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였다. 길이에, 면적도 문제였다. 살아보지도 않은 광개토대왕 시절을 연상케 하는 광활함으로 수염은 인중을 지나 볼까지 뻗어 있었다. 며칠 만에 날것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낸 욕실 거울 속 나를, 나는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기에. 누가 쓰던 거라도 없나, 창틀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욕실엔 면도기는커녕 서슬 퍼런 찬바람뿐이었다.
씻은 내 몸은 멀리서 보면 물기를 머금은 채 반짝였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듬성듬성 군락을 이룬 털들이 자욱했다. 꼭 싸고 안 닦은 듯한 찝찝함. 수염은커녕 단순히 몸만 커져가던 그때도 샤워의 마무리 코스는 외모 한탄이었고, 내 몸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 몸이 그 몸일 텐데 그러고 보니 이상한 일이었다. 어떤 필름을 되돌려보아도, 거울 속 내가 지금처럼 자그마해 보였던 적은 없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 자리를 지켰다는데 그전엔 대중목욕탕쯤 되었을까. 번드르르한 외관과는 달리 내부 구조가 옹색한 장례식장은 욕실이 상주 대기실보다 넓었고, 상주 대기실이 빈소보다 넓었다. 욕실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거울 귀퉁이에서 나는 지금 피치 못할 사정으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움츠려 있었다. 무심코 흘려 보았던 다큐멘터리 속 그의 심정이 이랬을까. 석양이 저무는 초원 구석에 앉아 가만히 두 눈을 감던 늙은 수사자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무늬가 되어버린 그의 검은 눈물 자국이. 봄바람에 맥없이 흩날리던, 얼마 남지 않은 그의 갈기가…… 욕실은 넓으니만큼 외풍이 엄청났다.
조금 전 샤워를 마친 사수가 욕실에서 나왔을 때 뒤이어 욕실로 들어가려던 나는 멈칫했다. 퇴근한 줄 알았던 관계자가 또다시 비통한 표정으로 빈소로 들어섰다. 물품 바구니와 함께 전해주려던 걸 깜빡했다며, 빈소 바닥에 상주복 하나를 던지다시피 내려놓곤 그는 들어올 때보다 더 다급히 돌아섰다. 그러다 벽 모서리에 코를 찧었다. 코를 움켜쥐고 입구에 다다른 그가 한쪽 발에 신발을 꿰곤 나머지 한쪽 신발도 꿰려 했다. 그는 뭐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게 모양이었다. 그의 발이 자꾸 신발 위 허공을 힘차게 굴렀다. 결국 그는 깨금발을 디딘 그대로 한 손으론 코를 문지르며 다른 한 손으론 신발을 주워 들었다. 그의 허리가 간절함, 그 이상으로 굽혀졌다. 가까스로 신발을 주워 듦과 동시에 허리를 펴지 못하고 어, 어, 어, 몇 발 앞으로 밀려 나간 노년의 그는 절간 같은 빈소에 공허한 한마디를 뿌리며 신발장 위로 무너졌다.
"엄마야!"
주저앉아 코를 비롯한 여기저기를 번갈아 문지르는 그를 보며 사수는 자신도 어딘가가 아파져 오는 듯 찡그렸다. 관계자의 퇴근은 그가 서두르는 만큼 멀어지고 있었다. 그에게서. 그의 식구들에게서. 적어도 사수와 동년배로 보이는 그에게 살아 계신 엄마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상주복을 들고 욕실로 들어온 참이었다. 꼼꼼히 살필 여유가 없었다. 자아는 여전히 사수를 귀신 보듯 했고, 나는 자아가 잠든 이때 후딱 씻고 오롯이 상주 자리에 서야 한다는 각오뿐이었다. 상주복이 이 모양일 줄은 몰랐으니까. 씻은 뒤에야 펼쳐본 치마저고리는 진짜 딱 내 손바닥만 했다. 손만큼은 남녀노소 그 누구의 적정 크기와 견주어도 아담한 나였으므로 아동용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
"사수! 작아요!"
나는 욕실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다녀올게!"
뭐가 작은지 말하지 않아도 사수는 척하면 척이었다.
"저…… 그게……"
보육원 복도 못지않게 긴 장례식장 복도를 사수는 금세 왕복해 되돌아왔다. 나 역시 척하면 척. 말꼬리를 얼버무리는 게 사수는 별 소득 없이 돌아온 듯했다.
"이것뿐이래요?"
