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자, 책임은 나와 너 그리고 상황

더 이상 나만 탓하지는 않을 거야

by 김반장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당시 학교 축제를 앞두고 나는 친구와 함께 무용 공연을 준비 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아주 예쁘고 상냥해서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그 아이를 사모했다. 그 아이의 마음에 들고 싶어서 늘 그 아이 주변에서 시녀처럼 지내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점심시간에 만나 함께 연습을 하기로 했다. 나는 점심도 먹지 않고 무용실에 먼저 가서 그 친구를 기다렸다. 만나기로 한 시간이 지나갔지만 그 친구는 오지 않았다. 한참 만에 올라온 친구는 ‘만화책을 보다가 왔다.’고 말했다. 나는 약속을 어긴 친구에게 앞으로는 약속 시간을 지켜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12시에 만나기로 했잖아?’라고 말했다. 그 이후 우리는 딱 한마디 씩 더 주고받았던 것 같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친구가 약속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말해서 내가 다시 한 번 약속시간을 주지시켜 줬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그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나는 여자의 눈물이 그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미처 몰랐다. 무용실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그 친구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나는 한 순간에 비난 받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 아이는 친구들의 관심과 위로를 받으며 무용실을 나갔다. 그때부터 나의 험난한 학교생활은 시작됐다. 그때도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아이를 울려서 비난받는 자의 사정은 중요치 않았다.


아침에 학교에 오면 책상 위에 욕이 쓰여 있었다. 분필로 아주 꼼꼼하게 욕을 적어 놓았다. 나는 아이들이 볼펜으로 욕을 적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걸레로 묵묵히 분필가루를 지웠다. 아이들은 나와 함께 당번이 된 아이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진짜 불쌍하다. oo이랑 같이 당번 돼서.’ 나는 내 나름대로 나의 역할을 다했고,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나를 없는 사람 취급을 했다. 때로는 내가 모르게 잽싸게 일을 해놓고는 내가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루는 인기 많은 친구의 시녀 노릇을 하던 친구가 시원한 말발로 싸움을 걸어왔다. 나는 이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소 지었다. 하지만 불안에서 기인한 나의 웃음은 그들을 더 자극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한 패가 되어 한 마디씩 거들었다.

이런 일들이 부당하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선생님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고, 알아도 모르는 척 했으며, 친구들도 나를 돕지 않았다. 나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나는 부당함을 인식하지 못했다. 나는 이러한 행태를 내가 견뎌야 하는 고행쯤으로 여겼다. 그 상황에서 벗어날 노력은 하지 않았다. 노력도 희망이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 나에게 싸움을 걸었던 친구를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나를 향해 밝게 인사했다. 독서실 휴게실에 있었던 나에게 함께 과자를 먹자고하는 친절함 까지 보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에게는 2년 전의 일이 아직도 생생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처음 선보였던 매운 새우깡을 아삭 씹으며 나는 물었다.

‘그때 왜 그랬어?’

친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중학교 때 너 나 싫어했잖아. 나 왜 싫어했어?’

친구는 새우깡을 집어 들며 말했다.

‘몰라’

그것이 끝이었다.




동료들의 집단 비난을 받고 직장을 그만 두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싸움은 내 체질에 맞지 않았다. 차라리 ‘모든 것은 내 탓이오.’라며 어울리지도 않는 군자 놀음을 하는 것이 더 편했다. 모든 변화는 내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믿었다.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꽤 재수 없는 인간이었을 거라고 믿었다. 딱히 내 성과를 뽐낸 적도 없고, 오히려 다른 동료들의 일을 떠맡은 적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미워할 수밖에 없는 나의 존재적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동료들이 나의 실수를 헐뜯을 때, 내가 윗사람의 총애를 받는 것을 내 잘못이라 비난할 때,

내 혼잣말을 엿듣고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추궁하고, 내가 미숙한 동료를 도와주는 바람에 자신의 도움은 궁색하게 만들었다고 원망할 때,

내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해서 다른 동료의 공은 빛바래게 만들었다고, 상사가 나에게 칭찬했을 때 그 다음 날이 돼서야 다른 동료에게 그 공을 돌린 나의 무심함이 나의 악의를 증명한 것이라고 주장했을 때,

모두가 나에게 달려들어 이런 말을 할 만큼 내가 꽤 재수 없는 인간이었을 거라고 믿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아주 정신줄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내가 재수 없을 수는 있는데, 그것을 자신들이 입은 피해라고 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엄연히 말하면 내가 재수 없는 인간인 것과 그들이 나를 공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들은 단지 나를 공격하기로 마음먹었을 뿐이었다. 그 자신들은 인식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내가 내 자신을 ‘재수 없다’고 인정한 순간 내 마음 속에는 수백 가지의 자아성찰이 일어났다. 내가 말이 너무 많았군, 가만히 있었어야 하는데.. 내가 괜히 열심히 해서 주변 사람들 힘들게 만들었군.. 내가 괜히 시키는 일 다 해서 동료들 기분 나쁘게 만들었네, 눈치도 없이.. 내가 생긴 게 문젠가? 코라도 좀 깎아볼까? 옷을 너무 못 입어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내가 뚱뚱해서 미련해 보이나?

