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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 밀 Oct 22. 2022

077 가족 31 - 명절

중년 남자의 잡생각


나에게 명절은

전혀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40년이 넘게

일 년에 두 번의 차례와

8번의 제사를 지내셨고,


매번 명절 때가 되면

혼자서 차례상을 차려야 하는

고통스러움을 호소하시며,

항상 아버지와 싸움을 하시곤 했다.


큰 집이 아니었음에도

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직 어린 큰 집의 사촌 형들에게

차례나 제사를 지내게 할 수 없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명절에

큰 집 사촌 형들이 방문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명절이나 제사를 지낼 때마다

한결 같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든

나의 생각은


‘난 절대 차례고, 제사고 지내지 않겠다’


였던 것 같다.



조상을 기리고자 하는 자리인데,

저렇게 다투고 싸우면,

오던 조상도 돌아가지 않겠냐..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생각은 그러했으나

워낙 아버지의 고집이 강하시기에

그게 가능할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긴 했었다.




내 나이, 30대 후반에

다가온 추석.


어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셔서

더 이상 차례와 제사를 지낼 수 없음을 선언하셨다.


암으로 오랜 기간 투병하셨고,

그 후유증으로 골다공증이며, 당뇨병이며,

온갖 병이란 병은 다 달고 사셨는데,

이제는 척추협착증으로 거동까지 불편해 지시자

‘No 차례’, ‘No 제사’를 선언하신 것이다.



아버지는 그럼에도 지내야 한다고 기시고,

나는 어머니도 아프신데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냐 하며,

아버지의 이기적인 마음에 화를 내고,


이렇게 차례와 제사를 지내면

난 영원히 결혼을 못할 거라고

어머니를 거든다.


아버지는 그런 며느리 필요 없다 하시고,

나는 내일모레 제가 40인데도

그런 소리를 하시냐며 대든다.



기나긴 싸움 끝에

아버지는

어머니와 나의 연합에 패배하시고,

결국 사촌 형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너도 다 컸으니,

제사와 차례를 가져가라 하신다.

(이제야 다 큰 사촌 형님의 나이가

지금 칠순이 넘었으니,

당시 환갑 즈음이었을 것 같다.)



그렇게 사촌형님에게 넘어간

제사와 차례는..

본인은 지내지 않겠다는

사촌형님의 선언과 함께

우리 집안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후

어머니는 이렇게 쉽게 없어질 걸

왜 40년을 넘게 지냈느냐며

또다시 아버지와 싸우셨던 것 같다.


기나긴 시간의 억울함이 있으셨으리라.


어머니의 긴 희생, 아버지의 고지식함.

이로 인해 오랜 기간 불행했던 명절.

이 안타까운 모습을 보며

난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싸! 이젠 결혼할 수 있겠구나!’




P.S.  차례와 제사를 안 지내기로 한, 그 해 겨울.

난 결혼을 하였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와이프는

당연히 제사나 차례가 없는 집으로

결혼을 왔거니 생각하겠으나,

와이프와 결혼하기 직전,

그 모든 것들이 없어졌고,

40년 간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투쟁을 이야기하면 약간 놀라는 눈치이다.

그러나,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실감은 못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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