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피해 걸었지만 꽃을 보자마자샛길로 빠져버렸다. 막 피어난 듯 신선한꽃을 보러 그늘도 없는장미공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장미가 만발하게 핀 모습은 나를 꼼짝 못 하게 했다. 알록달록화려하게 피었던 지난봄으로 돌아간착각이 들었다.
오월이 지나자장미가 시들었고, 정원사들은 시든 꽃대를 잘라냈다. 그렇게부지런한 손이 봄의 흔적을 없애 버리자 아무것도 핀 적 없는 빈 화단처럼 초라해 보였다.
아주 잠시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는 틈에 장미는 준비했다.
파릇파릇새로 돋은가지마다생애 처음 피운 꽃들을 보란 듯이 내밀었다. 화단에 자라는사계장미는 동절기를 제외하곤 계속 꽃을 피운다. 정원사들이 장미 관리가 까다롭다고 푸념하지만, 이렇게 최상의 꽃을 피우니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꽃송이뒤에가시로 무장한강인함과 생명력도대단했다. 장미가 그토록 사랑받는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장미 정원 화단 @songyiflower인스타그램
모처럼 만난 싱싱한 장미꽃을 찍기 위해 세세히 살피며 내 것 인 듯 느리게 꽃송이를 골랐다. 여름 장미는 봄에 핀 장미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꽃잎은 짧고 작았지만더촘촘했고 색은 더 진해진 듯 보였다.마스크를 내리고 향기를 맘껏 맡으면 좋으련만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 시간이다.향기를 맡느라 한눈을 팔 수 없으니 보는 것에 더 치중하며 꽃들을 찍었다.
어둡고 매끈한 초록잎은 장미꽃잎을 밝고 돋보이게 했다. 화단에 모든 장미가 건강했고 비슷비슷하게 꽃을 피우며오가는사람들의 눈길들을 머물게 했다.여름 태양이 완전히 뒤덮은 열기 속에 장미정원은 다시 꽃으로 만발해졌다.
어디선가 꽃은 핀다. 그리고 어디선가 꽃이 진다.
내가 잠시 스친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꽃 사진을많이도 찍었다. 사람도 태어난 곳을 떠나 살아가고 또 어딘가에서 멈추게 된다. 꽃을 보며 삶을 배우니 나도 점점 말수가 줄었다.
진짜 앞에선 장황하게 표현하거나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자연이 보여주는 건 항상 진짜였고, 자연을 아무리 찾아가도 시간 낭비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보지 못한 꽃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은늘 버리지 못했다. 깊은 산속 야생화들이 기다릴 것만 같지만 모든 걸 다 보러 갈 수는 없다.이렇게 가까운 곳에 피는 꽃도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데 말이다.길을 나서지 않았다면 여름 장미도 놓쳐버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