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주 Oct 05. 2024

중년 리더의 점심시간

중년의 리더를 관찰해 보면 점심시간을 보내는 유형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 주로 조직 구성원들과 식사를 하는 유형

둘, 자기 계발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유형

셋, 사내외를 막론하고 계속 약속을 잡는 유형


직무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중년의 리더는 점심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고 여유롭게 보낼 수 있다. 그들은 예전보다 실무의 압박에서 자유롭고 유용할 수 있는 자원의 여유도 확보하고 있다. 상사와 선배들의 눈치를 보느라, 몰아치는 업무를 쳐내느라, 출장이나 외근을 다녀오느라 점심시간조차 편히 보내기 힘든 실무진과 달리 그들은 점심시간을 원하는 방식으로 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중년의 리더들은 선물처럼 부여된 자유와 여유에도 불구하고 세 가지 유형 중 하나에 갇혀 있는 경향이 짙다. 그것은 그들이 중년의 외로움과 리더의 무게를 동시에 지고 있는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점심 메뉴에 유독 집착하는 부장님이나 점심 약속을 잡는데 업무의 상당 시간을 소모하는 상무님이 이해되지 않았다. 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왜 저렇게 점심 메뉴에 몰두하는지, 일정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저 많은 점심 약속들은 정말로 업무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리더가 된다면 점심시간보다는 업무나 조직에 관심을 가지는, 점심 메뉴나 약속에 연연하지 않는 리더가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세월은 날아가는 화살과 같아서 나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중년의 리더가 되었다. 그때의 다짐 때문인지, 아니면 타고난 기질 때문인지 나는 점심 메뉴나 약속에 연연하지 않는 리더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옛날 부장님이나 상무님이 더 이상 한심하지 않다. 오히려 어떤 부분에서는 그들의 마음과 처지에 연민과 공감이 간다.



실무진은 고달프다.

층층시하의 눈치를 봐야 하고 끊임없이 생성되는 업무도 부러뜨려야 한다. 무능력하고 성정까지 못된 상사가 부임하면 직장 생활은 바로 지옥이 된다. 월급은 생계를 겨우 꾸려 나갈 정도이고 리더가 되는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같은 처지의 동료들이 있고 이직을 하거나 다른 길을 찾을 기회가 있다.


중년의 리더는 외롭다.

그들의 월급은 실무진보다 훨씬 높고 사회적인 영향력도 적지 않다. 눈치를 봐야 할 사람이 많지 않고 쳐내야 할 실무 업무도 한결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중년이라는 생애 주기적 특성과 리더라는 지위적 특성이 가져오는 외로움과 한계에 점점 작아진다.



제 아무리 업무적인 역량으로 신뢰를 받고, 인간적인 매력으로 인기를 구가하는 중년의 리더라 하더라도 마음 한 구석에는 외로움이 도사리고 있다.


중년에 해당하는 40, 50대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책임은 급격히 늘어난다. 젊은 시절 쉬이 했던 밤샘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고, 술자리를 시작했다가도 자정이 되면 거짓말처럼 산산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간다.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아 헬스부터 골프까지 갖가지 회원권을 섭렵해 보지만 꾸준히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연로해진 부모님은 아픈 곳이 늘어나고 자식들의 교육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한다.  


40, 50대 리더들은 소리 없는 압박감에 시달려야 한다. 실무는 줄었지만 조직부터 실적까지 새로 관리해야 할 일들이 늘어난다. 적성에 맞지 않아도 사내 정치에 어느 정도는 뛰어들어야 하고 이를 외면했을 때는 모함과 견제를 각오해야 한다. 속 얘기를 터놓을 수 있는 동료는 줄어들고 뒤통수를 칠 생각만 하는 무리들은 늘어난다. 급여는 늘었지만 언제까지 이를 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점심시간은 그들이 욕구를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실무진과 담소를 나누며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시간, 인생 이모작을 위해 자기 계발을 하거나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쉬게 하는 시간, 나의 고민을 토로하거나 또 다른 기회를 알아볼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중년의 리더 입장에서 이 세 가지 방향성은 모두 필요하고 유용하다. 그러나 직장은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리더는 조직의 구성원들을 살피고 관리해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중년이라는 연령이 형성하는 상하관계와 리더라는 지위가 만드는 상하관계를 이용해 점심시간마저 실무진을 힘들게 하는 일은 피하기를 바란다.


함께 밥을 먹는 사이는 돈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밥을 어떤 형태로 먹을 지에 대해서는 리더의 욕구뿐만 아니라 실무진의 욕구도 반영되어야 한다.


미래를 위해 자기 계발을 하거나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그러나 가끔씩은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조직 구성원들과 친밀감을 쌓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줄 필요가 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사내외 네트워크를 조성하고 유지하는 일은 상당히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담당하고 있는 조직이나 업무가 뒷전이 된다면 이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중년 리더에게 점심시간은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이다. 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나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충분한 고민에 세심한 배려를 덧붙여, 함께 점심식사를 나누고 싶은 중년 리더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이전 24화 고통이 주는 성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