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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자몽 Jul 14. 2020

작년에 집을 샀어야 했다

슬기로운 신혼생활 vol.9

"으아아아악!" 부동산 어플을 보다 소릴 지르고 말았다. 놀라서 달려온 아내에게 보고 있던 화면을 가리켰다. 이번엔 아내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작년에 구입 직전까지 갔다 포기한 아파트 가격이 무려 2억이나 올라 있었다. 1년도  되지 않은 일이었다. 고민 끝에 일단 2년만 전세로 살아보기로  우리는 절규했다.

신혼집을 구하러 다니던 작년 7, 부동산 시장 전망은 팽팽히 갈렸다. '서울 아파트는 오늘이 제일 싸다' 상승론과 '이미 오를 만큼 올랐다' 꼭지론이 경쟁했다. 자칭 타칭 부동산 전문가들이 갖가지 전망을 쏟아냈다. 댓글을 10개나 달고 나서야 겨우 가입 승인을 받은 온라인 부동산 카페에선 '오늘   사면 평생  산다' 사람들과 '지금 사는  집이 아니라 지옥행 티켓'이라는 사람들이 열띤 입씨름을 벌였다.

혼란한 시기에 집을  많이도 보러 다녔다. 서울 시내부터 경기도까지 아파트만 어림잡아 30군데 넘게   같다. 강서구, 영등포구, 서대문구, 구로구, 금천구, 동작구, 관악구, 성동구, 동대문구 등등 애초에 접근 불가한 강남3구를 제외하면 서울에 웬만한 자치구는  가본 데가 없었고, 부천, 광명  경기도 일대도 틈틈이 다녔다. 아내나 나나 아침이면 출근하고, 저녁이면 퇴근하는 평범한 직장인인 탓에 출퇴근길 교통이 가장 중요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가진 돈으로   있는 '다닐 만한 거리의 아파트' 별로 없었다. 있어도 상태가  좋지 못했다. 일단 '낡은 복도식 아파트' 기본값이었다. 게다가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이상  따라붙었다.

오래된 연식 탓에 수도꼭지에서 그냥 마셔도 안전하다는 아리수 대신 붉은 녹물이 나온다거나 금간  사이로 습기가 새어 나와 곰팡이가 펴대는  예삿일이었다. 90년대 아파트의 유산인 중앙난방 시스템이 복도 양끝 집은 춥게, 가운데 집은 덥게 만들어 주민 갈등의 원인이 됐으며, 수백 세대가 사는 아파트  동에  대뿐인 엘리베이터는 주민들의 출퇴근 짜증 지수를 한층 밀어 올렸다. 심지어 그중에서도 연식이 오래된  아파트는 방에 들어가면 바닥이 기울어 멀미가  것만 같았다.

이런 집들에 관해 아내는 놀라울 정도로 낙천적이었다. 녹물은 필터로, 추위는 난방 텐트로, 부족한 엘리베이터는  다리로 해결하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기울어진 방바닥조차 재건축의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였다. 아내의 낙관은, 돌이켜보면 선견지명이었다. 멈칫하던 부동산은 다시 들썩이기 시작했고, 방바닥이 기운 ' 아파트' 정말로 재건축 절차에 돌입했다.

문제는 나였다. 아내와 달리 녹물이 나오고, 춥고, 엘리베이터도 타기 힘든 데다 멀미나는 집을 30년짜리 대출을 받아 산다고 생각하니 속이 답답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럴  믿고 싶은  믿기 마련이다. 나는 전형적인 보통 사람에 속했고, 집들이 마음에 들지 않자 집값이 떨어질 거라 믿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집값 하락을 믿기 위해 '노력'했다. 집값이 상승한다는 논리는 과감히 스킵하고, 집값 하락을 전망하는 유튜브 영상만 하루 종일 찾아봤다. 구글의 뛰어난 동영상 추천 알고리즘은  수고를 들이지 않고 확증편향을 강화할  있게 도와주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아내를 설득했다. 물론, 아내 역시 나를 설득했다. 아내의 입장은 이랬다. "집값이 떨어진다고 해도 속이야 상하겠지만, 어차피 실거주할 생각이니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만약 오른다면? 만에 하나 계속  올라버린다면? 우린 평생 집을   없을지도 모른다." 맞는 말이었다. 논리적으로 반박할 틈이 없었다. 투자가 아니라, 살기 위한 집이니 떨어져도 문제가   없었다. 더군다나 아내가 우려한 상황이 펼쳐진 지금, 아내의 말대로 집을 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불가능한 일이 됐다.

하지만 그땐 아둔한 믿음이 너무 강했다. 지나쳤다. 논리 대신 아내의 감성에 호소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맑은 수돗물이 쏟아지고, 첨단 IoT기술이 접목돼 냉난방부터 엘리베이터까지 스마트폰 하나로 조작 가능한 신축 아파트에 살게 될지 모른다. 상상해봐라.  잡을  하나 없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화려함과 실용성이 적절히 안배된 '팰리스' '캐슬' 입주한 우리의 모습을!"  열띤 웅변도 아내의 마음을 꿰뚫진 못한  같다. 다만,  상태가 이미 돌이킬  없게 됐다고 판단했는지, 아내는 마지못해 자신의 의견을 접었다. 이제 와서 물으면, 당시에 아내는 로또 사는 심정으로  의견을 따랐다고 한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1년이 되지 않아  판단은 완전히 빗나갔다. 부동산 규제가 발표되고, 코로나가 퍼져 경기도 좋지 않았지만, 서울 집값은 올랐다. 그냥 오른  아니라 유례없는 상승률로 치솟았다. 이젠 녹물이 나오고, 중앙난방에, 엘리베이터도 없는, 멀미나는 아파트조차   없게 돼버렸다.

"그때 샀어야 했어..." 머릴 쥐어뜯으며,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후회해봐야 소용없어!" 아내는 냉정하게 말했다. 아내의 말이 ' 죄를 네가 알렷다!' 들려, 멱살이든 뭐든 내줄 각오를 했다. 그런데 아내는 갑자기 책장 앞으로 가더니   권을 꺼내왔다. 직장인 재테크에 관한 책이었다. 의아한 표정을 짓자,  팔을 들더니 흔들면서 외쳤다. "기회는   거야! 그때까지 아자, 아자, 화이팅!" 예상치 못한 아내의 반응에 한참 웃다가 나도 함께 외쳤다. "아자, 아자, 화이팅!"

안타깝게도 집값은 여전히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년에 수억  오르는  지켜보고 있자니 일해서 벌어들이는 소득이 하찮아 보이고, '이번 생에   마련은 없겠구나' 싶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래도 그럴 때마다 "아자, 아자, 화이팅!" 외치는 의연한 아내가 있어 다행이다. 유치해 보일지 몰라도 확실히 위로가 된다.

내집 마련을 꿈꾸는 신혼부부들이여,

"아자, 아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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