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은 시작되었고, 아무도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 글을 읽은 누군가는 '당장 그만둬야 한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주 4일 출근과 집 앞 5분 컷이라는 달콤한 조건에 눈이 멀어버린 상태였다.
나는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는가'보다는 '얼마나 편하게 출근할 수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고, 그리고 폭설이란다. 폭설이면 그럴 수도 있지, 누구에게나 그런 날은 있으니까.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아량 넓은 사람이었던가 싶다. 진심으로, 나는 대단히 홀렸던 게 분명하다.
출근해서 멀뚱히 서 있던 시간이 40분쯤 지났을 무렵, 사무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도도한 고양이를 닮은, 세련된 커리어우먼과 같은 한 여성이 들어왔다. 그녀를 앞으로 '고영희 과장'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고영희 과장은 본래 타 지역에서 일하는 50대 과장으로, 이제 막 오픈한 이 지점을 돕기 위해 임시 파견되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와 나의 입사 동기가 뭘 해야 할지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 있는 걸 보고서야 첫 출근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고 했다. 그녀는 우리가 신입으로 오늘 첫 출근한다는 사실을 전혀 전달받지 못했다고 했다. 물론 나와 나의 입사 동기 역시, 그녀가 누구인지 어떠한 역할로 온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우리 또한 어떤 정보도 전달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서로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한 세 사람이 한 공간에 모여 각자가 '이 사람 누구야' 물음표를 띄우며 정보를 조립해 가듯 서로를 추리하는 상태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겼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한 일이었다.
고영희 과장은 “지시받은 거 있어요?”라고 물었고, 우리는 “아니요. 그냥 출근하라고만 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그럼 대표님 오시면 교육해 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표는 출근하지 않았다.(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출근한 첫 주 내내 단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갑작스레, 고영희 과장이 우리의 교육을 도와주기로 했다.
고영희 과장은 카카오톡으로 업무 관련 교육 자료라며 여러 개의 PDF와 한글 파일을 보내주었다.
“자료를 읽어보고, 참고해서 마케팅용 글을 작성해 보세요.”
그래, 글이라는 건 창의성이 필요한 작업이니까, 지나치게 세세한 지시를 주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타자를 두드리면서도, '신입 사원 교육이라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멍하니 생각했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교육'의 형태와 이 회사에서 제공하는 교육은 많이 달랐다. 하지만 직접 실무를 겪어보면서 배우는 일도 있으니까—
나는 또 스스로를 그렇게 다독였다. 그때부터 이미 납득되지 않는 순간들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고, 나는 첫 날부터 혼자만의 요상한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