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오리온
- 어서 오세요. 예약하셨나요?
- 네 1시에 예약했어요. 신연재요.
- 네, 잠시만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대기 공간에 늘어서 있는 벤치에 한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오후 상담까지 모두 취소하고 평일 오후 내가 방문한 곳은
주식회사, 오리온 이다.
지난번의 휴가는 완벽 이상이었다.
단돈 15만원에 그렇게 환상적인 2박 3일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오케스트라 공연과 마사지는 별도 청구였지만,
그 어떤 경험도 추가 청구된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는 현의 울림이 피부에 느껴질 만큼 강렬했고, 감동적이었다.
발리 마사지사의 손길은 부드럽고 부분 부분은 묵직하게 눌러주었으며
아로마 오일의 향도 고급 브랜드에서나 맡아볼수 있는 향을 닮아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이 모든 경험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이질감이 있거나 혹은 어색한 느낌이 났다면
순식간에 몰입감에서 깨어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레이나 호텔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나를 감싸던 쾌적하고 달콤한 향기와 청량감부터가
현실의 그것이었다.
그곳에 머무는 2박 3일 동안
이 모든게 잘 짜여진 상상일 뿐이라고,
한 번 깨어나면 한순간에 사라지는 꿈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체크 아웃을 하며 동생 희재가 말했다.
- 언니, 오리온은 언니가 지금 경험한 것보다 더 많은 걸 줄 수 있는 곳이야.
그리고 그런 풍요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데 그게 현실이 아니라고 해서 누리지 않는건
언니 손해라고 생각해, 난.
오리온 접속자 1일 10억의 시대였다.
현실은 팍팍하고 암담했지만
딱 암담한 그만큼, 오리온은 날로 발전하고 있었다.
현실이 비참했기에 더더욱 많은 관심과 자본이 오리온으로 몰리는지도 몰랐다.
지구는, 현실은,
더이상 어찌해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기 때문이다.
한 때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개탄하며
시위나 캠페인을 벌이고 기부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의 속도는
바다와 공기와 숲이 더렵혀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제 사람들은 도피하기 시작했다.
노력해도 불가능한,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하고
그들의 유토피아를 찾아 떠났다.
그것이 오리온 이었다.
오리온에 가면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가 있을 줄 알았다.
사람들은 날아다니고, 온갖 휘황찬란한 구경거리가 가득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오리온은
그냥 또 하나의 현실 같았다.
어쩌면 그렇게 모든 것이 자연스러울까.
어디 한번 체험해보자, 라고 테스트 하는 느낌이 아니라
애초부터 현실과의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 순간에 몰입해서 깨닫지 못했는데
2박 3일 후 좁고 어두운 내 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리고 부드럽게 온몸을 덮고 있던 수트를 벗고 나서야
그 경험이 얼마나 놀랍도록 최적화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 이렇게까지 발전했구나 오리온.
희재의 마지막 말의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 이렇게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시대에 누리지 않는 건 언니 손해야.
그래, 맞는 말이다.
내 인생도 조금은 내 마음대로 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곳, 주식회사 오리온에 왔다.
나의 오랜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 오래 기다리셨어요, 이 쪽으로 모실 게요.
단정하게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이 나를 상담실로 데려갔다.
그 곳에서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커피향이 났다.
이건, 진짜 커피일까?
궁금해졌다.
- 고객님, 얼마전에 오리온 첫 접속하셨다고 저희 데이터에 나오는데
맞으세요?
- 네...맞아요. 휴가로요.
- 어떠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 아....너무 좋았고 정말 잘 쉬었구요, 근데 아직 먹는 건 안되서 아쉬웠어요.
- 그렇죠~ 맞아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먹는 경험이 부족한게 저희로서도 노력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자, 커피 한잔 드세요.
문이 열리며 남직원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을 가져다 테이블 위에 놓아주었다.
그 커피는 크레마가 뽀얗게 서린, 금방 에스프레소 기계에서 내린게 틀림없는
진짜 커피였다.
레이나 호텔에서 마시지 못하고 향만 맡은 그 커피는 어떤 색이었을까.
드립커피였을까, 아니면 캡슐커피였을까. 아니면 그냥 원두향 파우더였을뿐일까.
엉뚱한 생각에 잠겨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있으려니
상담직원이 브로셔를 꺼냈다.
- 상담신청 카드를 보니까,
일단 전반적인 오리온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를 듣고 싶으시다구요?
- 네, 제가 아는게 별로 없어서 설명을 먼저 해주시면 좋을거 같아요.
아, 휴가 경험이 너무 좋았어서 조금 더 장기 프로그램을 시도해보고 싶어졌거든요.
