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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 Oct 21. 2024

시와 필사, 매력적인 만남

시와 교감하는 필사


필사 좋아하시나요? 책을 읽다 보면 ‘이 부분은 그냥 읽고만 넘기기 아쉬운데’ 라거나 ‘어딘가에 적어두고 다시 보고 싶을 때 꺼내보고 싶다 ‘라고 생각해 본 적 없으신가요? 저는 책을 매번 읽을 때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줄을 긋거나 포스트잇으로 표시를 둔다고 해도 생각보다 찾아서 다시 보는 번거로운 작업을 잘 안 하게 됩니다. 그 표현을  또는 그 내용을 찾기 위해 다시 책을 다 읽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은 책을 읽는다고 모두 같은 부분에서 감동을 받거나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 동일하지 않지요. 그래서 ’ 본인’이 남겨두고 싶은 문구나 내용에 대해 원할 때마다 찾아 읽어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필요에 의한 기억 저장 장치로서의 역할이 바로 ’ 필사‘라고 생각합니다.




정보서나 실용서를 읽을 때보다 육아서를 읽을 때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 부분이나 현실 상황에 적용시키는 문장들을 적어두고 싶었습니다. 또한 위로의 말들을 읽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몇 번씩 되뇌어 읽다 사진을 찍어 두거나 메모를 해두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찾을 수 없다는 데 있었습니다. 정리력을 타고나지 못한 저로서는 도처에 산재되어 있는 기록들을 모으고 정리하는 게 어려웠어요. 기록도 하고 싶고 써보고도 싶었던 흔적들이 뿔뿔이 흩어져 온데간데없이 정작 필요할 때에는 찾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난간에 봉착했습니다. 다른 방법이 필요해!!  그렇게 필사를 시작할 노트를 새로 마련해 책을 읽을 때 노트를 옆에 두고 필요한 구절이 있으면 책의 제목, 작가, 출판사를 적고 필사한 날짜와 페이지까지 상세히 적어 필사를 했습니다. 못쓰는 글씨로 삐뚤삐뚤 써 내려간 기록이었지만 찾을 수 있고 한눈에 들어오는 점이 만족스러웠어요. 책을 읽으며 필사하다 보니 다른 필사도 하고 싶어 졌어요. 책을 읽다 보면 계속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나는 것처럼요. 서점에 나가 좋은 글귀들을 쓸 수 있는 ‘필사를 위한 책’을 사서 매일 한 장씩 쓰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직접 한 줄 한 줄 필사해보기도 했습니다.



[ 스스로 필사하고 인증하고 기록한 사진들 ]









다양한 장르의 책을 필사하면서도 한 번도 ‘시’를 필사해 보리라 생각지 않았습니다. 시와 시인은 제가 접하던 세계와 아주 다른 동떨어진 영역이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한창 코로나가 휩쓸고 지나간 뒤 심신의 피로가 바닥을 치고 또 치며 힘듦이 정점을 수십 번 찍고야 가족들이 사회로 나아가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어느 정도 팬데믹 이전의 시간으로 자리를 잡아갈 때쯤 sns를 통해 ‘창비’ 출판사에서 주관하는 ‘시 필사’ 북클럽을 만나게 되었어요. 정해진 시집 두 권을 구입해 매일 정해진 범위 안의 시를 읽고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 필사해서 인증샷을 올렸습니다. 매일 아침 가족들이 다 나가고 나면 시집과 노트를 들고 도서관을 향했습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고요한 도서관에서 시를 찬찬히 읽어보고 한 구절씩 필사를 하다 보면 다시 곱씹어 보는 시가 어찌나 달콤한지. 그 향기와 기분에 취해 하루에 출발이 행복했고 시집 두 권의 필사를 빠짐없이 마치면 보내주시는 선물까지 꽉 채워진 혼자만의 즐거움이었습니다.


[ 출판사 창비를 통해 참여한 ‘시’ 필사 북클럽 ]




