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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2

by 기면민

풍족하진 않지만 모자라진 않은 점심을 차려 먹은 후, 산책을 나서 발에 혈액이 몰린듯한 느낌을 받을 때쯤 겨울이라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가로수가 눈에 들어왔다. 봄에는 벚꽃으로 아름답게 거리를 수놓고 여름에는 풍성한 잎으로 그늘이 되어주었던 그 가로수일 터이다. 최근 폭설로 인해 부러진 나무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고목도 있었다.


나무와 인간의 삶은 참 비슷하다. 삶이 풍족해지면 사람들은 치장한다. 어떤 이는 시계, 외제 차. 어떤 이는 장식품, 가방. 삶이 여유로워지면 풍족한 식사가 잦아 체중이 증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워져 삶이 팍팍해지면 사람들은 당장 가지고 있던 사치품부터 처분한다. 더욱이 어려워지면 당연시 여겼던 것들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재난, 경제위기가 닥치면 가계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다. 하지만 자산가들은 소비를 줄일지언정 언제나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찰나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도, 어떤 상황에도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굳건함을 추구하는 것도 다양한 삶의 모습일 뿐 무엇이 옳고 그르다 할 순 없다. 더군다나 대다수의 삶은 계절에 순응하는 나무처럼 시간에 따라 흘러갈 뿐 어떤 누구라도 자연과도 같은 운명을 거스르기란 쉽지 않다. 나는 단지, 거리에 부러진 나무보다 고목이 많길 소망할 뿐이다. 살아남아야 다음 해에 피는 꽃을 볼 수 있는 건 변함없는 진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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