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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은 Nov 03. 2024

15화 (2)위 아 더 칠드런

에인젤이 토마토 가마니를 제단 앞에 내려놓았다. 교과서 속 구한말 쌀가마니를 실감케 하는 의미심장한 크기였다. 토마토는 고인들이 좋아했던 음식 중 하나. 특히 도다리는 푸릇푸릇한 토마토의 아삭함을 좋아했었다. 가마니 안에는 익지 않은 토마토가 가득했다. 상처 없는 것, 단단한 것, 향기로운 것으로만 채우기 위해 에인젤은 토마토 농장에서 겹벌이를 뛰며 눈치 보고, 고르고, 담고, 빼고, 더 마음에 드는 것으로 다시 담고, 했을 거다. 영정 사진을 바라보는 에인젤의 턱 끝에 눈물방울이 매달렸다. 내 친구의 윗니도 아랫니도 안 보였다. 나는 그런 우리를 안다.


에인젤 옆에 서서 지금도 허벅지를 문지르는 살라자에게 다시 시선을 던졌다. 나는 그의 새빨간 가죽바지보다도 길이, 굵기, 윤기, 색, 숱, 결, 하다 못해 이마의 헤어라인까지 완벽한 그의 머리칼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내가 땀 때문에 목덜미쯤에서 포기해야 했던,  그 여자 아이돌의 긴 생머리였다. 흉내라도 내보는 게 소원이었던 그것.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힌 살라자가 그걸 찰랑찰랑 흔들면 가발이 아닐까, 당겨보고도 싶었다. 당겨보나 마나 그건 절대 가발일 리 없었지만 말이다. 그의 머리칼에선 기계기름이 아닌 생명체 고유의 기름기가 돌았다. 심지어 그 분비량마저 적당했다. 하지만 현재 그의 모든 상황합쳐볼 때, 저 머리칼은 그에게 없는 게 나았다. 저것만 없으면 될 듯했다. 살라자는 자주 고개를 뒤로 젖혀 머리칼을 흔들곤 했다. 말이 자주지 그냥 내내 흔들고 있다고 보면 되었다. 마치 자신과 머리칼이 연결되었음을 강조하듯. 잡아당길 테면 얼마든지 잡아당겨 보라는 듯. 그의 등장과 함께 빈소엔 아련한 꽃내음이 퍼지고 있었다. 향냄새는 진작 그것에 묻혔다. 식사를 시작하기 전 나는 재가 쌓인 향로에 한 줌의 향을 새로이 피웠었다. 주로 사수가 살려온 향불이었다. 살라자는 머릿결 관리에 진심인 듯했다. 그에게선 고급 샴푸 냄새가 났다. 같은 향기의 샴푸를 나도 몇 번 이용해본 적 있었다. 어떤 종류의 털도 쓰는 즉시 찰랑찰랑해진대서 큰돈 주고 샀는데, 내 돼지털은 진짜 쓰는 즉시만 찰랑찰랑해졌다. 결국 남은  인위적인 냄새뿐이었다. 타고난 걸 이길 고급은 없었다.


제단 앞에 선 에인젤과 살라자가 나란히 절을 했다. 촤르르, 살라자의 가죽바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은빛 체인들이 빈소 바닥을 쓸며 영롱한 소리를 냈다. 양팔을 있는 대로 벌려 합장하던 그들. 그 순간 살라자의 가죽점퍼에선 우두둑 실밥 터지는 소리까지 났었다. 그런 거창한 준비 자세가 민망하게도 그들의 절은 한 번도 아닌 반 번에서 그쳤다. 반절을 한 그들이 뒤로 물러났다. 덕분에 그들과 맞절하기 위해 배꼽 위에 다소곳이 모은 내 두 손은 멋쩍게 작은 기지개를 켜고 말았다. 그사이 서로의 어깨에 기대 알 수 없는 언어로 담소를 나누며 멀어진 그들은 벌써 한 상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그래그래…… 저쪽 문화권에서도 밥은 때와 장소를 가릴 문제는 아닐 거였다.


