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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진 Sep 20. 2024

운명을 만나다

   

#1 첫 만남  

     

 대학 재학 시절 1년을 휴학했기 때문에 25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 강사를 하고 있을 때 였다.

 고등학교 절친이 나에게 소개팅을 해 보지 않겠냐고

 해서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군산대를 다니다 인하대로 편입한 오빠인데 자기와 

똑같이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고 장학금을 탈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오빠라며 성격도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그 오빠 이상형이 마르고 눈이 예쁜 사람이라며 

내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에 너가 제일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졸업해서 사회인이었는데 나 보다 한 살 연상인 

그 사람은 군대를 갔다가 복학했기 때문에 26살로 

대학 4학년에 재학하고 있었다.

 2003년 3월 2일 대학 개강일에 소개팅을 하기로 했고 

친구와 함께 소개팅 장소로 나갔다.

 그러나 처음 봤을 때 부터 내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내 남동생과 6살 차이나 나고 장녀였기 때문에 보통

 3~4살 연상의 사람과 만나고 싶었고 그 동안 힘든 일이 많았기

 때문에 기댈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마치 키다리 아저씨처럼 훈훈하고 마음이 따뜻하며 자상한 

사람이 내 이상형이었다.

 근데 둥글 둥글한 얼굴에 장난 끼가 가득해 보이는 얼굴로 마치 

도라에몽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귀여운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처음 봤을 때

는 오늘만 만나고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거기에다 아무리 개강일이라고 할지라도 소개팅 날인데 너무 

학생같이 하고 나온 모습도 마음에 안 들었다.

 3월인데 아주 두꺼운 패딩에 너무 두꺼워서 억지로

 책가방을 껴 놓고 나온 그 사람은 패션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주선자인 내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가

 친구는 빠지고 우리 둘만 커피숍으로 갔다.

 그 사람은 안 그래도 볼이 빵빵한데 오늘 사랑니를 빼서

 얼굴이 퉁퉁 부었다면서 약 먹을 시간이라며 양해를 

구하면서까지 약을 먹었다.

 그 사람은 약을 먹더니 약 기운 때문에 그런지 살짝 졸리다 

면서 세수하고 와도 되냐고 물었다.

 좀 엉뚱한 부분이 있구나 싶었다.

 사랑니도 빼고 그래서 소개팅을 빨리 끝내고 집으로 가려

고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내가 마음에

 든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보통 소개팅 할 때 전화번호를 물어 보는데

 이메일 주소를 물어 보았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어쩌다 영화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보다 더 영화광이었다.

 우리나라 및 할리우드 영화의 감독 스타일이나 영화 

음악을 꾀고 있을 정도로 원래는 영화 연출을 하고 싶어서

 서울예전에 지원했었는데 탈락했다고 했다.

 나도 영화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에 관해 

한참 얘기를 하다가 처음보다는 분위기가 좋아졌고 첫인상부터 

마음에 안 들었던 내 마음은 전반적으로 박학다식한 그 사람이 궁금해져 갔다.

 우리는 시간이 다 돼서 소개팅을 마쳤고 그 사람 집은 서울이었는데 

날 버스 정류장에 데려다 주고 내가 버스를 타고 떠나는 모습까지 보고 갔다.

 내 친구는 근처에 있으면서 나를 기다렸고 같이 버스를 타고 

가는데 어떠냐고 그 사람에 대해 물어 봤다. 사실 내 스타일은 

아닌데 한 번 정도 다시 만날 생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내 친구에게 내가 자기 이상형이라면서 너무 

마음에 든다고 했다고 한다.     



#2 두 번째 만남     


 일주일 뒤에 인천 구월동 CGV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원래 그 사람은 서울 흑석동에 살았고 나는 인천이었다.

 그렇게 만나기로 한 날 내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저기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그 사람을 본 순간 너무 놀랐다.

 첫 만남 때도 옷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두 번째

 만나는 오늘은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의 패션 테러리스트에 가깝게 청청 패션을 입고 나왔는데

 위 아래가 검은 색도 아니고 회색도 아닌 빛바랜 색깔에 아주

 무거워 보였다. 그리고 역시 책가방을 메고 나왔는데 책가방 길이가 

너무 짧아 거의 어깨 근처까지 책가방이 올라와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올만한 완전 복고 

스타일의 청 패션이었다.

 나중에 사귀게 되면서 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타일도 

바꿔 주었고 새로운 옷을 살 때면 내가 꼭 같이 다녀서 골라주었다.

 자기는 날 만나기 이전까지 자신이 옷을 잘 입는 스타일인 줄 알았다고 한다.

