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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아'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 장아찌 혹은 피클

by Cha향기

장아찌는 소금으로 절이고, 피클은 식초로 절인다. 그런데 통칭하여 장아찌라고 일컫는다. 나는 식초, 설탕, 간장을 황금비율로 섞어 만든 '만능 장아찌 간장'을 이용한다. 우리 집 김치 냉장고에는 장아찌가 가득하다. 양파, 오이, 고추, 마늘, 마늘종, 깻잎, 명이나물, 돌산갓 장아찌가 있다. 마늘종 장아찌는 건더기만 건져서 갖은양념을 하여 무치면 또 다른 맛이 난다. 하다 하다 가지 장아찌도 담가두었다. 그 이야기는 '끝물 가지로 장아찌를 담그며'에 나와 있다. 장아찌는 간장과 소금물을 끓여 재료에 부었다가 우려낸 물을 다시 끓여 식힌 후에 부어야 하니 다소 번거롭다. 그에 비해, 피클을 만들 때는 만능 장아찌 간장을 붓기만 하면 그만이다.


나의 장아찌 레시피를 소개해본다.


- 야채를 잘 씻는다. 씻은 후에 잠시 식초 물에 담가두면 좋다.

- 물기를 제대로 빼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나는 주로 야채 탈수기를 이용한다.

- 만능 장아찌 간장을 야채에 붓는다. 한두 시간 후에 먹을 수 있는 것도(양파, 오이 등) 있고 3~4일 혹은 일정 시간이 지나야 먹을 수 있는 것도 있다. 그런 것은 검색해 보면 된다.

- 누름돌이 없으면 미니 접시를 이용하든지 200ml 들이 생수병에 물을 채워 눌러주면 그저 그만이다. 물론 접시나 병을 잘 소독해야 한다.(요즘은 누름돌이 장착된 발효 숙성 용가도 있다.)

- 마지막으로 라벨지에 담근 날짜를 적어둔다.

- 이렇게 담가둔 장아찌는 어느 때나 먹을 수 있다.

- 마늘종은 초봄에 나오는 부드러운 것을 구입하되 국산이어야 한다. 중국산은 끄트머리가 나무처럼 억세다.


[야채 탈수기]


장아찌만 있으면 닭가슴살이나 오리 훈제 등을 레인지에 데운 후에 함께 먹을 수 있으니 밑반찬 걱정 뚝이다.


[김치 냉장고에 가득한 각종 장아찌]

내가 장아찌를 종류대로 담그는 데에는 사연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일이다.




아들이 포항에 있는 대학교 내에서 자전거 사고를 당했다. 혼자 넘어졌는데 머리를 심하게 다쳐 사경까지 가고 말았다. 아들은 목숨을 건졌으나 의식도 없었으며 코마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잘 나가던 스무세 살 꽃다운 나이에 찬란했던 삶의 끈을 놓아버렸다. 우리도 일상을 내려놓고 아들에게로 달려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인공호흡기를 의지하여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것이 기적이었다. 자기가 호흡을 할 수 있기만 해도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처음 당한 일이요, 드라마에서도 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아픔 중의 아픔, 슬픔 중의 슬픔은 자식이 정신을 잃은 상황일 것이다. 자식이 시체처럼 누워 있는 모습은 차마 보기 힘든 일이다. 잘났던 아들, 쳐다 보기도 아까웠던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아들이었다. 아들은 우리에겐 빛나는 깃발이었다. 그런 아들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아들이 중환자실에 있으니 우리가 지낼 병실이 없었다. 타관 객지, 생면 부지인 곳이라 호텔에서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지인을 통하여 게스트 하우스를 소개받았다. 말은 게스트 하우스이었지만 호화 주택이었다. 어림짐작으로 50~60평대 아파트 크기였다. 앙증맞게 자그마한 빨간 우체통이 파란 대문에 달려 있었다. 그 우체통 안에 대문 열쇠가 놓여 있다고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비밀의 정원처럼 잘 가꿔진 마당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당가에 심긴 나무들은 물기가 반지르르했고 잔디도 싱싱해 보였다. 발코니 데크에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림 같은 집이었다. 그런 집이 바로 드림하우스다. 보기 드물 정도로 멋졌다. 포근하고 정겨웠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문 인방에 <실로아>라는 붓글씨 캘리그래피 현판이 걸려있었다. 문설주에 '여기에 드시는 모든 분들께 실로아 물처럼 흐르는 평화가 임하시길'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주인장은 우리 앞에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그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모른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아무개 씨가 제공한 집에 우리는 잠시 묵게 됐다.

