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복 아래 헤엄치는 몸들
윤수 오빠는 가오리의 대표적인 유선형의 인물이었다. 얼굴도 동글 어깨도 동글 배도 동글. 동글동글한 몸매에 체격은 또 우람해서 그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꼭 마동석이 떠올랐다. 우리의 마블리는 성격마저 둥글둥글했는데 훈련이 힘들어 모두가 얼이 나가 있을 때면 고요한 수영장에 외치곤 했다.
“시발 강성근이~ 오늘 날 잡았네! 작작 해라~핱핱핱핱”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가 생각하고 있을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어 버리고 마는 이 호쾌함! 욕을 하고도 누구보다 시원하게 웃어버리는 바람에 아무리 뼈 때리는 농담도 도무지 밉지가 않은 그였다. 그 덕분에 우리는 힘든 순간도 자주 웃어넘기고 다음 사이클을 출발하곤 했다. 그렇게 호탕하게 말을 던질 때면 꼭 술에 취한 장비 같기도 하고 환하게 웃는 얼굴은 기분 좋은 달마 도사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시원시원한 매력의 그가 선택한 수영복이 바로 새빨간 삼각팬티였다.
처음 그의 수영복을 보고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덩치도 큰 사람이 과장을 조금 보태 손바닥만 한 초미니 삼각 수영복을 입으니 유난히 넓은 살색에 비해 빨강의 면적이 더욱 작게 느껴졌다. 유선형의 배 아래로 타이트하게 떨어지는 수영복 핏은 내 망막에 강렬하게 아로새겨졌다. 그 핏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신기했던 것은 이걸 이렇게 당당히 입다니! 그 빨간 수영복이 마치 자신감의 원천이라도 되는 듯 그의 태도에는 일말의 위축이나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 새빨간 수영복을 입고 그는 주로 접영을 했다. 접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수영 수업에서도 자유형, 배영, 평영 다음으로 가르쳐주는 대망의 파이널 영법이자, 파워풀한 스트로크와 돌핀킥 사이에 부드러운 허리 웨이브까지 동시에 갖춘 외강내유 겉바속촉의 종목, 두 팔을 활짝 벌려 수면 위를 나아가는 모습이 마치 한 마리의 나비와 같다 하여 그 이름도 아름다운 우리들의 버터플라이(butterfly)다! 수영인들에게 접영은 레인 한편에 남몰래 묻어둔 로망 혹은 자부심과도 같은 것인데 수영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면 주말 아침의 수영장 구석에서 괜히 한번 두 팔을 휘적거려보는 로망이요,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이라면 그 옆 레인에서 신경 안 쓰는 척 접영 런웨이를 하며 자신의 실력을 뽐낼 자부심인 것이다. 그만큼 접영은 다른 영법에 비해 까다롭고 힘들고 또 그래서 강렬한 구석이 있다. 실제로도 그 현란함답게 에너지 소모가 제일 큰 영법이지만 자유형 다음으로 (물을 뒤로 밀어낼 때는 자유형보다도 더) 빠른 속도를 낸다는 점에서 꼭 한번 마스터해 보고픈 도전 정신을 일으키는 아주 매력적인 영법이다.
나도 접영을 한다. 이 ‘한다’는 표현은 ‘할 수 없다/할 수 있다’와 ‘한다/잘 한다’의 딱 중간에 놓여 있다. 어찌어찌 하긴 하는데 썩 잘하지는 않는 수준. 나의 순수 접영은 25m가 최대치다. 종종 훈련 때 접영 50m를 도는 날이 있는데 그러면 꼭 25m 턴과 동시에 힘이 턱턱 빠져 버린다. 그래서 대게는 그 지긋지긋한 잠영으로 한 10m는 가버린다든가(그마저도 반환점을 돈 이후로는 숨이 딸려서 오래 잠수하지 못한다.) 은근슬쩍 한 팔 접영을 해서 힘을 아낀다든가(이럴 땐 같은 레인에 마주 오는 뒷사람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팔 접영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연기력이 필요하다.), 그것도 아니면 에라 모르겠다 더 시키면 수영복 드잡이라도 하겠다는 배짱으로 그냥 자유형을 해버리고 마는 식이었다. 그러니 훈련을 해도 각종 뺑기 실력만 늘고 당최 접영 25m를 넘기지 못했는데 그 가장 큰 원인은 ‘힘’이었다.
