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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은 Nov 06. 2024

15화 (3)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었다는 뜻이야

마침내 마지막 체인의 흔들림 멈추었을 때 자아의 울음소리멈추었다. 나는 까치발을 들고 대기실 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방금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자아는 도로 잠들어 있었다. 고르게 오르내리는 자아의 앞가슴. 그 위로 겹쳐지는 나의 피맺힌 절규, 저스트 모먼. 그것들이 뒤섞이며 만들어내는 내 안의 불협화음. 나는 확 뻘쭘해졌다. 그렇지만 금세 피식 웃고 말았다. 자아는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고, 그런 자아를 보며 내가 웃음을 참을 필요는 없었다. 삑사리는 순간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뻘쭘함 역시 순간이면 족했다. 시대의 명곡 'We are the world' 역시 수 번의 삑사리와 수 번의 조율 끝에 탄생했다고, 당시 녹음을 지휘한 제작자 퀸시 존스는 한 인터뷰에서 회상했었다. 삑사리 역시 나의 노래였다.


나는 이제야 자세히 세어보았다. 살라자를 뺀 가죽바지 일동은 모두 다섯이었다. 그들은 에인젤과 살라자의 친구들이었다. 2년 전, 스무 살이던 일곱 친구는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떠나올 때 비행기 안에서 처음 만났다. 에인젤과 살라자는 비행기에서 내리기 직전 연인이 되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각자의 일터로 흩어졌지만, 그들의 곗돈은 하나의 통장에 느릿느릿 쌓였다. 사연 없는 삶 없듯 사연 없는 노래 없었다. 이처럼 사연 없는 장례식도…… 마침내 모든 게 멈추고 빈소가 완전히 조용해진 그 순간, 나와 눈을 맞추고 있던 에인젤이 양손으로 핑거스냅을 흉내 내며 한차례 크게 꿀렁꿀렁했다. 에인젤은 거대한 말줄임표 같았다. 필리핀의 장례식에서 가장 빠질 수 없는 그건 바로 음악이라고, 에인젤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We are the world'는 그들 모두가 가사를 외는 유일한 노래였고, 잡음 없는 만장일치로 오늘의 애도 음악으로 자동 채택된 거였다. 원래는 도박도 빠질 수 없다고, 에인젤은 그대로 꿀렁꿀렁하며 뭔가를 재빨리 섞는 손놀림으로 덧붙였다. 그들은 간당간당하게 미성년자인 나를 위해 도박 역시 만장일치로 참아주었다. 


모두가 함께 떠나는 온전한 단 하루의 휴가. 그들은 이 라이딩을 위해 몇 달 전부터 서로 일정을 조율하며 오늘을 기다렸다. 토마토 농장 일이 바빠 에인젤은 결국 합류하지 못했지만, 일정은 강행되었다. 한참을 달려 속초에 거의 도착했을 때 살라자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에인젤의 목소리가 그의 휴대전화 너머에서 쩌렁쩌렁했다. 치사하게 나만 두고 너희들만 어디 가냐는 게 아니었다. 왔다고, 너희들을 두고 나는 이미 이곳에 도착했다고, 저기 앞에 장례식장 간판이 보인다며 에인젤은 울먹였다. 혼자서 오려고 일부러 말하지 않았는데, 결국 말하게 돼 미안하다고. 혼자서는 끝내 자신이 없다고. 살라자는 두 손바닥에 흥건한 땀을 가죽바지에 문지른 뒤 바로 핸들을 꺾었다. 친구를 혼자 보낼 수 없는 나머지 친구들 역시 바로 방향을 틀었다. 살라자는 에인젤을 통해 고인들을 이름으로 몇 번 접한 게 다였다. 나머지 가죽바지들 역시 지금 막 고인들의 존재와 죽음을 동시에 알았다. 고인들과 이렇다 할 인연이 없는 그들에게 순간의 유턴은 그저 불가항력이었다.


오색빛깔 가죽바지가 쓸고 간 빈소는 새하얀 도화지 같았다. 준비한 노래의 1절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문을 강제 종료당한 그들은 그길로 주방으로 알아서들 한 상 건하게 차렸다. 밥은, 그런 거였다. 어디서나 가장 빠질 수 없는 것. 그 밥을 준비하는 이의 수고, 그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홀로 빈소를 지키는 나 대신 상을 차린 그들은 접시를 깨끗이 비웠고 분리수거까지 마친 뒤 돌아갔다. 그사이 빈소엔 작게 체인이 쓸리거나 부딪히는 소리뿐이었다. 필리핀엔 '셀프' 식당이 거의 없다고, 언젠가 놀러 간 외국인 노동자 센터에서 한 필리핀 노동자에게 들은 기억이 났다. 주문과 상차림은 물론, 패스트푸드 체인점에서 햄버거를 먹은 뒤에도 손님은 본인 식판을 치울 필요 없다고. 그건,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의 일이자 생계 수단이라고 말이다. 아무래도 이들 단체 조문객의 '셀프 앤드 리필'은 조금 전 그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피어난 문화 같았다. 이를 테면, 1절 중간에 노래를 강제로 멈춰야 했던 그들의 애드리브 같은 것. 저스트 모먼, 저스트 모먼, 자아의 초고음 울음소리에 식겁했는지 그 뒤로 그들은 하나같이 까치발이었다.


