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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은 Oct 27. 2024

1화 수염은, 무덤에서도 잔디인 양 자라날 것 같았다

나는 주머니 속 손거울을 감아쥐었다. 동시에 재빠른 곁눈질로 주위를 살폈다. 뒷골목은 고요했고, 혹시나 해 둘러본 개구멍엔 얼씬대는 그림자 하나 없었다. 비로소 내가 혼자임을 확신한 나는 손거울을 꺼내 들었다. 가만히, 특대형 마스크를 벗어 내렸다. 어제보다 새카매진 한 여자의 턱이 손거울에 꽉 들어찼다. 거울 속 두 눈을 나는 그대로 치켜떴다. 정신없이 달려 내려온 내리막길이 잿빛 하늘가로 뻗어 있었다. , 달려오는 기차 앞에 선 기분이었다.


'정신 차려, 꿈 아니니까.'


꿈일 리 없었다. 벌써 한 달째였다. 마스크와 함께 호흡하는 것도, 중증 독감 환자를 흉내 내는 것도, 툭하면 굶는 것도, 하굣길 모퉁이에 숨어 남몰래 손거울에 턱수염을 비춰보는 것도.


엊그제만 해도 모래알처럼 까슬하던 제법 자라 윤기를 냈다. 풀뿌리처럼 엉키기 시작한 가닥도 눈에 띄었다. 없애려 하면 할수록 굵고 뻣뻣하게 번져나가는 수염은, 마치 불리기 싫은 끔찍한 별명 같았다. 무덤에서도 잔디인 자라날 것 같았다.


시험지에 빗발치는 빨간 금처럼 내게로 쏟아지는 편견의 잣대들. 답이 없어, 제멋대로 근엄한 시선들. 칼날 같은 그것들에 찔리면 찔리는 대로, 베이면 베이는 대로 덤덤히 걸어온 나였다. 그러나 가도 가도 빗발은 그치지 않으니 어쩌란 말인가. 작정하고 퍼붓는 집중 호우를 무슨 수로 감당하란 말인가. 털이라니. 수염이라니. 물샐틈없이 마스크를 여미며 나는 또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산부인과를 향해.



*



갑자기 턱이 거뭇거뭇해진 게 단순 피부 질환이 아닌 털 관련 문제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의심했던 건 한 달 전이었다. 고민 끝에 휴대전화 검색창을 열었는데, 막상 '수염'이라고 치려니 헛웃음이 났다. 뼛속까지 여자인 내게 수염?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바로 연예 카테고리로 넘어갔다. 내 최애 아이돌이 열애 중이라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물론 다음날 아침 거울 속 내 모습이 전해온 비보에 비하면 그건 새 발의 피였지만.


하룻밤 새 턱은 몰라보게 새카매져 있었고, 그곳엔 뾰족한 것들이 다양한 높낮이로 고르게 돋아나 있었다. 새카만 그것의 본질이 무엇이든 털 종류인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연예인 가십이나 뒤적였다니, 코가 매웠다. 간절할 때면 으레 떠오르는 사라 수녀님의 미소가 허공 너머로 너울져갔다. 무엇이든 붙잡고 싶었으니까.


"예수님이든 부처님이든 이 검은 것을 도로 거둬가 주신다면, 본래의 저를 되돌려만 주신다면 평생 저와 같은 불우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겠습니다."


시키지도 않은 기도가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지옥 불에 떨어진 영혼들이 뒤늦게 회개하며 절규하는 영화를 볼 때도 오징어만 씹던 게 바로 내 입이었다. 입만 나불나불하는 이런 기도가 먹힐까. 이런 게 지옥의 맛일까. 일이 터진 뒤의 기도는 어떤 기도 못지않게 간절했지만 이보다 비현실적일 순 없었다. 평생 저와 같은 사람들을 도우며 살겠다니. 열여덟 청춘에 수염까지 기르게 된 불우한 소녀가 세계에 또 있을까. 있대도, 몇이나 될까.


