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장 김치
자전거 사고로 하루아침에 세미코마 상태가 된 아들은, 수술 후 일주일 만에 후유증 증세가 나타났다. 다행히 자가 호흡은 돌아왔다. 만약에 생길지도 모를 응급한 상황을 대비하여 의료진을 구급차에 동반하여 포항에서 신촌 세브란스까지 단숨에 이송했다. 담당 주치의의 세심한 진료로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나 다시 포항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두개골 봉합 수술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이어 뇌압이 찬다며 션트시술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포항 병원 생활이 몇 개월 지나갔다. 아예, 포항에 원룸을 얻었다. 나는 휴직하여 아들 간병에만 매달렸다. 기약 없이 그런 삶을 계속 살 수가 없어서 집 부근으로 아들을 옮기기로 했다. 그래서 신촌 세브란스 재활병동으로 아들을 이송해 왔다. 실낱 같은 희망도 품지 못한 채 하루하루 전쟁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오늘 김장하는 날이야. oo이 엄마, 아빠야, 간병인한테 oo이를 맡겨놓고 김장 김치 좀 먹으러 와."
라고 시댁 작은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린 그때 주로 병원에만 있었다. 다른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작은 어머니댁은 신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은평구에 있었다.
작은 어머니에 대해 얘기를 하자면 시할아버지에게로 까지 올라가게 된다. 시아버지만 낳은 상태로 시할머니가 정신을 잃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시할아버지는 아이가 있는 다른 분과 결혼을 하셨다. 그러다 보니 시아버지에게는 배 다른 형제, 씨도 배도 연관 없는 형제들이 있다. 그중에 은평구 작은 아버지는 시아버지와는 배 다른 형제다. 옛말에 집안은 여자들 하기 나름이라 하지 않았던가? 작은 어머니들이 잘 들어오셨을 뿐 아니라 아버지와 성씨가 다른 댁의 작은 어머니들도 모두 정이 많고 우애가 좋으셨다. 특히 은평구 작은 어머니는 우리 시댁 칠 남매가 결혼할 때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죄다 참석하셨고, 시부모님 회갑, 칠순에도 빠지지 않고 오셨다.
시동생과 시누이들이 서울에 올라올 일이 있으면 여지없이 작은 어머니댁으로 들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싫은 내색 없이 따끈한 밥상을 차려내시고 교통비도 주셨다. 빠듯한 서울살이에 생활비를 쪼개어 조카들을 챙기고 나면 허리를 졸라매야 하셨을 것이다. 오죽하면 작은 어머니에 대한 미담을 글로 적었을까. 시월드 플렉스가 그 에피소드다. 그 글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23,000 뷰를 찍었다.
'시월드 플렉스'에서 발췌한 글이다.
나의 남편은 작은어머니에게 시댁 장조카다. 작은어머니는 시간을 내어 우리의 신접살이 집을 얻어주셨다. 그해 김장김치를 앙증맞은 장독에다 담아서 가지고 오셨다. 그때는 그게 얼마나 소중한 사랑인지 제대로 모르고 지냈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을 흉내도 낼 수 없는 걸 보면 무심하게 보낸 시간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사실, 나는 김장을 몇 번 하진 않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매년 김장 김치를 담가서 보내주셨다.
그리고 아들이 사고를 당한 이후부터는, 같은 노회 소속인 대형 교회에서 우리 가정 몫으로 매년 김장을 해주신다. 게다가 시댁 고모도 해마다 김장 김치를 한 통씩 해 주신다. 그런 김장 김치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 모든 재료를 시골에서 공수해 온 것으로 담근 김치라 맛이 다르다. 그럴 때면 우리도 극상품 과일을 준비하여 차에 실어드리곤 했다. 이렇듯 힘들고 어려울 때 먹거리가 한 몫한다.
시댁 김장을 몇 번인가 거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 어깨너머로 전라도식 김장 김치 담그는 법을 익혔다.
전라도식 김장김치는 이렇게 담근다.