이쪽 문화권에서도 조문객을 맨입으로 보낼 순 없었다. 나는 당혹감을 감추고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접시에 이것저것 음식을 옮겨 담는데, 젓가락이 부딪히는 쇳소리 사이로 돌연 명료하고도 깨끗한 울림이 섞여 들었다. 딱, 딱, 딱, 딱, 절도 있게 손가락을 튕기는 핑거스냅! 왁자지껄 떠들던 에인젤과 살라자가 한 방에 조용해졌다. 이건, 수업 시간에 조는 나를 깨우려 선생님이 내는 소음과는 차원이 다른 청량함이었다. 단 네 번의 울림에 묻어나는 특유의 리듬감. 나와 같은 음악인이라면 바로 알아챘을 것이다. 소리의 주인은 양손을 한 손처럼 쓰고 있었다. 두 손으로 미세하게 엇박자를 내며, 거기서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냈다. 하루 이틀 닦아온 솜씨가 아니었다.


“There comes a time♩”


그때였다.


“When we need a certain call♪”


바로 노래가 시작되었다.


“When the world♩”


나는 고개를 들었다.


“must come together as one♩♩”


형형색색 한 무리의 가죽바지가 빈소로 들어서고 있었다.


“There are people dying♬”


나는 손쓸 틈이 없었다.


“Oh, and it’s time to lend a hand♪to life♩”


그들의 핑거스냅이 멜로디 위로 부드럽게 쌓였다 ……딱,


“The greatest gift of all♪♬”


그들의 몸이 각자의 그루브를 타고 미끄러졌다 …… 딱,


“We can’t go on♪ pretending day by day♩”


이쪽에서 꿀렁꿀렁 저쪽에서 꿀렁꿀렁


“That someone♩somehow will soon make a change♩♩”


촤르르, 촤르르, 그들의 체인이 함께 미끄러졌다.


“We’re all a part of♪ God’s great big family♪”


에인젤이 그들에게 미끄러졌다.


“And the truth♩ you know love is all we need♪♬”


살라자가 그들에게 미끄러졌다.


“We are the world♩♩”


촤르르, 촤르르, 그들이 떼로 미끄러졌다.


“We are the children♪⌒”


'으흐흠으흠♪'


나는 하마터면 미끄러질 뻔했다……! 내가 나를 도왔다. 여기서부터 가사를 몰랐다. 


나는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외쳤다.


"저스트 모먼!"


변하는 건 없었다.


"저스트…… 모먼?"


그들이 더욱 미끄러졌다.


"저스트 모멘트……?"


 촤르르, 촤르르, 그들이 사방에서 꿀렁거렸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염병할!"


그 순간 가장 꿀렁거리에인젤이 고장 난 듯 멈춰 섰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에인젤이 엄지와 중지로 만든 동그라미를 높이 들어 올렸다. 가죽바지들의 머리 위로 작게 떠오르는 그걸 나는 알아보았다. 내 친구 에인젤이 다급히 제단 앞으로 미끄러져 갔다. 각자의 방향에서 꿀렁거리던 가죽바지들이 동시에 에인젤을 향해 꿀렁거렸다. 쉿! 에인젤이 입술에 검지를 붙였다. 멜로디가 멈추었다. 그들의 몸이 멈추었다. 촤륵, 체인이 멈추었다.


"끄- 끄- 끄와와와와왕!"


크레셴도, 크레셴도. 그들의 핑거스냅을 타고 내 귓속에서 점점 커지던 소리. 자아의 울음소리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굳게 닫힌 상주 대기실 으로 모여들었다.



