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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Apr 10. 2024

운동은 선생님과

혼자 운동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플라잉은 함께!



 “오늘 뭐 했어?”라고 물었을 때 돌아오는 제일 멋진 대답은 뭘까? 공부. 이건 요즘 잘 들을 일이 없다. 일. 일하는 사람에게는 뭐 하냐고 잘 묻지 않는 법이고, 주변에 엄마들이 많으니까 밥, 청소, 빨래 같은 집안일을 한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조바심과 부러운 마음이 든다. 나도 모두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니까 멋지진 않다. 그렇다면 멋진 대답은? 운동! 역시 운동이다. “운동했어!”라고 하면 보람찬 시간을 보낸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의미 있고 알찬 시간이다.


 학창 시절 체육 시간마다 겪은 자잘하고도 지속적인 좌절과 실패의 경험으로 운동을 싫어하는 어른이 되었다. 체력이 좋아서 오랜 시간 걸어도 지치지 않았지만 달리기, 피구와 발야구, 줄넘기와 뜀틀, 공 던지기까지 두루두루 못했다. 밀양 아리랑에 맞춰 춤추는 무용 실기 시험 날에 내가 동작을 마치자, 고개를 갸웃하던 선생님이 다시 해보라고 말했다. 더 열심히 했다. 틀린 동작이 하나도 없었다. ‘드디어 나도 무용 실기를 잘 본 건가?’ 곡이 멈췄을 때 선생님은 나를 보며 혀를 찼다. “내가 정말 웬만하면 너 A 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다시 해도 안 되네.” 내 점수는 B였다. 그럴 거면 왜 다시 시켰던가.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고, 나도 민망함에 웃어버렸다. 하나도 틀리지 않은 나의 춤사위, 남들 한 번 한 걸 두 번 해도 안 되는 내 춤의 문제는 ‘느낌이 없는 것’이었다. 나긋하고 부드러워야 하는 춤 선 전체가 국민 체조처럼 절도 있고 뻣뻣한, 치명적인 단점.


 이건 운동이랑 상관없지만 밀양 아리랑은 이전에도 나에게 실패 경험을 안긴 노래였다.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 음악 시간에 한 사람씩 2분단과 3분단 사이, 교탁 바로 앞에 나와서 노래하는 실기시험이 있었다. 곡은 밀양 아리랑. 나는 자신 있었다. 또르르 맑은 목소리로 불러야 하는 동요가 아니어서 잘 부를 수 있었다. 소화할 수 있는 음역은 낮아도 ‘날 좀 보소오! 날 좀 보소오!’ 정도는 맞는 음으로 부를 수 있었고,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에에’의 꺾기도 배운 대로 잘할 수 있었다. 자신감 있는 부반장으로서 긴장감을 달래고 씩씩하게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아이들이 손뼉 쳤고, 선생님이 10점 만점을 주었다. 뿌듯한 얼굴로 자리에 돌아왔더니 선생님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 수진이처럼 당당하게 하면 되는 거야! 노래를 잘 못 불러도 열심히 큰 소리로 부르면 만점이야.”


 밀양 아리랑이 내 운명의 노래가 아니었듯이 체육은 매번 나를 비껴갔다. 팀 경기에서는 패배를 이끄는 주역으로, 짝지어 왈츠를 추면 박자에 맞춰 ‘미안해’를 연발하는 파트너 역할이었다. 대학교 체육대회 예선의 발야구와 테니스 동아리도 선배들의 역정과 한숨 속에서 그만두었고, 입시 학원 체육대회에서 단체 줄넘기를 마지막으로 나의 체육 시간은 막을 내렸다. 20대 후반에 두어 달, 30대 초반에 또 서너 달 헬스장에 잠깐 다니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트레이너의 무리한 지시에 따르다 화장실에 달려가 토한 경험과 멋모르고 스피닝 수업에 들어갔다가 네발로 기어 나왔던 기억이 남았을 뿐.

강해 보여!