조문을 오기 전 에인젤은 외국인 노동자 센터에 먼저 들렀다. 어제 겹벌이를 뛰며 틈틈이 만든 팻말을 그 출입문에 붙였다. 문구는 '휴식 기간', 한국어였다. 사수에게 부고장 문자를 받은 건 어제였지만, 에인젤은 바로 조문을 오기보단 자신의 일에 먼저 집중했다. 각국의 노동자가 하루에도 수십 명 찾아오는 그곳, 자신의 일터. 고인들의 죽음을 모른 채 찾아올 그들의 걸음이 헛되지만은 않도록, 에인젤은 각국의  언어를 검색해 일일이 '휴식 기간' 팻말을 만들었다. 각자의 이유로 그곳에 걸음 할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죽음을 한꺼번에 통보하는 건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초상' 대신 '휴식'이라는 단어를 골랐다. '휴식'이라는 에 공감하지 못할 노동자는 없을 거라고도, 에인젤은 판단했다. 수십 개의 팻말을 붙이기에 문 하나는 턱없이 비좁았다. 복도 벽에까지 늘어선 팻말들을 에인젤은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러다 그녀는 불쑥 두 눈을 길게 감았다, 떴다. 자신의 눈동자를 떠다니는 어지러운 말들을 단 한 단어로 지워버리 단호한 눈짓이었다. 결심. 에인젤은 외국인 노동자 센터에서 그렇게 자발적으로 퇴사했다. 얼마 전 필리핀에 있는 에인젤의 엄마는 큰딸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에인젤, 아기는 엄마 배 속에서 생겨나. 위대하게. 처음엔 새끼손톱보다도 작지. 그래서 엄마는 자신과 아기를 긴 끈으로 연결해 놔, 잃어버릴까 봐. 그게, 탯줄이야. 아기는 탯줄로 전해져 오는 모든 걸 먹고 쑥쑥 자라. 엄마 배 속에서 팔다리를 오므릴 수도 없을 만큼 커질 때까지. 바로 그때, 답답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 탯줄을 끊고 세상으로 나오는 거야. 그 순간 에인젤 네가 태어난 거고, 나는 너를 태어나게 한 거야. 그럼 엄마와 아기가 탯줄로 연결되었던 자리는 점점 말라가. 배꼽이 돼. 흔적이 돼. 이제 엄마와 아기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었다는 뜻이야, 영원히. 우리는 모두가 그렇게 연결되어 있어. 지금 막 엄마 배 속에 생겨난 새 생명도 말이야. 에인젤, 네게 일곱째 동생이 생겼다는구나. 너는 아무 걱정하지 마. 너 낳던 날에도, 네 동생들 낳던 날에도 일을 놓지 않은 사람이 바로 네 엄마니까. 네 일곱째 동생 낳는 날에도 엄마는 뭐라도 할 거야. 에인젤, 힘에 부치면 언제든 집으로 돌아와. 너의 무엇도 너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잊지 말렴.』


휴대전화 어플에서 튀어나온 앵무새가 편지 속 영어한국어 바꾸기 시작했다. 부리가 아닌 날개를 썼다. 화면 속 새가 한참 제자리를 날아 새로이 써 엄마의 편지를 에인젤은 육개장을 먹다 말고 불쑥 내게 보여주었다. 우리는 마주 보며 조금 웃었다.  지를 내 휴대전화에 전달해 놓겠다고도, 에인젤은 짓으로 말했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단체 조문객 중 가장 먼저 장례식장을 떴다. 하루아침에, 에인젤에게 토마토 농장은 겹벌이가 아닌 유일한 벌이 수단이 되었다. 외출증 잠깐 조문을 온 에인젤에게 토마토 농장주는 사람 밥도 못 먹게 한사코 전화를 걸어왔다. 여기까지 온 김에 사라 수녀님까지 보고 가겠노라, 에인젤이 울먹울먹 양해를 구했지만 농장주는 나 죽는다고 오히려 자기가 곡소리를 냈다. 여름 토마토보다 비싼 겨울 토마토가 막 출하되는 시기였다. 에인젤은 빈소 입구에 서서 사수가 어서 입관을 끝내고 돌아오길 조금 더 기다리다 결국 농장으로 돌아갔다. 나는 멀어지는 에인젤을 향해 손을 높이 흔들었다. 에인젤 역시 내게 그랬다. 지금 우리에겐 어떤 말도 필요 없다는 걸 우리는 알았다.




