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에 모란이 필 때
거기서 만나
모란 꽃봉오리 그 앞에서
나이 들면 입는다고
고이 모셔둔 원피스 있지
모란꽃 닮은 곱고 쨍그랑한 그 옷
깊은 비밀의 옷장 빗장을 열어
비단으로 지은 그 옷을 입고
찬란한 햇볕 속을 힘차게 걸어와
그렇게 걸어와
삼킬 듯이 몰려오던 삶의 파도여
이제 잔잔해져라
이제 고요해져라
흐린 물은 가고
떠들썩한 잔치도 가고
오직 맑은 물로 남아라
모란 꽃봉오리
노란 꽃술에 발을 담그고
쉼 없이 붕붕 거리는
호박벌처럼
황홀한 노동이
꽃이 되고 시가 되고
밥이 되고 네가 되어
화들짝 피어 나라
덕수궁에 모란이 필 때
거기서 만나
모란 꽃봉오리 바로 그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