혼자가 아닌 시 읽기, 필사, 마지막의 달콤한 마무리까지 한 달을 꽉 채운 행복과 더불어 기존에 알지 못했던 시와 시인을 만났던 일과 그토록 빠져들었던 시와 거리를 둔 채 살았던 아스라한 기억들이 다시 용솟음치는 흥분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시 필사 북클럽에 참여하며 조금씩 시와 더 밀착되어 갔습니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길을 걷는 순간에도 문득문득 시가 떠 오르는 경험도 하고 일부러 서점에 나아가 시집 코너에 들러 시집 하나하나를 열어보며 그날따라 마음을 사로잡은 시를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혼자 시집을 읽다 필사하는 것은 확실히 지속성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만난 작가님들 중에서도 책을 좋아하고 독서에 관한 정보들을 나누는 sns에서도 읽은 책을 필사해서 올려주는 글을 종종 보곤 했어요. 필사의 느낌을 나만 즐거워하는 게 아니구나 내심 반가웠습니다. 한 동안 놓고 있던 필사의 기쁨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책을 읽던 시간에 필사를 시작했습니다. 작은 공책에 너무 좋아하는 작가의 언어를 그대로 적어 나가면서 입으로 웅얼대는 시간은 아침을 여는 즐거움이 되어주었습니다. 완벽한 이해는 아니더라도 그 느낌을 온전히 전해받고 싶었던 필사가 혼자만의 조용한 힐링 포인트가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같이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대화를 나누 던 중 필사가 혼자 지속하기 어려워 많은 분들이 모임을 통해 필사를 이어가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다른 모임과의 연결고리를 가지는 분도 혼자 필사를 하며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었고 함께하면 시너지 효과가 나는 필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소심한 마음을 가진 터라 독서 모임이나 토론 모임이 있어도 참여도 못하고 바라만 보고 머뭇거리는 성향인지라 모임을 주관하라는 주변의 조언에도 쉽게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당장 실행을 위한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머릿속 고민은 계속되었습니다. 필사를 같이 하고 싶은데 과연 내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면 여러 사람이 즐겁게 필사를 같이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다른 필사 모임들에 대해 검색도 해보고 진행과정도 관찰해 보았습니다. 필사를 위한 책도 시중에 많이 나와있어 서점을 여러 곳을 다니며 필사 책을 보고 또 살펴보며 고민도 거듭했습니다.



필사 전문 서적은 아예 한쪽에는 필사를 위한 공간이 따로 있었지만 책을 펼쳐 글씨를 적는데 불편할 수도 있기 때문에 책을 꼼꼼히 한 장 한 장 넘기며 살펴보았습니다. 필사 책들은 구절이나 문장 등이 주로 적혀 있었는데 주제 별로 정리해두어 보기도 쓰기도 편해 보였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필사 도서들이 있어 놀랐고 나를 통해 필사를 시작하는 분들은 조금은 다르고 특별한 책으로 같이 읽어보며 필사하는데 즐겁게 함께할 수 있을까도 많이 고민했습니다.



다양한 책들의 이야기를 적어볼 수도 있고 ‘철학’이란 분야의 좋은 구절을 적어 놓은 필사책도 있었습니다. 아예 ‘논어’ 나 ‘도덕경’ 같은 책 한 권 자체를 필사하는 책도 시리즈별로 나와 있는 걸 보고 많은 분들이 다양한 내용들로 필사를 즐기고 있구나 느끼면서 필사 모임을 하고 싶은 흥분이 자꾸 들썩이고 있었습니다. 가을이 다가와서 그런지 서점에서도 시집에 대한 코너를 만들고 필사를 위한 노트까지 전시를 해 두었더군요. 그래! 가을이니까 시를 같이 필사해 보자! 그렇게 같이 필사하고 싶은 책을 찾아 또 여러 날을 헤매며 그렇게 고민하고 찾아보다 드디어 시를 필사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시’라는 장르를 콕 집어서 정해져 있는 책으로 필사를 하자고 하면 내켜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이미 필사를 진행하고 있는 분들이 많기에 조금은 겁도 났지만 이해심 많은 동기들의 응원에 힘입어 필사를 위한 모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매일 한 개의 시를 필사하고 서로 응원하며 인증을 했습니다. 주중에 아이들 챙기랴 본업 하랴 바쁜 와중에도 매일매일 한 분도 빠지지 않고 시를 필사하고 인증해 주셨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혼자만의 뿌듯함과 함께 하며 응원을 보태주시는 동기들에게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필사를 위한 도서를 처음 만났을 때, 학창 시절 시험을 보기 위한 수업에서 만났던 시인들을 편하게 다시 만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매일 시 한 편을 읽으며 새로운 느낌으로  다시 느껴보는 보는 시인의 새로운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였고 한 글자 한 글자 입으로 한 번 손으로 한 번 머리로 한 번 그렇게 필사를 이어갔습니다. 꽉 찬 2주 간의 10편의 시를 필사하고 다시 다가 올 한 주의 필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가 어렵게도 느껴지지만 가까이 오래도록 지켜보면 부드럽고 거칠고 따뜻한 다양한 감정을 절제되고 정제된 느낌으로 마주할 수 있습니다. 막상 시에 다가가기 두렵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시인의 시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그 시를 필사하며 나만의 느낌으로 받아들여보는 건 어떨까요? 시를 자주 마주하고 마주치다 보면 어느 순간 시가 내 안에 들어와 나를 위로하는 회복제가 되어 줄 것입니다. 시를 읽고 시인의 마음과 노래를 손으로 적어보는 따듯한 시간을 다른 분들도 가져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새벽 제 하루를 열어 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로 유명한 백석 시인님의 ‘바다’를 같이 감상해 보며 필사의 매력을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바다
                                ( 백석 )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 비눌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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