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에 광낸 듯
반짝 말끔한 산밤 신사와
겸손히 고개를 숙였다는
벼 이삭 숙녀의 속마음 이야기
뽀직 뿌직 빠직
산밤 나무 아래 퍼지는
속 시원한 소리
들어보셨소
갑갑했던
가시 넥타이 풀어
친절히 셔츠깃도 벌려 준 그대
젠틀한 그 양발 스킬에
꽤나 감동했지모오
정말 고맙소
이제야 좀 숨을 쉬겠어
코딱지만한 단칸방에서
옴짝달싹 못허고
둘이 꽉 껴안고 잠든 세월이
한 두 해가 아니라오
좋은 것도 하루이틀이지 않겠소?
야박한 밤송이 주인네는 널찍한 거실도 있더만
우리는 애들까지 셋도 넷도
한 방에 지내느라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었지
일 년 내내 부둥켜 살려면
땀은 또 얼마나 삐질 거리게
뭐 그 덕에 얻은 갈구릿빛 물광피부는
가문의 자랑이긴 하오
허나
이 참에 말 좀 합시다
왜 가을까지 참고 참아야 찾아오는 거요
힘들다 굳이 말하기 전에
미리 좀 들여다 봐주고 그럼 안되나
그러니
가을밤 집착은 이제 좀 버려 주시요
당신도 서둘러 맛보고 싶은 맘 내 다 아오.
여름밤은 안되겠오?
한 여름밤의 크리스마스는 된다 들었오
도골도골
농익은 쌀알갱이
잔뜩 살이 쪄 목디스크 걸리겠는데
사람들은 자꾸 내가 겸손하대요
수건이나 목에 걸어
경추 펴기 운동이나 좀 도와주시지요
농부아저씨 수확하러 오실 날
밤낮으로 기다리건만
강 건너 벼구경하듯
카메라 셔터나 누르는 당신은
너무 야박한 거 아닌가요
가체(加髢) 얹은 중전도
잠잘 때는 댕기머리 해주었단 말이죠
그리고 있잖아요
사람들은
후둑후둑 떨어진
노란 낟알들만
이삭인 줄 알아요
이삭이 예쁘다곤 안 하고
이삭을 줍는다고만 하잖아요
내 이름 원래부터 벼이삭인데
평소엔 나를 이름 빼고 ‘벼’라고 성만 부르더라고요
정 없게 말이죠
난 그 예쁜 이름 맘에 드는 걸
영어로는 아이작(isaac)이라나
이삭은 ’ 웃음‘이란 뜻까지 담겨 있댔어요
“에잇 아가씨 바보야?
아가씨 영어이름은 Rice ears 요“
“뭐라고요? 내가 쌀 귀때기라고요?
아저씨!
지금 나랑 한 판 하자는 거예요? “
이삭 싸대기 벼바밥
알밤 공격 바밤밤
햅 하고
햇 한
맛있는 가을전투
누가 이겼게요?
#햅쌀 #햇밤
#힙쌀 #핫밤
#전지적 산밤과이삭시점
#익어가는 가을
#웃어가는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