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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이 있긴 합니다만...

우주가 우리를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달리는 차창 밖으로 시원한 시골냄새가 들어온다.
매번 문이 잠겨있어 지나쳤던 부동산에 오늘은 무슨 일인지 불이 켜져 있다.


울퉁불퉁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니 시골냄새와 함께 훅~하고 흙먼지가 들어온다. 도로는 좁은 2차선에 바닥은 온통 흙투성이다. 달리던 시골길 너머 부동산 팻말이 보인다.


"여보, 멈춰봐요. 저기 부동산에 불이 켜져 있어요. 올 때마다 문이 잠겨있던 곳인데?"


내 말에 남편은 갓길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연다. 남편이 차 문을 연 것과 동시 먼지가 풀풀 거린다. 먼지를 한 손으로 저으며 부동산 문을 힘껏 당겼다.


덜컹!


역시나 문은 잠겨있다. 유리창 너머로 사무실을 들여다보니 형광등도 켜있고 탁자에는 커피잔도 놓여있다. 아마도 상담하다 현장을 간 듯 싶다.


남편은 유리창을 훑으며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부동산 사장님은 다급히 전화를 받았고 근처 현장에 잠깐 나왔는데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기다리는 거야 우리에겐 이미 익숙하다. 그나마 곧 올 수 있다니 상담은 받을 수 있겠다 싶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보통 이런 시골 부동산은 주말이면 대부분 문을 닫는 곳이 많다. 운영자가 외지인인 경우도 있고, 주말엔 손님이 별로 없어서인지 아예 나오지 않는다고도 한다.


자동차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잠시 기다리려니 어디선가 짬뽕 냄새가 은은히 난다. 부동산 바로 옆 중식당 문틈으로 흘러온다. 점심으로 챙겨 온 주먹밥과 컵라면을 먹었기에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매콤한 짬뽕 냄새는 코를 킁킁거리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탕수육과 짜장, 짬뽕 얘기를 재잘거리고 남편은 두리번거리며 지도 앱을 이리저리 맞춰본다.




우린 주말이면 가끔 놀러 가듯 부동산을 찾는다. 딱히 매수할 의사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주변 상황도 들어보고, 부동산 동향을 배울 기회로 삼기 때문이다. 아빠, 엄마를 따라다니는 아이들은 지루하기도 할터인데 김밥이나 주먹밥, 간식, 컵라면이 있기에 소풍 가는 느낌인지 돗자리도 스스로 챙긴다. 컵라면은 가급적 절제하지만 이런 때는 종류별로 사놓고 골라먹기 하다 보니 이 또한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한 번은 시골 한적한 정자에  돗자리를 깔고 점심을 먹고 있는데 동네 어르신들이 하나, 둘 모여 말을 붙이시며 술자리가 벌어졌다. 처음 보는 우리에게 "땅 보러 왔냐" "여기 살려고 왔느냐"라며 말을 섞으시더니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돌리신다. 그리곤 이어지는 손주 자랑이나 소식 뜸한 자식 얘기를 푸념하듯 꺼내놓기도 한다. 자식 생각에 아쉬운지 인사하고 일어서는데 이사 오면 꼭 보자고 꽉 잡은 손을 놓지 않으신다. 이런 분들의 모습 속에서 넉넉한 시골인심도 느끼지만, 우리 부모님을 마음에 떠올리게 된다.




아이들은 여태껏 짜장면이 좋네 짬뽕이 좋네, 저녁으로 짜장과 짬뽕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김칫국부터 마시는 중이다.


그때 회색 승용차 하나가 먼지와 함께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우리가 기다리던 분임을 직감하고 차에서 내렸다. 인사를 주고받고 사장님이 타 주시는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부동산 이곳저곳을 눈으로 스캔한다. 부동산 커피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우리가 처음 빌라에 이사했을 때 남편이 '부동산에는 커피 마시러 가는 곳'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부동산에 자주 찾아가 친하게 지내라는 말이다. 부동산 커피 참 많이도 마셔봤다. 이젠 부동산에 가면 내 손으로 커피를 타 마실 정도로 넉살이 늘었다. 가끔 아이스크림이나 내가 만든 간식을 가지고 방문하기도 한다. 부동산 가는 일은 내게 익숙하다.


"작은 땅을 찾는다고요?"

"네"

"시골엔 작은 땅 구하기가 힘들어"

"없으면 분할해서 파는 것도 좋고요, 저희가 여유자금이 없어서 큰 땅은 사고 싶어도 못 사요."

"음... 어디 보자. 마침 작은 땅이 하나 나온 게 있긴 한데..."


사장님은 대화를 나누며 파일을 이것저것 뒤적거리다 멈추었다. 우린 사장님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땅이 너무 작아. 잘라서 판다는데 90평쯤 나올까? 안 나올 수도 있고"

우린 열심히 머릿속으로 계산을 했다.

"좋아요. 90평이 안 넘어도 되고 80평이어도 좋아요. 평당가가 비싸지만 도시에서는 70~80평도 많은걸요. "

"에이, 70평은 안돼. 마당도 안 나와. 텃밭도 좀 가꾸려면 100평은 넘어야지"

사장님의 말이 맞긴 하다만 협소 주택도 있는데 90평만 하더라도 우리에겐 감지덕지다. 남편과 나는 땅이 궁금하여 벌써부터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조바심이 나는 우리와 달리 사장님은 너무 작다며 이리저리 파일을 뒤적이다 포기하고는 열쇠를 들고 앞장서신다. 바로 근처니 지금 가보자고.


우린 아이들을 앞세우고 부동산 사장님을 따라나섰다. 300여 m 남짓 걷다 보니 얕은 언덕 위 밭이 보인다. 옆 밭과의 경계가 없으니 잘 알진 못하지만 우리가 보기엔 충분히 넓어 보였다. 단지 흠이라면 옆에 축사가 있다. 축사를 핑계로 금액을 좀 낮춰보려 했으나 축사는 곧 없어질 거라고, 인근에 축사는 못 들어오게 되어 있는데 오래전 생긴 거라 임대가 끝나면 바로 없어질 거라고 했다.


주변에 농가 주택들도 옹기종기 모여 있고, 땅도 우리 형편에 적당하고, 공기도 좋았다. 큰 도로와 근접해 있고, 언제 일지는 모르나 인근에 전철 역사도 들어온다고 하니 오랜 시간 찾아 헤맨 우린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평당 매매가도 우리가 생각했던 금액을 넘지 않았다. 이런 것을 금상첨화라고 했던가?


사무실로 돌아온 후 토지대장을 확인하고 바로 계약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린 당장이라도 집을 지을 것처럼 들떠 있었다. 다음 주는 건축박람회를 가봐야 하고, 건축사도 알아보아야 한다. 차를 타고 있으나 차가 달리는 건지 내가 달리는 건지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이 마치 온 우주가 우리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듯 착각에 빠졌다. 누구나 그렇듯 문제를 만나기 전에는 우주라도 삼킬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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