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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Sep 07. 2024

아이와 단둘이 첫 여행, 필라델피아 (1)

아이와 단둘이 미국 정착기

남편과 나는 거의 모든 면에서 달랐다. 성격, 식성, 취향... 어느 것 하나 일치하지 않았다. 이렇게 다른 우리가 부부가 되었다는 사실에 남들도, 우리 자신도 신기해했다.


그런 우리에게도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여행. 남편과 나는 신혼 때부터 휴일에 집에 있은 적이 거의 없다. 각자 직장에서 휴가가 자유롭지 않았지만, 시간만 나면 크고 작은 여행들을 떠났다. 어떤 집은 남편이, 어떤 집은 아내가 여행 가기를 그토록 싫어해서 못 간다고 불평이던데, 우리는 이 점에서는 한 마음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그땐 몰랐다. 우리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여행을 싫어할 줄은...


아이는 여행 이전에 집 밖을 나가는 것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활발한 성격이라 친구가 많았지만, 친구랑 놀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거렸다. 밖에서 하는 활동 중에서 좋아하는 것은 놀이터, 수영장, 놀이동산이 전부이고, 미술관도, 박물관도, 풍경도 질색하며 싫어라 했다. 운동장에서 공 차는 건 하루종일도 할 수 있으면서, 여행할 때에는 관광지로 걸어가는 오 분을 못 참고 다리 아프다고 투정 부리고, 식당에서 밥 먹는 것도 피곤하다며 외식 한 번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이 나이대의 남자아이들이 다 그렇다지만 아이는 유독 심한 편이었다.


그런 아이와 단둘이 미국에 오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속으로 여행은 포기한 터였다. 먼저 연수를 떠났던 선배들이 '미국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여행'이라며 디즈니 크루즈는 가봐야 되고, 국립공원 숙소는 마감이 일찍 된다는 등 여러 조언을 때, 나는 '어차피 써먹지도 못할 거...'라고 생각하며 귀로 흘려들었다.


그런데 미국에 들어온 지 약 한 달 후에 첫 번째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아이의 베프 가족이 미국 연수를 몇 개월 먼저 나가 있었는데, '그랜드 서클'을 같이 돌자고 먼저 제안을 해 주셨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에 딱 들어맞는 아이는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베프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따라갈 것이었다. 휴우, 다행이다. 여행 한 번도 못 갈 뻔했는데 좋은 기회네.


어디에 가서 뭘 하는 건지도 정확히 모른 채 베프 가족을 따라 간 여행은 생각보다 너무너무너무 좋았다. 여행이 끝나고 나서 나는 '미국에서 있는 가장 좋은 것이 여행'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미국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간다는 말도. 미국은 50개의 주가 실제로 서로 다른 나라처럼 특색이 있다. 웅장한 대자연도, 세련된 도시도,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테마파크도, 미국 안에 다 있다.


그 뒤로 나는 남편의 미국 방문에 맞추어 옐로스톤 여행을, 아이의 베프 가족과 다시 아틀랜타 & 칸쿤 여행을, 한국에서 미국의 우리 집을 방문한 친구네 가족과 미 동북부 & 캐나다 여행을 다녀왔다. 일단 아이는 여행자체에는 흥미가 없으므로 함께 놀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내가 운전, 호텔 체크인, 티켓팅 등 여행에 딸린 온갖 잡무를 처리할 동안 아이를 맡아 줄 사람도 필요하다(혹은 그 반대이거나). 막히는 시내 도로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주차자리를 찾고 있는데 옆에서 아이가 '도대체 언제까지 차를 타야 되느냐'고 성화를 부린다거나, 호텔 프런트에 서서 되도 않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시도하고 있는데 아이가 옆에서 자꾸 말을 거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함께 할 누군가가 있을 때에는 놓치지 않고 여행의 기회로 삼아 부지런히 움직였다. 무려 석 달이나 되는, 길고 긴 여름방학도 여행의 원동력이 되었다.