- 건 청각, 쪽파, 갓, 새우젓, 멸치진젓, 찹쌀풀, 고춧가루, 마늘 등 재료를 준비한다.
- 절인 배추를 씻어 건진 후에 물기를 쏙 빼는 것이 특징이다. 어떤 때는 밤을 샐 정도로 배추의 물기를 뺀다.
- 말린 고추와 마늘을 찬밥과 함께 확독에 넣고 갈아 밑 양념을 만든다. 준비된 김치속 재료에 함께 넣어 잘 섞는다.
- 탈탈 털어도 물기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구덕구덕 해진 배추에 김치속을 골고루 펴 발라 김치를 담근다.
- 생김치 맛을 보존하기 위해서 숙성시키지 않고 그대로 냉장고에 넣는다.
전라도식 김장 김치는 하룻밤이 지나도 물기가 생기지 않는다. 김치 냉장고에 두면 처음 맛 그대로다. 전라도식 김치 묵은 지는 그 맛이 일품이다. 묵은지를 깔고 고등어조림을 하거나 김치찜을 하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김장하는 날은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서 정신이 없기 마련이다. 그런 날 우리가 들이닥치면 작은 어머니 맘이 분주해지실 것 같아 죄송했다. 작은댁에 도착하니 집안 가득 김장 재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간단한 겉절이를 하더라도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있으면 편한 법인데 작은 어머니 혼자서 김장을 하고 계셨다.
"먼저 찜질방에 좀 다녀와, 그러면 그동안 긴장했던 근육이 확 풀릴 거야."
작은 어머니는 우리를 찜질방으로 내몰았다. 사우나에 들어가니 온몸에 쌓인 피로가 솔솔 녹는 기분이었다. 세포들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사우나에서 돌아오니 김장은 거의 마무리되었다.
온 집안에 김장 김치와 수육 냄새가 가득했다. 그냥 침이 고였다. 잃었던 입맛이 김장 김치를 맛보지도 않았는데 되살아났다. 뭘 먹어도 맛있을 것 같았다. 작은 어머니가 정성껏 챙겨주시는 김장김치 겉절이에 싸 먹는 돼지고기 수육은 살살 녹는 맛이었다. 매콤해서 눈물이 난다고는 말하긴 했지만 사실은 감사함에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아무 걱정 말고 여기서 한숨 푹 자. 잠시 걱정 내려놓고..."
작은 어머니는 안방 침대를 기꺼이 내어 주셨다. 사양하던 남편이 스르르 침대에 눕는가 싶더니 이내 코를 골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 걱정을 내려놓고 아들과 어울려 지내는 꿈나라로 여행을 떠나버렸다.
작은 어머니는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같았다. 지친 우리에게 쉼을 챙겨주시고 싶으셨던 작은 어머니 마음이 오롯이 우리에게 닿았다. 우리에게 새로운 용기가 솟아올랐다. 이렇게 알뜰살뜰 챙겨주시는 작은 어머니를 봐서라도 맘을 다잡아야 했다.
우리가 마땅히 작은 어머니를 섬기고 공경해야하는 게 순리인데 작은 어머니가 조카 내외를 섬기다니 뭐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그래서 더욱 황송하여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그런 작은 어머니를 통하여 섬김의 본을 보았다.
예수님도,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왔노라."라고 하셨다. 그래서 스승인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도 하셨다. 또한 어린 소자를 인격적으로 대하셨다.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고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들 때문에 시끄러운 세상이다. 가진 자가, 높은 자가, 더 낮은 곳에 있는 자를 섬겨야 한다. 섬김을 받고자 하면 오히려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결국 섬긴다는 것은 다른 사람 아래 서서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under(아래), stand(서다), 가 합쳐지면 결국 understand(이해하다)가 된다.
작은 어머니는, 조카 내외가 기막힌 일을 당하여 진이 빠져 있고 맘이 아프다는 것을 이해하셨던 것이다. 섬김은 이해에서 출발하는 셈이다. 이해하면 섬길 수 있다.
조카 내외를
마치, 왕처럼 극진히 접대해 주신
작은 어머님은
작은 예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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