 마침내 운동을 시작한 건 2017년 2월, 집 앞에 플라잉 요가 센터가 문을 연 때였다. 친구(맨날 나오는 그 친구)와 용기를 내어 등록했다. 첫 시간부터 몇 달 동안 그 누구보다 실력이 늘지 않던 나. 유연성이 부족한 몸도 문제였지만 겁이 많아서 해먹에 몸을 기대고 맡기는 것이 몹시 힘겨웠다. 원장님과 강사님이 번갈아 수업했는데, 어찌나 나를 안타깝게 여겼는지 모른다. 그때 나에게 내려진 처방은 스트레칭도 아니었다. “집에 가면 다리를 쭉 뻗고 니은 자로 앉는 것부터 연습하세요.” “그러면 자꾸 몸이 뒤로 넘어가는데요?”라고 대답하자 세상 깜짝 놀라던 강사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렇다. 나는 배에 힘을 주고 바닥에 앉는 법조차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24년에도 같은 학원에 다니고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중간에 출산과 육아로 1년 반 정도 쉬긴 했다)


 플라잉 요가 학원에 다닌 지 7년이 되었다고 말하면 누구라도 내가 해먹을 타는 고급 기술을 척척 해낸다고 여겨 감탄한다. 다리도 좍좍 찢어지고 요가 동작도 흔들림 없이 해낼 거라고 여기지만 그럴 리가 있겠는가? 나의 플라잉 요가 실력에 점수를 매기자면 부분적으로 중급, 요가는 아무리 후하게 평가해도 초급이다. 며칠 전에도 운동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안 되는 건 안 되더라. 내 다리는 일정 각도 이상으로 펴지지 않아." 했더니 맞은편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직도요?"라고, 되물었다.


 최선을 다하면 될지도 모른다. 바닥에 앉을 때마다 양 발바닥을 마주하는 나비자세로 무릎을 내리려 노력한다면. 넷플릭스를 볼 때마다 다리를 열고 앉아 팔을 앞으로 뻗어나가며 고관절을 돌리려고 애쓴다면, 지금보다는 유연성을 요하는 동작을 수월하게 해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홈트란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집안일과도 같은 존재. 결국 내가 운동을 하려면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선생님을 만나는 수련 시간 동안은 열심히 한다. "할 수 있어요! 조금만 더!"라고 외치는 선생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해먹에서 내려오기 일쑤이지만, 하는 만큼은 한다. 작년부터는 플랭크 카운트 10을 셀 때까지 버티거나, 어려운 동작을 해냈을 때 자체적으로 칭찬을 한다. 물론 소리 내서 말하는 건 아니고, 마음속으로. '진짜 잘했다! 훌륭하다! 오늘 잘 살았다.' 이렇게 칭찬한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하는 칭찬이라도 셀프 찬사는 쉽지 않은 일이어서 초반에는 속으로 하는 말도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마음의 소리지만 또박또박 분명한 소리로 전한다.

'수진이 오늘 진짜 잘했다.'라고 영어 단어 외우듯 정확하게 말해준다. 이것도 거울을 보면 말하기 힘들어서 보통 바닥에 누워서 쉬는 마무리 시간에 말해준다. 한 시간 동안 움직여서 풀어진 몸을 편히 누이고 눈을 감은 채 말해주는 거다.

'오늘 힘든 거 많았는데 정말 잘했다. 아까 하나 못했지만 이 정도면 완전 훌륭하다.'

이름이 양말이었던가?

 모든 운동이 그러하지만 플라잉 요가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정말 중요하다. 드문 일이지만 설명을 잘 못 듣고 어려운 동작에 도전하다가 자칫 해먹에서 떨어질 수 있고, 초보 시기에는 동작 중간에, 해먹에 묶인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순간이 제법 잦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요가원 선생님들은 그럴 때 친절하게 바닥에 내려오는 방법을 알려주는 다정한 선생님들이다. 수강생이 잘 못 해도 한 가지 성공하면 물개박수를 쳐주고, 힘든 운동과 재미있는 동작을 매번 잘 섞어서 가르쳐준다. 한 번 시범을 보여준 후에 내가 손뼉을 치고 멀뚱멀뚱 서 있으면, 다시 찬찬히 가르쳐주는 선생님들. 때로는 본인의 훌륭한 체력 기준으로 "참 쉽죠?" 같은 말을 하고, 오늘은 살살하겠다고 한 다음에 복근 운동을 시킬 때가 있지만 단연코 최고의 선생님들이다. 나처럼 처절한 몸치를 끊임없이 운동하게 도와주고, 초고수처럼 사진도 찍어주는 선생님들과 오래오래 플라잉 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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