"현재는……"
사수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흠…… 사수와 나는 척하면 척. 사수는 조금만 계산을 때려봐도 답이 나오는 어리숙한 거짓말을 정성껏 짜내고 있었다.
좁다란 빈소 세 칸이 전부인 작은 시골 마을 장례식장엔 현재 죽은 사람도 산 사람도 우리 식구뿐이었다. 고로 상주복을 대여한 사람도 나뿐이었다.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어떤 장례식장이 손바닥만 한 상주복을 특대형이라고 속여 장사를 할까. 이게 가장 큰 거거나, 이것보다 큰 게 없는 거지…… 흠…… 그래도…… 제아무리 각박한 세상이라도…… 사람 몸이 얼마나 제각각인데 설마…… 상주복 치수가 진짜 이 손바닥 크기 하나로 통일돼 유통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이곳에만 없을 뿐 내가 입어도 낙낙한 치마저고리는 다른 장례식장엔 분명 있을 거야…… 아무렴…… 나는 사수의 뻔한 거짓말을 애써 긍정해보았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동네만 봐도 그랬으니까. 노인이 인구층의 주를 이루는 작은 시골이지만 우리 동네엔 없는 거 빼곤 다 있다. 사거리 한복판엔 '큰언니'라는 낡은 간판을 단 교복 전문점도 있다. 40년째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그 교복 전문점에서 나는 교복을 특수 제작했었다. 몇 번이나……
'너는 꽃이다. 너라는 단 한 송이. 작아서도 커, 커서도……'
중학생이 된 내가 새 교복을 입고 처음 등교하던 날, 사수는 이미 초등학교 5학년 때 자신의 키를 넘어선 내 어깨에 두 손을 올리곤 감격에 겨워했다. 묻지도 않은 걸 집어내고 쓸어냈다. 내 주위를 빙빙 돌며 꽃이네 뭐네 호들갑 떠는 그런 사수를 나는 못마땅하게 내려다보았다. 흡, 하고 숨을 참으며 말이다. 사수가 일으키는 바람에서 사수표 제육덮밥 냄새가 진동했다. 그 냄새는 사수에게 스며들어 사수의 냄새가 되어버렸다. 이 근방에 사수가 있구나, 주위를 둘러보지 않아도 그 냄새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때였다. 그거 안 먹어도 잘만 크는데 그거 안 먹으면 내가 말라죽기라도 하는 듯 사수가 저녁마다 1등급 돼지고기를 볶던 때. 약속 없이도, 서로가 서로를 마냥 기다리던 때. 한 달, 두 달, 석 달…… 나는 아침마다 흡,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보육원을 빠져나왔다. 대문 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그 아이와 손을 맞잡고 학교로 향했다. 보육원 담벼락 너머에 펼쳐진 푸르른 가로수와 쏟아지는 햇살, 이따금 퍼붓는 소나기와 천둥 번개에서도 저마다의 싱그러운 내음이 났다. 학교 급식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등굣길을 그 아이와 나란히 걸으며 나는 속으로 참 많이도 빌었었다. 오늘 저녁은 차라리
시판 제육덮밥이길.
그날, 학교를 파한 나는 어쩐지 서글픈 마음으로 집에 들어섰다. 나를 보육원에 데려다주고 자기 집으로 부리나케 뛰어가는 그 아이의 등을 오래도록 지켜본 날이었다. 돌아볼 때까지. 느릿느릿 뒤돌아 대문을 열자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건 역시나, 마당 가득 고인 그 누린내였다. 저기 주방 쪽에선 신들린 듯한 사수의 찬송가 허밍이 들려오고, 나는 누가 볼세라 까치발을 들고 내 방으로 직행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침대에 몸을 묻었다. 졸음이 밀려와 꾸벅꾸벅 졸다 갓 지은 밥 냄새가 풍겨와 눈을 떴는데, 그 밥은 저녁밥이 아니라 아침밥이었다. 신의 존재만큼이나 아리송했지만, 나는 빈속으로 잠들어버린 거였다. 이게 소화불량이라는 건가. 그때 나는 난생처음 체해봤다. 실질적으로 먹은 것 없이 냄새만으로. 사수의 허밍도 내 소화불량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기 반 소리 반이던 사수의 허밍은 이제 구십이 공기였다. 그렇게 닥쳐온 그해 겨울방학…… 그 격변의 세월을 지나며 내 교복은 맞춘 지 일 년도 안 돼 인형 옷처럼 작아져 버렸지만, 사수는 지금도 내게서 집어내고 쓸어낸다. 처음 그날처럼. 까치발을 딛고.
"자아는요?"