성경에서 실로아(Siloah)는 예루살렘에 있던 못으로, "실로암"의 옛 이름이며 구약 성경에서는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 (사 8:6)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하며, 예루살렘 성 안의 주요 수원지였다고 한다.

정갈하게 정리된 베개와 이불, 깔끔한 주방이 우리를 진심으로 환영하는 듯했다. 거실 한쪽에 자리 잡은 진열장에는 세계 각국에서 공수해 온 다양한 차, 그리고 여러 종류의 커피 등이 즐비해 있었다. 주인장의 맘이 드러나 보였다. 안방 티비장에는 두꺼운 방명록이 있었다. 실로아에 머물렀다가 간 사람들이 잘 쉬었다 간다는 메모와 사인을 해두었다. 방명록에는 알 만한 유명인도 있었다. 우리도 방명록에 기록을 남겼다.


중환자실 면회 시간은 낮 12시, 그리고 저녁 6시, 하루 두 차례였다. 주검과 같은 아들을 단 몇 분이라도 보겠다고 선린 병원으로 달려가곤 했다. 아들 면회를 다녀오는 데는 거의 한두 시간 정도 걸렸다. 그런데 실로아에 와보면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보였다. 반들반들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냉장고 안에 새로운 반찬이 리필되어 있었다. 주인장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대문을 나설 때 이미 그 어드메에 와서 서있었을지도 모른다. 혹시 자동차 안에 있었을까? 그런 우렁각시가 또 있을까?


당시에 뭘 먹어도 모래를 씹는 것 같았고 별 맛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실로아에 있는 고추 장아찌는 얼마든지 먹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콤하면서도 감칠맛이 나는 고추 장아찌였다. 냉장고에는 여러 가지 야채로 만든 갖가지 장아찌가 있었다. 입에 맞는 것을 골라 먹으라는 의미였다. 장아찌는 밥도둑이다.


우리는 전쟁 중에 잠시 휴식하는 군인처럼 실로아에서 지냈다. 집을 떠나 있었지만 마치 내 집처럼 자유로웠다. 그동안은 1+1은 2라고 생각하듯 유도리 없이 내 삶만 잘 챙기며 살아왔었다. 그런 우리에게 실로아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본 적도 없는 우리에게 선뜻 자유와 먹거리를 제공해 주시는 그분은 천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다. 만약 그분을 알게 되면 우리가 더 부담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분은 현명했던 것 같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도 있지만 '베풂을 받는 사람마저 모르게 베풀라'는 모토를 가지신 분이었다.


쉼과 자유가 있는 공간, 보금자리가 가장 필요한 때였다. 때맞추어 그것을 제공해 주신 그분에 대한 감사는 눈을 감을 때까지 잊지 않을 것이다. 마음을 전할 길이 없어서 지인에게 간접적으로 우리 맘을 문자로 띄울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펼쳐질지 알 수 없는 캄캄한 터널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뭐든지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오던 우리에게 인생이란 것이 거대한 괴물처럼 달려드는 듯했다. 그럴 때 실로아를 통하여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실로아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을 뜨게 해 준 프리즘 같은 곳이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시는 분인지, 알 수 없지만 그분은 우리에게 대단한 것을 가르쳐 주신 분이다.


이웃이 힘들 때
손을 잡아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실로아에서 학습했다.
[실로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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