 물론 사람의 겉모습만 가지고 판단하면 안 되지만 그래도 

내가 꿈꾸는 이상형의 이미지와는 너무 달랐기 때문에 

두 번째 만남을 가졌을 때 차라리 처음만 만나고 말 걸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멘붕 상태였던 나는 무슨 영화인지 기억도 안 나는 영화를

 보고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쩌다 전에 만났던

 사람들에 관해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 사람은 자기와 동갑이고 유치원 보육교사인 여자 친구와 

만났는데 애교가 많은 스타일이었다고 했다.

 근데 문제는 여자 친구가 아주 절실한 기독교인인 반면에 

자기는 불교인데 여자 친구가 원해서 매주 교회에 같이 나가며

 최대한 맞춰 주었는데 계속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던 여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해서 결국에는 이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집안이 불교여서 본인도 불교지만 자신은

 종교가 달라도 상대방이 괜찮다면 자신도 문제없다며 내 

종교를 물어봐서 천주교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또 전에 만났던 여자 친구에 관한 얘기를 했는데 

눈치 없이 안 해도 될 말을 계속 했다.

 나도 한 동안 썸을 탔던 대학 선배인 오빠를 사실 다 잊었는지 

확신할 수 없을 때였고 지금도 가끔 안부를 묻는 연락을 하고 있

는 상태였기 때문에 더 이상의 만남을 갖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헤어지고 나서 우리는 그만 만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그러자고 했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3 이메일 

    

 한 6개월 쯤 지났을까?

 여름에 모르는 사람한테 이메일이 와서 클릭을 

했는데 6개월 전에 소개팅 한 그 사람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다시 연락을 하면 불쾌해 할까 봐

 여러 번 생각한 끝에 이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자기의 근황에 대해 쓰고 국문과였던 그는 자신이 쓴 ‘시’ 

를 나에게 보내주었다.

 무시하고 넘어가면 너무 예의가 없는 것 같아서 나도 나의 

근황에 대해 짧게 얘기하고 답장을 보냈다.

 이렇게 우리는 전화 통화는 하지 않고 이메일을 주고 받았고

 그때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쓴 시를 보내줬다.

 개구쟁이처럼 생긴 모습과는 달리 그 사람이 보내준 시를 

읽으면서 생각이 꽤 깊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인하대 총장상을 받은 시를 보내 줬는데 자신의 

부모님에 관해 은유적으로 표현한 시였다.

 코 끝이 찡할 정도로 인상적인 시였고 왜 총장상까지 받았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 여운이 많이 남는 시였다.

 또 어느 날은 나를 생각하며 처음으로 쓴 ‘불면증’ 이라는 

시와 ‘붉은 거미’ 등의 시를 써서 나에 대한 인연을 이어 가고 

싶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난 그가 쓴 시를 읽으면서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것들에 관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었고 내가 받은 인상과는 

달리 아주 괜찮은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자연스레 다음 만남을 약속했다.

 근데 사귀고 나서 이 사람이 얘기하기를 이메일을 6개월이나 

지나서 보낸 것과 자신이 쓴 시를 계속해서 보낸 건 자신의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아직 대학 선배에 대한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며 내가 그만 

만나자고 한 날 괜찮으니까 계속 만나자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아서 시간적 여유를 두고 6개월 뒤에야 연락을 했다고 한다.     



#4 연인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됐다. 

 소개팅 이후 약 7개월 만에 만났는데 스타일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니트에 면바지를 입고 다행히

 책가방은 메지 않고 나왔다.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신경을 많이 쓰고 나갔는데

 이 사람이

 ‘더 예뻐졌네요?’ 라는 얘기로 반가움을 표현했고

 나 또한 싫지 않았다.

 오히려 설레임을 느끼고 있었다.

 영화광인 우리는 그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라며

 영화부터 먼저 보고 영화관 안에 있는 푸드 코트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오늘 본 영화에 대해 서로 많은 얘기를 했다.  

 즐거웠다.

 그리고 장소를 옮기려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대뜸

 그 사람이 내 손을 잡았는데 나도 모르게 너무 놀라서 

그만 손을 뿌리쳤다.

 너무 미안해서 놀래서 그랬다고 하며 우리는 다시

 손을 잡았다.

 2000년에 개봉한 드류 베리모어의 ‘25살의 키스’ 라는 영화가 

있는데 내가 25살에 이 사람과 첫 키스를 하게 되었고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

 내 인생의 첫 남자였고 나중에 나의 남편이 되는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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