"효자야, 효자. 자, 쭉 자."
"사수, 관계자 좀 불러주세요."
"다녀올게?!"
척하면 척인데 왜냐고 묻지도 뭐냐고 따지지도 않는다. 사수의 발소리가 멀어져 갔다. 유난히 작으니 뭐든 작은 사수. 새의 소리가 이럴까. 사수의 발소리를 들으니, 보육원 마당에 막 내린 새하얀 눈 위로 종종종 박히던 작은 새의 발바닥 모양이 떠올랐다. 상주는 구경도 하지 못한 채 종일 장례식장 안팎을 뛰어다니는 사수…… 하지만 이 문밖에 사수가 없었다면…… 무릎이 어쩌네 허리가 어쩌네 해도, 사수가 또래보다 비교적 정정하게 뛰어다닐 형편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사수만 믿고 한가하게 거울이나 들여다볼 수 있었을까. 우리에 갇힌 큰 짐승처럼 욕실을 뱅뱅 돌며 식은땀이나 흘렸겠지. 그래서 씻고 또 씻고 아마 지금도 씻고 있겠지.
욕실에 들어서자마자 물부터 튼 게 이 사달의 시작이었다. 내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그 이유 말이다. 빨리 씻으려고 서두르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벼락을 맞았고, 나는 입고 있던 교복과 마스크와 그때의 심정까지도 홀랑 젖어버리고 말았다. 수도꼭지 잠글 생각은 못하고 날아다니는 샤워기만 쫓아다녔다. 거대한 자성에 끌리듯 온몸의 털이 일제히 곤두섰다. 물이 급살 맞게 찼다. 허둥지둥 온수 쪽으로 수도꼭지를 돌리자 퍼붓던 찬물이 확 사그라들었다. 졸졸졸 흐르는 온수는 순간 자아의 오줌 줄기를 떠올리게 했다. 그렇게 어찌어찌 씻긴 씻었는데 이번엔 수건이 없었다. 상주복만 챙겼지, 그건 챙겨야겠단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바로 사수에게 부탁해 문틈으로 건네받았다. 휴우우우…… 호기롭게 자원한 상주였지만 그 자리에 가는 길마저 난관에 난관이었다.
곧 귀환을 알리는 사수의 헛기침과 함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허겁지겁 욕실 문고리에 걸어둔 새 마스크부터 썼다. 수염이 난 내게도, 내게 난 수염에게도 죄는 없었다. 욕실 안엔 나뿐이라는 걸 아는데도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문을 잠근다는 건, 그런 거니까.
너른 욕실 거울에 마스크만 쓴 알몸이 떠올랐다. 수건은 못 챙겼어도 마스크는 일 번으로 챙겼다. 사수가 씻으러 들어가자마자 나는 사수의 장바구니부터 뒤졌으니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사수가 사 온 마스크 뭉치를 끝끝내 찾아냈으니까. 그중 하나를 꺼내 샤샤샥 입에 물고, 나머지는 내 가방 깊숙이 넣어놓았으니까. 30시간 넘게 쓴 나달나달한 마스크를 벗어던질 수 있다니. 게다가 새 마스크 대량 확보까지. 그건 300시간도 너끈할 물량이었다. 못 밀었어도, 나는 일단 숨통이 트였다. 노크 소리가 다급해졌다.
"무슨 일이신지……"
설마 직원이 한 명뿐인가. 이쯤이면 다른 관계자가 올 줄 알았는데, 문 너머 관계자는 내가 아는 그 관계자였다. 때가 오긴 오는 걸까. 어째선지 그는 아직도 퇴근 전이었다.
"양복을 원합니다."
벽에 찧은 코는 좀 어떠신지 묻고 싶었지만 나는 본론만 말했다.
"저…… 아까 분명히 따, 따님이시라고……"
"그렇습니다만."
"따님이 양복이라…… 히야아아아아…… 이것 참……"
관계자의 한숨이 욕실 문틈을 지독하게 파고들었다. 그는 깊이 고뇌하는 듯했다. 나는 흔들리지 않고 다시금 본론을 말했다.
"죄가 되는 일인가요?"
"히야아아아아…… 이것 참…… 그게 아니라…… 히야아아아아…… 치수는 어떻게……"
"아, 그거요? 뭐,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요."
난 또 뭐라고. 그럼 그렇지. 그렇고말고. 관계자의 고뇌는 부질없었다. 법에는 까막눈인 내가 봐도 여성이 남성용 상주복을 입는 일은 죄가 될 수 없었다. 죄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