드디어 방학이 끝나고 아이는 다시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 평온한 일상을 찾는...가 했더니 2주 만에 다시 레이버 데이 연휴다? 도대체 석 달이나 쉬어놓고 왜 이리 또 금방 쉬는 건지. 맨날 이렇게 놀면 공부는 언제 하나;;;


아무튼 내가 남의 나라 공휴일까지 어쩔 수 있는 건 아니니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낼지나 궁리해 보아야 하겠는데... 연휴가 나흘이나 되니 집에만 있기는 아쉽다. 가벼운 여행이 딱인데... 문제는 같이 갈 사람이 없다. 남편은 다시 미국에 오기 어렵고, 아이 베프 가족과 나의 친구 가족도 이미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참에 아이와 단둘이 여행을 시도해 볼까? 비행기 타고 렌터카 빌리고 하는 번잡함 없이 내 차 끌고 다니는 여행이면 가능할 것도 같다. 숙소 예약도 미리 하지 말고 다니다가, 상황 봐서 아이가 힘들다고 하면 바로 돌아오면 되고. 미국은 나라가 크고 차로 이동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어딜 가나 하루 묵을 곳 찾기는 어렵지 않다.


그런데 아이가 과연 여행을 좋아할지 의문이다. 뉴욕에서의 4박 5일 동안 아이는 언제나처럼 '걷기 싫다, 미술관을 왜 가냐, 숙소에 가서 라면이나 먹자' 타령을 하는 통에 나에게 여러 번 혼이 났다. 내가 아이에게 "엄마가 너를 위해 비싼 돈 들여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하면 어떡해?"라고 혼내고 있는 것을 들은 친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보니까 소망이는 여행에 큰 흥미가 없고 가자고 한 적도 없는데, '너를 위해 왔다'고 말하면 억울하지 않을까?"


... 맞는 말이다. 사실 여행을 가는 이유는 내가 가고 싶어서가 절반, 아이가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고 싶어서가 절반이다. 하지만 후자 역시 아이의 희망과는 상관없는 나의 바람이므로, 역시 결국 전부 나를 위한 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게 끌려간 여행이 과연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고민하다가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기로 했다.


"소망아, 이번에 연휴가 4일인데 어디 여행 갈래? 아니면 그냥 집에 있을래?"

"음... 갈래."

"어디로 가고 싶어?"

"음... 뉴욕?"

뉴욕에서 그렇게 여기도 싫다, 저기도 싫다 하더니 웬일로? 다시 물었다.

"뉴욕은 왜 가고 싶은데?"

"순두부 먹고 싶어."


순두부 먹으러 뉴욕을 가자니 이 무슨 재벌 3세 같은 소리인가. 나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물었다.

"야, 뉴욕 여행에 돈이 얼마가 드는데 순두부 때문에 거길 가냐. 딴 데 가는 게 어때?"

"음... 그래도 뉴욕 가고 싶은데?"

"순두부 때문에는 안 된다니까."

"순두부도 먹고 싶고... 그 빌딩숲도 다시 보고 싶어. 자유의 여신상도."


마지막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이거 저거 다 싫다고 난리 치더니, 그래도 뭔가 뇌리에 남긴 했나 보다. 영 쓸데없는 짓은 아니었구나. 그래, 여행이란 그런 것이지.


뉴욕을 다시 갈지 잠시 고민해 본다. 나 역시 한 번 더 방문하고 싶긴 하지만, 우리 집에서 뉴욕까지는 차로 6~7시간 걸린다. 그 긴 시간을 혼자 운전할 자신도 없고, 비행기도 귀찮다. 아이와 단둘이 여행은 가볍게 시작하고 싶단 말이지.


생각 끝에 먼저 필라델피아에 갔다가, 여력이 되면 뉴욕을 찍고 오기로 했다. 그래도 필라델피아 뮤지엄과 반스 파운데이션은 귀국 전에 가보고 싶던 참이었다.


그렇게 필라델피아 여행이 시작되었다.

자유의 종, 필라델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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