지금 보면 뒤통수를 몇 대 맞아야 정신 차릴 것 같이 멀리 가버린 생각들이지만, 그때는 매일 그런 생각을 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폭발해버린 내 우울한 뇌가 한 짓이었다.


심리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 받는 첫 날에 나는 숨도 쉬지 않고 있었던 일을 쏟아냈다. 1시간 반 동안 래퍼처럼 침 튀기며 있었던 일을 일러바치고 나서 내가 처음 들은 말은 ‘목 안 마르세요?’였다.

그렇게 몇 번의 상담을 하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는 나 33.3%, 상대방 33.3%, 상황 33.3% 모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지 마세요.


생각해보니 그랬다. 이 모든 일들이 나 하나 때문에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지나친 자책도 과한 자기애의 일종이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보자. 내가 그렇게 존재감이 큰 사람이던가.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인간이라고 모든 상황의 책임을 혼자 지려고 했던 걸까.

고통스러운 상황의 발생 = 나의 책임 + 상대방의 책임 + 맥락/상황의 책임

나의 책임 : 고립됐다는 불안감에 일에만 몰입했음, 힘들어도 괜찮은 척 했음
상대방의 책임 : 나라는 존재가 거슬렸다는 이유로 다수의 힘을 행사했음
상황의 책임 : 업무 특수성에 특화된 남다른 채용 경로, 하필이면 내가 한 일들이 전국적인 관심을 받아야 했던 시기적인 어려움, 부하직원들을 제대로 통솔하지도 못하면서 승진 욕심에 많은 일을 해내려 했던 직장 상사, 사무실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내 또래 직원들의 등쌀에 밀려 말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선배들, 그날 따라 상사와 선배들 모두 자리를 비워버려 그들이 마음 편히 나를 몰아 붙일 수 있었던 상황적 특수성


자학은 상황을 달라지게 하지도, 내 마음을 더 나아지게 하지도 못했다. 심리 상담을 받으며 과대망상증적으로 자책하는 버릇을 고쳐나갔다. 주위 사람의 도움도 많이 필요했다. 내 남편은 내가 ‘내 탓이오’를 시전 할 때마다 ‘Stop!’을 외치듯 말했다. 또또또또 자신을 비하하고 있다고. 안그래도 사는 건 고달픈 일인데 계속해서 내 과제가 아닌 것 까지 내 것으로 끌어안으려고 한다고.




세상에 나만 잘못해서 생긴 일은 없다. 나에게 귀인이 있을지 몰라도 내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한 때는 성숙한 사람일수록 어떤 일이던지 내부적 귀인, 즉 자신 안에서 원인을 찾는다고 생각했다. 싸우지 않고 그렇게 조용히 내 안의 원인을 탐색하며 지나가버리는 일도 많았다. 나는 살면서 대부분의 부당한 일은 참아냈으며, 먼저 손을 내민 적도 많았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전략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었다. 여러 개인들의 복잡한 욕망과 이익이 만들어낸 구조로 인한 갈등일 때 특히 그렇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반복적으로 공격을 받았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사람들도 이것을 해결하지 못했고, 당사자들도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몰아갔다.


그들은 아무도 나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나에게 싸움을 걸었던 아이처럼, 새우깡을 만지작거리며 ‘몰라’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제는 알을 깨고 나와야 했다.

아브락사스*라는 신이 사는 곳으로.

나는 카인의 표적**을 이마에 새겼다.



*아브락사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한 상징으로 나온다.

**“용기와 개성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니까. 두려움 없는 강한 족속이 자신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매우 견디기 힘들었겠지. 사람들은 그래서 강한 족속들을 위험에 빠뜨릴 음모를 꾸민 거야. 자신들이 두려움에 떨었던 것에 대한 반감으로 주홍글씨와 같은 낙인과 소문을 만들어서 퍼뜨린 거지. 내 말, 이해하겠어?”(헤르만 헤세, 「데미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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