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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안투네즈 Jul 15. 2022

엄마.

Silence by Arthur Beecher Carles




얼마 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미국에 사는 불효녀인 나는 장례식에 참석하지도 못하고 엄마에게 전화만 할 뿐이었다. 나의 전화를 받은 엄마는 슬픔에 가득 찬 목소리로 "나미야 엄마 고아됐어"라고 말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 마치 어린아이처럼 엄마, 엄마하고 울먹이며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엄마는 나에게 "너에게도 엄마는 그런 존재니? 나는 엄마가 없어지니까 가슴 한구석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아."라고 물었다. 그리고 나는 "당연하지. 나에게도 엄마는 그런 존재지."라고 대답했다.




언젠가 서른이 훨씬 넘은 나이에 나는 깊은 밤에 혼자 세차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엄마, 엄마하고 엄마를  번이고 목놓아 부르며 한참을  적이 있었다. 힘들고 고된 인생을 겨우겨우 살아가며 마주한 절망 앞에서 생각나는 것은 엄마뿐이었는데 그렇게  시간을 엄마를 부르며 울어 놓고는 정작 엄마에게 전화를 걸진 않았다.


내가 찾고 있던 것은 지금의 엄마가 아니라 갓난아기 시절 무엇을 해도 나를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 어떤 기대 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던 빛나던 기억 속의 엄마였다.


그렇게 헛헛하고 허망한 나의 가슴은 언제나 꽉 찬 사랑만을 받던 갓난아기 때의 엄마를 찾고 있었다.


"엄마. 엄마. 나 사랑이 너무 그리워요."


하지만 과연 내가 찾고 있었던 것은 엄마였을까. 언제나 엄마에게 돌아가고 싶은 허기진 마음이 찾고 있던 것은 엄마가 아니라 이제 나의 내면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간절함은 아니었을까.




어느 깊은 밤. 나는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캄캄한 밤하늘을 마주한 나의 텅 빈 마음속에서 질문이 올라왔다.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요."

그것은 에고의 질문이었고 무지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나를 짓누르던 질문이었다.


저 어떻게 살아야 하죠?

저는 언제쯤 사랑받을 수 있을까요?

저 좀 도와주세요.

왜 저는 이렇게 항상 힘들고 슬픈 건가요.

왜 제 삶에 행복은 없는 건가요.

산다는 것은 왜 이렇게 지치고 힘든 건가요.

저는 도대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건가요.


그리고 질문이 멈추자 깊고 조용한 밤바람 속에서 흩날리는 나뭇잎 소리와 함께 가슴에서 사랑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나는 항복했다. 환희에 찬 항복이었다.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은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새가 의지를 갖고 힘찬 날갯짓으로 따뜻한 대륙을 찾아 긴 여행을 마치고 땅에 착륙해 충만한 기쁨과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낀다 한들 그것이 어찌 그가 해낸 일이라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냥 자연의 법칙일 뿐이다.


갓 태어난 아기를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은 자연의 법칙이다. 그것은 그냥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의 법칙은 언제나 완벽하다.


나무는 그 무엇 하나 애쓰지 않고 받으려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알아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겨울이 되면 잎을 모조리 땅에 떨어트리고 그 자리에 있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 속에 있는 우리의 삶도 완벽하다. 무엇 하나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와야 할 것은 오고 떠나가야 할 것들은 떠나간다.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애쓰고 괴로워하며 살지 않아도 삶은 언제나 살아진다.


그리고 사랑을 받기 위해, 그 허기진 가슴을 채우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자연의 법칙은 언제나 주기만 할 뿐 우리는 그것을 받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준다. 빼앗긴 것은 그저 머릿속에만 있을 뿐이다.




어젯밤 나는 혼자 조용히 차를 마시며 할머니가 왜 죽는 순간에 엄마를 찾았을까를 생각해 봤다. 그리고 나만의 상상으로 그 미스터리를 추리하자면, 아마 죽는 마지막 순간 삶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삶은 마치 엄마가 갓난아이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처럼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삶을 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삶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세상을 향해 주어야 한다. 허기진 마음은 언제나 받기만을 원할 때 더 허기가 진다. 나의 허기진 사랑은 엄마의 가슴이 아닌 오직 나의 가슴으로 채워야 한다.


나의 가슴으로 온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할 것. 그리고 그 사랑으로 나를 무지라는 고통 속에서 구원해 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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