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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daal Mar 03. 2022

냉장고 도둑

 narrative_recipe : 쑥갓 파스타



한 식당의 휴무일인 일요일과 월요일에 해달 식당이라는 마음속 간판을 달고 팝업 식당을 열었어. 먼 얘기 같지만 이제 폐업한 지 일주일이 지났더라. 이렇게 팔아서 남는 게 있냐는 친구들의 말에 '응. 재료가 남아'라고 농담을 했어. 매일 메뉴가 바뀌는 식당이었기 때문에 식당 마지막 날엔 최선을 다해 냉장고 털이를 했어.


수프가 나가는 월요일에는 전날 한식 뚝배기에 쓰고 남은 채소들로 타르틴을 만들기까지 하면서 최선을 다해 냉장고를 비웠지.


지리산 출신 고사리가 매력인 채개장


[냉장고털이범의 요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섯탕이 메뉴였던 날 급하게 망원시장에서 샀던 쑥갓은 그 후 일주일 동안 먹었나 봐. 식당 첫날 채개장을 끓이고 남은 고사리, 둘째 날 뿌리탕에 넣었던 들깻가루, 그리고 어마 무시한 양의 쑥갓을 넣어 오늘은 폐업 기념 파스타를 삶았어.


면이 파스타일 뿐 이를 파스타라고 부르면 단무지를 김치라고 부르는 일과 같아질 테지. 하지만 나는 파스타 문맹이 맞긴 해. 지름 22센치 무쇠솥에 들어가기에는 면이 너무 길기 때문에 반으로 뚝 잘라. 통밀면은 적당히 삶고 그 물에 언 고사리를 넣어. 물을 따라 버릴 때부터는 '내가 지금 짜파게티를 끓이고 있는 거지?' 생각하며 이것저것 잡히는 대로 넣고 간을 해. 콩기름, 마늘가루, 진간장을 넣으며 볶다가 마지막엔 들기름을 넣었어. 딱딱한 줄기를 잘라낸 쑥갓을 넣자마자 불을 끄고 접시에 담아 들깨가루를 뿌려.


냉장고털이범이 만든 파스타


[요리사 마음의 섭씨]

한 달간 식당을 하면서 남은 건 재료요, 얻은 건 '식당은 하는 거 아니야'라는 다짐이야. '밥 먹어!'라는 엄마의 외침이 서너 번 있고 나서야 겨우 식탁에 가보면 막상 밥이 차려져있지 않아 얻어 먹는 주제에 짜증을 내던 그 딸은 지금, 찌개가 식을까 수푸가 식을까 전전긍긍하며 그릇을 뜨거운 물에 매번 데우고 리넨으로 물기를 닦아가며 손님에게 낼 음식을 담고 있었어.


우리 식당의 마지막 날에는 일어나자마자 로켓배송보다 빠른 당근 직거래로 뚝배기 몇 개를 샀고 또 몇 개는 앞 가게 전주식당에 들어가 대뜸 빌려왔어. 결론은, 식을까봐 밥과 국을 미리 담지 않고 ‘밥 먹어'를 세번 외치던 엄마의 새하얀 거짓말 온도만큼의 따뜻한 버섯탕을 내어줄 수 있었어.


맞지. 이날 요리의 재료는 온도였어. 마음의 온도. 이렇게 전전긍긍하며 요리하는 나는 식당을 했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모든버섯


[마술사의 요리]

그러한 이유로 내게 부엌에서의 참 자유는 냉장고 털이 요리야. 어떻게 더 좋은 재료를 더 좋은 곳에서 최대한 신선하고 환경친화적으로 사서 어떤 맛과 색의 조합으로 구성하고 어떤 그릇에 어떤 온도로 나가야 할지 계획을 세우고 이름을 달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음식 말고.


대신, 애씀 없이 뒤적뒤적 툭 툭 마술을 부리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될 수 있는 자유로운 한 접시는 참 다행스러워.

 

템페는 기름을 두르고 소금을 뿌려서 오븐에 말리듯 구워. 먹기 전에 훈제 파프리카 파우더를 넣어. '훈제'라고 내가 말했던가?


*rule #1: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면 바로 달려가서 네 밥을 담아라.

*rule #2: 가방 속에 화장품 대신 훈제파프리카파우더를 들고다니자. 마술사가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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