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효정 Oct 11. 2024

행운을 드릴게요 녹보수나무꽃

키운 지 10년도 넘은 나무

이름도 잘 몰라서

잎이 반짝이는 나무라고

불렀어요


잘 자라지도 않아서

창밖에 내놓고

까맣게 잊은 채로

살았었는데


햇살이 좋아

창가에 턱 괴고

햇볕 샤워하다가

신기한 꽃이

소리 없이 피어난 걸

뒤늦게 알았어요


이거 봐봐, 신기하다

식구들 모두 모여

한 송이 꽃 바라보며

소근 거리는 밤


사실은요

저는 꽃을 잘 피우지 않아요

엄청 예민한 아이거든요

제가 불편한 점은요

뿌리를 묻은 화분이 너무 작고요

이파리도 흙먼지가 쌓여있어서

꽃을 피울까 말까

망설였어요


그래도 고마워요

날 벽 안에 가두지 않아서


날마다 햇볕과 바람

비와 이슬을 맞고 견디며

달빛으로 목욕하고

별빛으로 세수했지요


처음엔 잎이 간질간질

그다음엔

온몸에 기분 좋은

간지러움이 퍼지더니

꽃봉오리가

배시시 올라왔어요


그랬구나 그랬구나

참 장하다

나의 나무야


이제 더 큰 화분에

포슬포슬한 흙을 덮고

웅크린 뿌리를

맘껏 뻗으렴


혹시 감기 들까

아침엔 내어 놓고

저녁엔 들여 놓아주며

보살피는 하루하루


우리 집에 어떤 행운이 오려고

이 귀한 꽃이 피었을까요

가슴 설레는 하루하루


잎이 반짝이는 작은 나무

녹보수나무야

네가 꽃을 피운 것이

제일 큰 행운이구나


보고 또 보아도

자꾸만 네가 생각나는

흐뭇한 밤에

나의 작은 나무에게

다정한 말 걸어본다


녹보수나무꽃이 피었어요. 2024.10.10






오랫동안 키우던 ‘잎이 반짝이는 작은 나무’에서 종모양의 예쁜 꽃이 피어났습니다.

꽃집에 물어보니 꽃을 보기어려운 녹보수나무꽃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셨어요. 곧 좋은 일이 생길거라고.


무슨 행운이 올까 설레는 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어요!


'소년이 온다'를 읽고 눈물을 흘리며 잠 못 들었던 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읽고 시를 생각하던 새벽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따뜻하고 결연한 시선과 무참히 희생된 이름 없는 사람들을 향한 공감
투명한 언어들과 가슴을 파고드는 이야기에서

문학의 힘과 깊이에 감동한 시간들


'이 작가는 여리고 작은 보통의 사람들과 이미 하나가 되어 있구나.'


가슴 조이며 응원한 모든 분들이 그러하시겠지요.

저의 일처럼 기쁨이 넘치는 밤입니다.


이제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어보렵니다.


2024.10.10. 밤에


이전 19화 귀여워라 까마중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