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의 계절, 제주의 전농로에 살던 나는 매년 벚꽃을 보았다.스무 해 넘게 전농로의 벚꽃은 앞마당에 핀 동백꽃만큼이나 익숙했다.
집 앞 도로는 파도처럼 사람들이 우르르 한 방향으로 움직이다 갑자기 반대로 휙 하고 돌아서며 내 하굣길을 막았다. 버스 정류장을 전에 내려가기는 멀었고, 다른 노선도 없었으니 책가방을 꼭 끓어 앉은 채 꼼짝없이 인간 파도타기를 해야 했다.
봄은 과속을 하고 있었다. 한꺼번에 피어난 꽃들을 쫒느라 내 몸에도피곤이 밀려왔다.
기다리는 봄비는 오지 않았지만, 기온은 뚝 떨어졌다. 자연은 알아서 속도 조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냉장고처럼 차가운 공기를 만들어 버렸다.추월하던 모든꽃들을 삽시간에 멈춰 놓았다. 아직도 매화꽃잎이 다 떨어지지 않았는데, 황매화꽃이 피고 벚꽃은 만개했다.
당장이라도 일이 벌어질 듯했다. 가만히 있으면 기회는 모두 지나가 버릴 듯 조바심을 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찬바람이 내게도 말을 건다.
"너무 애쓰지도 지치지도 말아요. 다른 걸 찾으면 되니까요. "
어쩌면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는데, 나만 몰랐는지도 모르겠다.기다리던 회사에서 면접결과 안내 문자가 왔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나는 출근하겠다고 했다. 새로운 장소에 가보지 않으면 무슨 꽃이 피었는지 알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비록 헛걸음하게 되어도 가는 동안 가슴은 벅차오를 테니... 조바심 많은 나는 이 방법이 가장 생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