- 장기 프로그램이라면...예를 들면 어떤 걸 말씀하세요?
- 음...인터넷 찾아보니까, 뭐, 여행을 떠난다든지, 유학을 간다든지 그런거요.
-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어요. 그러면,
직원이 브로셔를 3장 정도 넘겼다.
- 이 페이지 보시면 될 것 같네요.
이것이 저희 오리온의 프로그램입니다.
상담 업무를 하며 환자들로부터 수없이 들어온 오리온 이야기를 듣고
나는 정말 엄청난 프로그램을 상상했었다.
얼마나 구미가 당기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놓았길래
이 많은 사람들이 그 세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현실보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돈을 오리온에서 소비하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직원이 펴보인 브로셔 슬라이드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심플했다.
제일 위 가운데에 '두번째 삶- 오리온에서 다시 태어나세요' 라고 써있는 금색 글씨가 보였다.
- 장기 프로그램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어져있습니다.
말씀하신 유학이나 여행은 인생에서 한 구간에 해당하는 경험이니까,
최소 3개월부터 1년까지의 기간동안 사실 수 있습니다.
ㅁ 유학, 여행, 연애
라고 씌어있었다.
- 이 세가지 인가요?
- 네, 큰 카테고리 선택하시면 상세 내용 확인할 수 있으세요.
만약 여행을 선택하시면, 이렇게 지구여행, 우주여행, 영화속 여행으로 나뉘어지지요.
직원의 터치에 '여행' 이라는 글자 옆에 빼곡하게 메뉴가 나타났다.
단순히 유럽여행, 미국여행만 생각했는데, 우주, 영화라니...
순식간에 흥미가 생겼다.
- 그럼, 이 연애는 뭐에요? 한번 볼 수 있어요?
- 하하. 네, 저희 고객님들 제일 많이들 궁금해하세요.
연애 메뉴같은 경우는 이렇게~
연애 메뉴를 터치하자,
직접 입력/ 추천 의 두가지 메뉴만 나타났다.
- 고객님 선호하시는 연예인이나 배우를 입력하시거나, 아니면 연애하고 싶은 타입을 알려주시면
저희가 추천해드리고 있어요.
- 그럼 오리온에서 해주시는 소개팅 같은 건가요?
- 하하. 그렇게 보실 수도 있지만, 소개팅과 다른 점은 이미 상대는 고객님께 호감을 가진 상태라는 거죠.
그래야 연애가 시작되지 않겠어요?
- 그럼 제가 좋아하는 배우를 입력하면 그 배우와 연애를 한다는 말씀인가요?
- 네, 맞습니다.
세상에.
나는 내가 여기 들어온 목적도 잊은채
일단 연애를 먼저 해봐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연애 메뉴에서만 30분을 소비한 뒤,
- 고객님, 그러면 연애 메뉴로 등록 도와드릴까요?
- 아, 아니에요. 사실 제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구요...
- 편하게 말씀하세요.
- 저, 그런데 먼저 여쭤보고 싶은게 있는데요.
이 프로그램을 등록하면 오리온에 deposite 해놓은 시간을 살게 되는 건데,
제가 미리 앞으로 어떻게 될지 대략적으로 정해놓고 사는 건가요?
그러니까, 모든 선택이 다 잘 풀리도록 해 놓는다던가, 모든 시도가 다 성공한다든지
그런 가이드라인을 잡아놓고 시작하는 거에요?
- 저희 프로그램들의 초기 버전은 그렇게 셋팅 되어있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고객님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셋팅해드렸는데 만족도가 낮으시더라구요.
재등록율도 낮구요. 그래서 현재는 추천 드리지 않습니다.
- 아... 그러면 예를 들어 연애를 하게 되면요, 음, 어떤 배우랑요.
금방 헤어지게 될 수도 있는거네요?
- 네, 물론이죠. 처음에 기본적인 호감만 가지도록 설정한 후에는
최대한 실제 연애와 동일한 패턴으로 흘러가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습니다.
저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최대한 현실과 동일한 경험을 제공했을 때
고객님들이 더 몰입하시고, 만족하시고, 다시 찾아주시더라구요.
그렇구나.
가짜라는 느낌이 나면, 그리고 결말이 정해져있는 답정너 인생이라면
아무리 해피엔딩이라도 몰입할 수 없고, 의미를 찾을 수 없겠지.
- 고객님, 어떤 프로그램을 원하시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그래.
정말 현실과 그렇게 똑같다면
한 번 해볼만한 가치는 있을 것 같다.
한 번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허리를 쭉 폈다.
- 저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