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개진 꽃잎이
바닥과 만나 하루종일
꽃의 그림자를 추구하는 일요일
커피 잔에서 김이 오른다
근사한 김이 나는 커피 잔이 종이컵에 인쇄되어 있다
버스전용차로 밖으로 관광버스가 미끄러진다
문이 열리면 붉은 외국어 깃발이 흩어진다
새들이 모두 날아간 박물관
녹음된 새소리가 불 켜진 간판을 따라 구부러진다
테이블 옆 중년 배우는 담배를 피워 문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 4시간을 대기했다
리허설이 끝나자 관객과 박수소리와 무대인사가 입장
비가 올까? 젖은 흙에서 연막 냄새가 난다
마이크 스탠드를 접는 스탭의 신발이
웅덩이를 밟고 지나가자 기름띠가 퍼진다
방문 아래
방문 그림자가 짙다
꽃의 색깔을 닮은 그림자
플라스틱 꽃처럼 썩는 재질이 아니다
여기야, 손을 들고 일어선 남자는
처음 본 사람이다
지나가는 고양이가 꼬리를 세운다
꼬리 안에 누군가 들어 간 흔적
표현되지 못한 일요일도 같이
곤두선다
고양이는 소리가 시력이다
다시 비가 올까?
알전구가 끼워진 천막, 젖은 것들이 비집고 들어와
조금은 빛이 난다 이름은 냄새
빗소리를 듣는 골목이 그 내용이다
반쯤 절단된 꼬리를, 구겨진 종이처럼
손바닥을 펼치고 기지개를 켜는
형식들의 일요일
일요일의 형식들
가로등 아래로 빗방울이 사라진다, 먼저 잡히는 쪽이 술래
누군가 꼬리 속으로 얼굴을 묻고 자꾸 들어갔다
관악구에서 동작구로 동작구에서 용산구로 용산구에서 중구로, 다시 중구에서 종로구로 짧은 풍경이 담긴 엽서를 순서대로 우체통에 넣은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