표준 이상인 머리 크기, 표준 이하인 목 길이, 간당간당하게 표준인 사각턱, 웬만한 남친을 쏙 집어넣고도 남을 만큼 너른 품과 가을철 암게처럼 알이 꽉 찬 종아리까지. 여자라면 하나만 가져도 죽고 싶어 진다는 신체 조건을 쏙쏙 골라 갖춘 나는 이깟 털이 아니라도 이미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남자야? 여자야?"


특히 초면의 그들은 물어왔다. 앞에서 직접 묻는 이는 없었고, 하나 같이 나를 지나친 뒤 뒤통수 쪽에서 얼버무렸다. 상처받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 나는 그 어떤 여성과 대적해도 밀리지 않을, 내면 깊이에서 끓어오르는 이 여성성을 까보일 수 없다는 게 북받쳤다. 여자답게 보이기 위해 오랜 세월 고수해온 쇼트커트 대신 긴 머리칼을 붙여볼까, 교복 치마는 깨끗하게 찢어버리고 바지만 입어 남자인 양 위장해 볼까, 숱한 날을 고뇌해 왔다. 하지만 눈물 젖은  밤들은 결국 송두리째 전면 백지화되고 말았다. 나는 쇼트커트도 치마도 포기할 수 없었다. 아마 숨이 붙어 있는 날까진 끈덕지게 이대로 살아야 할 터였다. 내 몸은, 그런 몸이었다.


인간의 생리현상 중엔 땀이 있다. 나는 땀이 참 많이 있다. 천만다행으로 냄새는 안 나지만 '많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알 수 없는 양이다. 여자에 얼마, 남자에 손모가지. 날이면 날마다 가당찮은 내기의 희생양이 되는 게 억울해서 언젠가 목덜미까지 머리칼을 길렀었는데 땀띠로 생고생을 했었다. 길러온 시간이 아까워 묶기 시작했더니 그놈의 땀에 못 이겨 두피에 뾰루지가 '많이'도 돋았다. 잘라버리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었다. 머리칼 사이로 숭덩숭덩 바람이 드나드니, 그제야 도로 사람 사는 것 같았다. 목덜미를 벌겋게 뒤덮은 게 전염병 수포라도 되는 양 혐오하는 시선은 새 출발의 덤이었다.


남자로 위장해 바지를 입고 등교할 때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하체에 통풍이 원활하지 않아 평소보다 땀이 몇 배는 더 났다. 엉덩이는 어디에 붙이기만 하면 축축해져 왔고, 그 엉덩이로 장시간 의자에 앉아 수업을 듣는다는 건 그 자체가 시험이었다. 이미 과부하에 걸려 등하교도 간당간당하게 처리해 내는 머릿속에까지 땀이 차오르는 듯했다. 따라서 그날도 수업에는 전혀 집중할 수 없었고, 안 그래도 답답한 석차는 끝을 모르고 답답해졌다. 그러나 내가 치마를 포기할 수 없는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자유.


타인의 이목이 쏠리는 그 순간 치마를 입고 있어야 그들의 시선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다. "변태야? 남자가 치마를 입었어!"라고 육성으로 징그러워하는 극소수를 빼면, 대부분은 빠르게 고개를 주억이며 나를 지나쳤다. 나를 위아래로 훑는 그들의 눈빛은 인파 속 나를 발견한 그 순간부터 내 곁을 지나치는 순간까지 온통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그 눈빛들에 답했다. 낮고 깊고 굵고 무거운 목소리까지 노출되면 대충 지나치는 그들까지도 나를 진짜 남자로 확신하겠다 싶어, 입을 꾹 다물고 속으로만. 가슴속에서 실시간으로 재생되는 걸걸함으로.


'저기요, 자세히 좀 봐요. 나 여자거든요. 마음만은 여리여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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