가 있다는 것만으로 일단 반가웠다. 그런데 내가 애용하는 크0랲 제품이 아니었다. 꿩 대신 닭이라 하지 않던가? 길 찾기 앱을 켜보니 마트는 꽤 먼 거리에 있었다. 내가 찾던 브랜드 제품이 아니어도 잠시 동안만 사용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100매 들이 한 팩을 샀다.


그걸 사지 말았어야 했다. 비닐이 너무 얇아서 비닐봉지로서의 기능을 해낼지 의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이 소변을 누면 워낙 얇은 재질이라 소변이 비닐을 밀어 자칫하면 아들의 사타구니 밑으로 들어가려 했다. 아들이 조금만 힘을 주면 그게 터지기 십상이었다. 소변이 새면 문제가 커진다. 아들의 사타구니를 비누로 다 닦아주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패드와 침대 커버나 시트를 갈아야 하기 때문이다. 와상환자에게 제일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일은 소변이 새는 사태다.


내 염려는 적중했다. 하룻밤에 700cc 정도의 소변을 누기도 하는 아들이지 않았던가? 그게 터졌다. 아, 나 몰라. 온통 소변 범벅이 됐다. 아들을 씻기고 패드를 갈고 침대 커버와 시트를 다 갈아야 하는 난리 부르스가 벌어졌다. 거기 누구, 30 ×45cm 사이즈로 된 크0랲 위생팩 좀 사다 줄 사람 없나요?


크0랲 위생팩이여, 감사합니다.
13년간 좋은 품질을 잘 사용했습니다.
앞으로도 애용할게요.

[대문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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