접영은 다른 영법보다 힘이 중요하다. 물론 접영 실력자들은 적은 힘으로도 부드럽게, 정말이지 한 마리의 나비처럼 사뿐히 나아가지만 아직 스킬이 부족하면 일단 힘, 특히 팔 힘으로 물을 잡는 이른바 힘접영을 한다. 그런데 내가 누구냐? 시대가 낳은 발수영, 수영에 팔은 장식일 수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해 훈련부장을 놀라게 한 사람 아니냐고요. 힘접영에 팔 힘이 팔 할이라면 나의 접영을 키운 건 팔 할이 물타기였다. 결국 팔을 비롯해 비실비실한 몸에 전반적인 힘도 없었는데 그런 내게 접영 50m는 늘 터치하지 못할 벽과 같았다.
어느 날은 기록을 재는데 우리의 마블리가 접영을 하려고 스타트대에 우뚝 올라섰다. 우람한 덩치에 소박한 수영복을 입고 스타트 폼을 잡는 모습이 여전히 놀랍고 낯설었다. 곧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고 힘차게 뛰어드는 빨간 팬티, 아니 수영복. 몇 번의 돌핀킥을 차고 잠시 후 그가 두 팔을 활짝 벌려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의 접영은 부드러우면서도 거침없었다. 직관적인 지방 사이로 추상적인 근육을 가진, 부력과 힘을 다 가진 그의 접영에는 물수제비와 같은 탄력이 있었다. 거센 물보라 사이로 이따금씩 스치는 새빨강이 마치 한 마리 불나방의 화려한 날갯짓과 같이 강렬했다. 시원시원하게 나아가는 그의 접영을 보고 있자면 술 취한 장비처럼 나도 쩌렁쩌렁 웃으며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다들 눈코입 벌려라, 윤수 들어간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수영복 너머 수영하는 몸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기록도 빠르고 자세도 좋은 이들도 많았지만 어쩐지 풍채 좋게 버터플라이를 하는 그의 헤엄에서는 남다른 자신감과 힘이 느껴졌다. 벌거벗은 살색에서도, 초미니 빨강에서도 선뜻 느껴보지 못한 아름다움이 그의 접영에는 있었다. 그 아름다움이 가능했던 것은 결국 남들이 어떻게 볼지 신경 쓰지 않고 맘에 드는 수영복을 입고 할 말은 해가면서 그래도 꿋꿋이 접영 50m를 도는 그의 태도 때문이 아니었을지. 화려하게 보이는 몸보다 성실하게 기능하는 몸의 멋짐이었다. 과연 그는 이 시대의 쾌남! 한국의 조르바!
우리만의 아름다움이 있는 물의 세계로
수영하면 살 빠지나요?
