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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덕골 이선생 May 01. 2024

아무도 내가 뭘 원하는지 묻지 않아요

<검은 소년> vs <거인>

내가 잘못한 건 없는데,
내가 잘못한 것 같아서 답답해요

[ 사진 출처: 네이버 ]

(안지호)충동적아빠와 소극적인 엄마 사이에서 혼란을 느낀다. 술에 빠진 아빠는 강압적인 방식으로 가족을 대하고, 엄마는 그런 남편을 피해 달아난다. 훈은 엄마와 살고 싶지만, 아빠의 충동성(알코올 중독과 자살 기도) 걱정돼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혼란만 과중되는 가운데, 동급생 기철의 괴롭힘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게다가 문학동아리에서 쫓겨나고 절친에게 배신당하면서, 더 이상 의지할 곳 없는 신세가 된다.


훈은 엄마에게 줄 삼겹살을 챙기고, 아빠의 들뜬 머리를 매만져 주는 착한 아들이다. 그러나 아빠의 폭력성, 어머니의 가출이 지속되자, 불안한 자아를 붙잡은 채 위태로운 삶을 살아간. 장시간 갈등과 소외에 노출되면서, 내면의 공격성을 외부로 표출하기 시작한다. 기철의 괴롭힘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고, 아빠에게 주먹다짐으로 반항하는 훈. 그는 실망하는 아빠에게 매달려보지만, 잔인하게 돌아서는 의 뒷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


<검은 소년>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부모가 아들의 진심을 헤아리못하는 데 있다.  아들의 심리적 불안을 달래주지 못하는 엄마, 그의 공격성을 버텨내지 못하는 아빠.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원망하며 자기 생존에 급급한 상황이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훈이 내적 공격성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데 있. 외부적 툼이 발생할 때 죄책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통제한다. 또한 자신의 공격성을 문학으로 승화시킬  있는 재능이 있다. 훈은 내면의 슬픔과 분노를 글로 표출하여 해방감을 느낀다. 결말부에 훈이 책방을 는 장면에서 안도감이 느껴진다.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창고(문학)가 생겨 다행스럽다. 그가 내면의 공격성을 창조적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만 대상관계에 있어 수동적으로 대응하며, 타자의 기분에 맞춰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우려가 된다.


나는 살기 위해 성직자가 되려 해요

[ 사진 출처: 네이버 ]

<거인>은 보호 시설에 사는 영재(최우식)의 내면적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아버지를 피해 보호시설(이삭의 집)에서 생활하는 영재는 성직자가 되는  꿈이다. 그는 대입(신학대학)을 목표로 보호시설에 생활하고 싶지만, 기간 연장이 어렵다는 답변을 듣는다. 집으로  돌아가기 싫은 영재는 원장 밖에 벗어나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나 유기 불안을 참지 못한 채, 보호시설의 신발을 훔치는 영재. 얼마 후 아버지가 시설로 찾아와 동생을 맡기려 하자 반대한다. 결국 아버지를 막아 세우며 자해 소동을 벌이던 영재는 다른 시설로 옮겨진다.


영재는 내면의 공격성을 인격 안에 통제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한 상태다. 내면에 우울함과 불안함을 회피하기 위해 집을 나오고,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제어하려 애썼다. 그러나 생존의 불안감이 과중된 상태에서 동생을 돌봐야 할 부담이 지자 심리적 불안 상태에 빠진다. 보호시설의 신발을 훔친 것도 그때부터다. 원장의 원하는 바를 수용하며 거짓자기에 충실하지만, 내적 불안감이 과중될수절도 행위에 더 빠진다.


영재내적 결핍을 채우고 안정감을 찾기 위해 타인의 물건을 훔친다.  불행은 가난에서 비롯된 일이므로, 물건을 훔쳐 이익을 얻는  안정감을 느낀다. 그는 성직자가 되고 싶다기보다 살기 위해 성직자를 꿈꾸는데, 이러한 강박은 영재  힘들 만든다. 영재는 생존을 위해 거짓자기를 내세우고, 참자기의 실체가 드러날 걸 우려해 거짓말을 일삼는. 과연  새로운 시설에서  생활할 수 있을까. 성직자가능성의심받으며 불안에 시달리지 않을까.


소리 없는 외침에 주목하자

청소년기 아이들은 안아주는 환경을 재경험하려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박탈의 증후를 지극히 평범하게 여기기 쉽다는 거다. 우리는 왕처럼 군림하며 자신의 욕구 충족에 급급하거나 내면의 공격성을 해결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청소년 시기 내면의 끊임없는 외침이 외부로 소통되지 못한 채 남겨질 걸 걱정해야 한다. 그들의 공격성이 사랑 안에서 융합되지 못한 채 무의식에 남겨지게 되면, 인격 발달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긴다. 내적 결핍이 불안과 분노를 만들어 긴 시간 잠재될 때,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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