*




간발의 차였다. 에인젤의 뒤를 이어 가죽바지들이 우르르 빠져나가자 입관을 마친 사수와 대장 조리사가 빈소로 들어섰다. 사수와 대장 조리사가 제단을 멀리 보며 말없이 빈소 뒤쪽 벽에 기대앉았다. 척하면 척. 나는 그들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지친 듯한 두 할머니는 입을 열 힘조차 없어 보였다.


"좀 잤어?"


한참 뒤 사수가 들릴 듯 말 듯 내게 물었다.


"……"


"자아는?"


"자다 깨다 자다 깨다 그래요……"


"조문객은?"


"……"


나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단체 조문객 이야기는 나중에도 얼마든지 있었고, 무엇보다 사수는 당장 잠을 자야 할 듯했다. 새빨간 핏발이 비처럼 내리는 눈을 나는 현실은 물론 좀비물에서도 본 적 없었다. 대장 조리사는 사수의 어깨에 고개를 떨군  이미 졸고 있었다.


"자비야, 푹 쉬어둬. 조문객은 저녁에 밀려들 테니까."


밀려든다,는 사수의 말이 아찔했다.


"……"


그래서 나는 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만히 빈소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들던 가죽바지들의 몸짓이 그곳에서 꿀렁꿀렁 되살아났다.


"식구들도 저녁때 다시 모일 테고……"


눈을 감으며, 사수는 지금 보이지 않는 식구들에 대해 찬찬히 설명했다. 고인들과 함께 태워질 마지막 편지를 사수에게 부탁하고 동트기 전 출근한 경찰 똘라. 당장 해결해야 할 노동자 문제가 생겨 바랑도 챙기지 못하고 아무도 모르는 새 나선 것으로 추정되는 캄보디아 불교센터의 수장, 스님. 아이들이 눈에 밟혔는지, 입관실 천장이 무너지기 전에 이미 보육원으로 돌아간 보육 교사 두 수녀님까지. 남겨진 이들에겐 그들을 떠나보내는 것만큼이나 막중한 현실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입관에 참석한 사람은 사수와 대장 조리사뿐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신생아와 비슷한 패턴으로 틈틈이 잠을 자온 상주 고개를 숙였다.


"사수, 빈소엔 제가 있을게요. 들어가서 한숨……"


한참 뒤 떨군 고개를 가까스로 들어 올리며 나는 입을 떼었다. 그 순간 사수의 고개가 대장 조리사 쪽으로 툭 미끄러졌다. 입관을 마친 두 할머니는 그렇게 서로에게 기대 잠들어 있었다.


아예 누우시라, 나는 두어 번 더 그들을 깨워보았다. 두 앞가슴이 사이좋게 오르락내리락할 뿐, 그들은 감은 눈 그대로였다. 그들의 머리 위로 형광등 불빛이 쏟아졌다. 그것을 끈 뒤 나는 상주 자리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았다. 멀리서, 잠든 두 할머니를 그렇게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다 벽에 등을 기댔다. 머리도 기댔다. 벽 너머 대기실은 고요했고, 자아는 그곳에서 평온히 잠들어 있을 거였다. 빈소엔 적막과 타오르는 촛불의 파장이 가득했다. 시끄러운 건, 뜨려는 힘과 감으려는 힘 사이에서 파르르 전쟁 중인 내 눈꺼풀뿐이었다. 잠든 할머니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나는 조금씩 졸렸다. 눈을 부릅뜨며 시선을 촛불로 옮겨보았지만 어림없었다. 나는 점점 눈이 감겼다. 촛불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그들의 영정 사진이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어쩌면 일곱 번이 되었을 맞절은 물론 음식을 차리고 치우는 수고 없이 단체 조문객을 치른 뒤였다. 나는 진짜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달걀말이는 역대급으로 맛있었다. 이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런 때 나는, 마스크를 교체해 볼까, 세수를 해 볼까, 그사이 조문객이 오면 어쩌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졸음만이 퍼붓듯 쏟아졌다. 이런 졸음은 처음이었다. 단체 조문객은, 그런 단체 조문객은 처음이었듯. 꿀렁꿀렁 하나로 흐르는. 보이지 않는 그곳까지 하나로 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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