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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사리 Jan 11. 2024

고객을 선택할 수 있다면?

방문자 모두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140


식당인가 술집인가.... 매장 내무 벽면에 메뉴판 하나도 없고 고객이 방문하면 무엇을 파는지 물어보는 곳, 관점을 바꿔서 보면 고객에게는 불친절한 집이기도 하고 정해진 틀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너네 집 밥도 팔았냐?"

"네. 저희 집 식당인데요."

한 잔 하고 방문하신 삼촌이 묻는다. 오늘 한 대답까지 포함하면 최소 5번은 넘는 것 같지만 늘 물어본다. 인스타나 검색을 통해 방문한 고객들은 술집보다 밥집으로 생각하고 방문했다가 술이 냉장고 가득한 것을 보고 놀라고 매장 바닥에 놓인 다 마신 와인과 위스키 병들을 보고 놀란다.


술집이냐 밥집이냐 정체성이 중요한 것은 아닌데 방문의 목적을 구분 짓고 싶은 것일까.

그냥 편하게 와서 기분 내키는 대로 먹고 가면 안 되는 것일까.

"냅둬. 먹고 싶은 거 마시게!"

자주 방문하는 유쾌한 분들이 있다.

그들은 즐겁고 재밌게 마시고 술은 각자 먹고 싶은 종류대로 먹자며 오는 분들마다 각자 좋아하는 소주를 선택한다. 그들은 각자가 선택하는 술이 다르다.

진로, 잎새주, 새로..... 그러다가 각 1병은 너무 정신없다며 한 종류만 마시자고 주장했다.

투닥투닥 그러다 약간의 합의점을 찾아 진로와 잎새주만 마시기로 했다.

그들의 합의점은 진로와 잎새주였다.

진로는 무난하게 잘 나가는 종류 중 하나지만 잎새주는 유독 잘 안 나가는 소주이다.

잎새주 특유의 아린맛이 싫다는 사람도 있고 그것 때문에 잎새주만 마신다는 사람도 있다.

'소주 그거 다 같은 거 아닌가요?'


진로, 참이슬, 잎새주, 새로, 총 4가지의 소주를 파는데 재고의 부담 때문에 한 종류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 늘 고민했고 이번달 상황 봐서 한 달 가까이 안 팔렸던 잎새주를 빼는 걸로 마음먹은 채 재고를 어떻게 소진하나를 고민했었는데, 허사가 되었다.

유쾌한 그분들은 일주일 내내 출근하다시피 방문하여 두 종류의 소주만 마시기 시작했다.

빼곡했던 소주와 소주 사이가 멀어지며 가까이할 수 없는 거리가 생겨갔다.


매일 같은 그들의 방문에 잎새주를 메뉴에서 빼려 했던 의지는 사라졌다.

소주라고 다 같은 소주가 아니다. 소주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소주는 제조하는 회사마다 각기 다른 맛이 존재하고 무취라고는 하나 희미한 향이 존재한다. 디자인만큼 맛과 취향도 제각각인 소주들, 매일같이 가득 찬 술장고를 보던 사람들은 저 많은 술이 언제 팔리나 싶지만 소주의 다양성만큼 방문하는 고객도 다양하다.

그들의 방문시기는 일정하기도 하고 때론 잊어버릴만하면 방문하여 눈도장을 찍고 가기도 한다.

그들의 취향 따라 어떤 때는 시기마다 특정 소주들만 냉장고에서 사라져 간다.


밥집이냐 술집이냐, 고객은 논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소주냐 맥주냐, 고객이 마음 가는 대로 하는 선택이다.

"나는 우리 집 손님 마음대로 바꿔버려."

그게 가능한 것일까? 손님을 선택할 수 있을까 고객을 가려서 받을 수 있는 것일까.

갑자기 클럽 입구에서 고객을 구분 짓는 모습들이 떠오른다.

메뉴와 가게 분위기에 따라 가능한 일일 거 같긴 한데 직접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어떤 사장님들은 대놓고 피력하기도 한다고 하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일까.


잎새주가 한동안 팔리지 않아서 냉장고에 없어도 고객을 맞이하는데 아무 문제없겠거니 싶었었다. 이번처럼 잎새주가 갑자기 팔리고 나니 기억났다. 잎새주 찾는 고객분들은 대부분 매월초에 방문한다는 것을 그들은 각기 다른 사람들인데도 한 달에 한두 번 약속한 듯한 시기에 나타났었다.


매번 가득 찬 술장고를 볼 때마다 몇 종류 빼야지, 아님 최소한의 종류만 팔아볼까 아니야 그냥 조금씩 다양한 종류로 팔아볼까..... 가게에 비해 너무도 꽉 찬 술장고를 볼 때마다 늘 고민에 빠졌었다.

자세히 보면 알게 되는 것, 냉장고에 잎새주를 채우며 기억났다.

밥집이라 생각하며 들어온 이들에게 술장고 가득 채워진 술들을 보며 술집일까를 고민하게 했을 텐데 그러나 밥과 함께 친구들을 소주를 고르며 행복해했을 그들을 기억했다.

이제는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단골들에게 술을 줄이며 냉장고의 빈곤함을 보여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게 되어 버린 것 같다.

"뭐 어찐데, 술이 썩는 것도 아닌데."

맞다, 술은 썩는 것이 아닌데 단지 소비기한(유통기한)이 있을 뿐이다.


2년을 목표로 잡고 시작했는데 벌써 절반의 절반을 채웠다.

부족한 대로 조금은 제멋대로인 듯 감사하고 고맙기도 한, 방문자들 모두에게 늘 최선을 다하려 노력 중이다.

의사소통과 접대가 부족할 수도 있지만 진심은 통하겠지?


장사가 잘 될 때도 있지만 안될 때도 있고 새로운 시도가 허공에 외친 메아리 같은 때도 있다.

그렇지만 매일 쉬지 않고 출근하기로 한 나와의 약속처럼 고객은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다.

손님이 없을 것 같아 이른 마감을 하고 일찍 도망가려 준비하는 날이면 "아직 영업하죠?"라고 문의 전화가 오고 때 때로 문 닫고 나갔다가도 되돌아오게 한다.


때때로 고객은 아이 같다.

술에 취했든 취하지 않았든 다양함을 요구하고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결 같이 그곳에서 기다리길 바란다.

늘 고객의 선택을 받는 입장에서 고객을 선택할 수 있을까?

아직은 초보 사장인 나는 하수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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