*



곧장 가도 되는 길을 돌고 돌아 집으로 향하던 때, 돌고 도는 그 길마저 어제와 같음을 깨달았을 때, 습관처럼 멈춰 선 다리 위에서 들려온 노래. 응원해요, 사랑해요, 현실감 없는 멘트를 반복하던 자살 예방 스피커가 웬일로 묵은 한숨처럼 툭 내뱉던 노래. 알고 보니 웬일이 아니라 그냥 제 일이었던 노래. 멘트, 노래, 멘트, 노래가 무한 반복되는 시스템 안에서 그저 제 차례가 돌아와 흘러나왔을 뿐인 노래. 들어도 들어도 뭔 말인지 알 수 없던 노래. 꼭 영어 노래라서가 아니라,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어서 더욱 알아들을 수 없던 노래. 나는 문득 목소리의 주인들을 알고 싶어졌다. 바로 철수한 뒤 보육원에 돌아와 검색에 들어갔다. 나는 무작정 그들의 이름을 써보았다. 라이오넬 리치, 스티비 원더, 제임스 잉그램, 마이클 잭슨, 다이애나 로스, 신디 로퍼, 밥 딜런, 레이 찰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이름이 저니인 줄 알았는데 하드 록 밴드 저니의 보컬이었던 스티브 페리. 여기까지 썼더니,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어졌다. 부르니 기억하고 싶어졌다. 기억하니, 그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내가 없던 세상에서부터 존재해온 목소리. 몇몇 목소리의 주인은 이미 죽어서 내가 존재하는 지금 세상에 없었다. 자발적으로 시립 도서관에 찾아가 회원이 되었다. 다리 위가 아닌 그곳으로 하교했다. 그들의 자서전과 관련 기록을 찾아 읽으며 처음 코피란 걸 쏟았다. 어쩜…… 사연 없는 사람 없었다. '위 아 더 월드' 안에서 하나 된 가수만 40명이 넘었다. 코러스도 여럿이었는데 그들은 이름부터 찾아내기 쉽지 않았다. 앞으로 더욱 색에 힘써 마지막 한 명의 삶까지 낱낱이 기억하리라, 나는 코피를 닦으며 다짐했다. 그들의 제보는 지금도 이어졌다. 그들이 살아 있어도. 그들이 죽어 있어도.


We are the world 위 아 더 월드


그러느라 정작 가사는 여기까지밖에 못 외웠다.


We are the children 위 아 더 칠드런


지금 막 외웠다.



*



'가수에게 목소리는 그의 역사야. 타고나는 건 결국 없어. 모든 건 늙고 변하니까. 목소리도 마찬가지지. 노래는 그때의 그를 듣는 게 아니야, 지금의 그를 보는 거야. 그는 그 노래의 역사야. 노래엔 주인이 없으니까. 난 네 목소리가 참 궁금해. 듣고 있어도 궁금해. 궁금하다는 건, 알고 싶다는 거야. 안다는 건, 보고 싶다는 거야. 본다는 건, 기억하고 싶다는 거야. 기억한다는 건, 부르고 싶다는 거야. 고자비, 네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러 봐. 너는 이제 가수가 된 거야. 고자비, 네 목소리로 그의 노래를 불러 봐. 너는 이제 그 노래의 역사가 된 거야. 바로 그게, 너야.'


모두한숨과 함께 내 삑사리가 깊어가던 그 밤, 녹음에 실패한 나는 들짐승 같은 내 목소리를 한탄하며 유튜브뒤적였다. 트로트 코러스는 처음이었다. 몸도 목소리도 들풀처럼 하늘거리는 영상 속 아이돌의 몸짓 위로 내 눈물 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택시비 그까짓 거 당겨준다는데 왜 우냐고, 내게 1만 원을 쥐여준 프로듀서는 저만치 멀어졌다 되돌아와 내게 말해주었다. 택시에 오른 나를 향해 그는 양손을 높이 흔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가 그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



숱한 실패 뒤, 코러스계의 저음 신예로 떠오른 나는 그로부터 얼마 뒤 수염이 났다. 마스크 쓰고 뭔 노래냐고 나를 자른 건, 그때 내가 코러스를 맡은 무명 가수였다. 새로운 코러스 영입한 그의 노래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중독성 강한 그 후렴구는 광고 음악으로도 쓰였다. 광고는 노래만큼 유명해졌다. 어디서 그 노래가 들려오면 이제 나는 그 광고 생각만 났다. 여전히 무명인 그의 이름을 나는 아직 모른다. 




-


https://youtube.com/watch?v=s3wNuru4U0I&si=4pa3QT7E2_5rhEX_


<뿌리의 발견>의 이름 하나, 고자비

하나의 씨앗으로 태어난 그녀가
마침내 한 줄기 뿌리를 뻗어내며 부릅니다.
안간힘으로.

We are the world
We are the Children♪⌒




그녀의 노래는 다음 화에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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