하도 듣다 보니 나도 궁금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세 달간의 치열한 수영에도 이렇다 할 만큼 살이 빠지거나 몸매가 변한 사람은 없었다. 나만 해도 훈련을 시작하고 키가 0.2cm 정도 큰 것과 군살이 좀 빠진 것 말고는 몸무게나 외관상 이렇다할 큰 변화는 없다. 다른 유산소 운동과 비교해 수영의 칼로리 소모가 적지 않은 편인데다 새벽의 공복 상태로 빡세게 운동을 하는데도 우리 중 누구에게도 극적인 몸무게 변화가 없었던 것은 수영으로 태운 열량만큼 아침을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새벽 훈련은 다 같이 아침을 먹는 것으로 끝난다. 보통 대학생, 특히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이라면 아침을 거르거나 대충 때우기 일쑤인데 공복 수영을 갓 끝낸 혈기왕성한 20대 청년들의 아침은 저녁 회식만큼 거나했다. 밥 좀 먹는다 하는 친구들은 “내 계란에 한 개란 없다.”는 기세로 계란 프라이는 두세 개쯤 기본으로 얹고 제육볶음과 닭볶음탕과 같은 메인 디시도 늘 겹치도록 푸짐하게 골라 담았다. 학자금을 학식에 고스란히 갖다 바치는, 엥겔 지수 치솟는 나날이었다. 물론 나도 질 세라 오늘도 콩나물 볶음과 고추장 뿌린 계란 프라이를 자작하게 골라 담아 셀프 비빔밥을 만들고 있는데 마주 앉은 아보가드로의 혜승이 말했다.
“이거 봐라~ 나 여기에 근육 생겼다~!!~!”
시금치를 집다 말고 혜승이 팔을 한껏 뒤로 젖혀 보였다. 볼록- 팔뚝 뒤에 어렴풋이 솟아난 그것은 분명 뽀빠이 근육이었다.
“대박!! 근육 생겼어? 와, 너무 멋있어!! 나 만져봐도 돼? 진짜 딴딴하다!! 혜승아 너 배영 진짜 열심히 했나 보다! 나는 여기 여기, 겨드랑이랑 등 사이가 단단해졌어, 한번 만져봐!”
“와 진짜!! 겨드랑이에 근육 생겼네!! 엄청 딱딱해, 최고다!! 나 어깨도 좀 넓어진 것 같지 않아?!”
풀꽃을 바라보던 시인의 마음이 이러하였을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근육- 대충 보면 잘 보이지도 않는 근육을 요리조리 만들어 보이며 우리는 아침을 먹다 말고 서로 근육을 더듬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직은 요상한 포즈를 취해야만 드러나는 작고 귀여운 후면 삼각근과 광배근이었지만 몸 어딘가에 근육이 돋아나기 시작했다는 가능성은 우리를 잔뜩 흥분 시켰다. 그 뒤로도 우리는 여자 탈의실에서, 길을 걷다 말고, 기숙사에서 옷을 갈아입다가 틈만 나면 서로 근육 자랑을 했다.
“나도 어깨 넓어지면 좋겠다! 그럼 팔 힘도 훨씬 좋아지고 접영 50m도 곧잘 돌겠지? 아 우리 근손실 오겠다, 계란 프라이 하나 더 먹자!”
다이어터의 질문으로 돌아와 대답하자면 살은 수영하고 덜먹어야 빠지는 게 진리 같고요, 근데 살이 빠지면 힘도 빠져요… 힘이 없으면 접영도 못하고 잘 안 챙겨 먹으면 근손실도 생기고… 어휴,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차라리 살이 안 빠지는 게 좋을 것 같다. 어깨는 좁아 보이고 허리는 잘록해 보이는 미스코리아 수영복에 열광하던 나는 이제 어떻게 하면 더 잘, 더 오래 헤엄치는 몸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앞으로 접영 50m는 거뜬히 돌 수 있는 팔 힘이 생겼으면 좋겠고 물수제비 같은 탄력도 있으면 좋겠다. 수영을 오래 해서 내 어깨가 태평양만큼 넓어지는, 환골탈태의 변화도 아주 반가울 것 같다.
건강한 아름다움은 미스코리아 수영복이 아닌, 오늘도 탄탄이 수영복에 야무지게 수모 수경을 쓰고 수면 아래로 뛰어드는 이들의 몸에 있음을 알게 되기까지 내 곁의 많은 몸들이 떠오른다. 물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고 훌렁 옷을 벗어던지고 물속으로 뛰어든 우리의 몸들. 육지의 시선을 가뿐히 뛰어넘어 우리만의 아름다움이 있는 물의 세상으로, 아 이 우아하고 호쾌한 수영인들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