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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daal Aug 28. 2022

김치 독립 만세

narrative_recipe : 세상에서 가장 작은 김장


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겠다는 그 말은, 남자 친구의 프러포즈는 아니었어. 엄마는 여태까지 내가 설거지하는걸 못 봐. 음식을 나누면 우리 가족에게 복이 온다고 믿었던 증조할머니는 동네 거지들까지 다 먹일 정도로 음식을 퍼 주던 사람이었고 엄마는 시, 시집살이 동안 그 많은 음식에 그 많은 제사를 지내면서 살았던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 나이가 서른 정도 되었겠다 싶어. 그래서인지 엄마는 내가 요리하는걸 참 싫어해. 그녀에게 힘든 일이었기 때문일 거야. 세상이 바뀌었고 돈으로 해결되는 각종 도구와 기술이 있는데 그래도 엄마는 요리를 천한 일이라고 여기는듯해. 부엌데기, 시집살이, 허드렛일, 걸레질 같은 집안일.


집안일이 세수와 양치질만큼 자연스러운 하루의 일부인 나에게 그녀는 내 등 뒤에서 늘 이렇게 외쳐. '야, 시집가면 맨날 해야 해. 하지 마. 걍 둬!'. 그런데 웬걸, 이 딸은 시집을 가지 않았어. 그러고 보니 요즘엔 '그냥 둬.'로 짧아졌구나.


나는 요리가 숭고하고 원초적이며 예술적이라고 생각해. 한살림에 가면 제일 먼저 손이 가는 두부, 하지만 플라스틱 쓰레기가 난감해서 가장 많이 고민되는 두부. 그래서 나는 오리알태로 콩나물을 키워 두부까지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싶었어. 이미 엄마는 집에서 두부를 만들어 드셨거든. 예상대로 엄마는 '야, 그냥 사 먹어.'라는 한마디로 나의 사기를 단번에 꺾어버렸어. '엄마, 쉬운 방법은 사 먹는 것이지. 하지만 생각해봐. 모두가 콩나물과 두부를 사 먹어서 그 누구도 그걸 만드는 기술이 없어. 그때 내가 유일하게 그 기술을 갖고 있다고 상상해봐. 너무 멋지지 않아?' 물론 엄마는 그것이 멋진 일이라고 동의하지 않는 표정이었어.



과일과 채수로 만든 채식 백김치



김치는 조금 다른 이야기야. 두부야 정말 구입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식품이지만 김치는 우선 젓갈이 들어가 있는 것이 대부분인 데다가 제대로 발효가 된 상태로 유통되는 것이 아니여서인지 입에 도저히 맞지 않거든. 게다가 엄마의 삼성 물류창고를 (냉장고) 드나드는 것은 도둑질에 가까웠고, 홀로 우뚝 선 일인가구로서 김치 독립을 하고 싶었어.


사실 김치에 숨을 불어넣는 것은 소금이 다 하기 때문에 쿰쿰한 젓갈 없이도 꽤나 깔끔하고 훌륭한 김치가 되거든. 게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설탕을 피하는 이모의 레서피를 물려받고 난 후 나의 김치에 대한 자부심은 극에 달했어. 볶을수록 달큼해지는 양파. 투명해진 양파를 곱게 갈고 사과와 배도 즙을 내서 베보자기에 모두 넣고 짜면 나오는 액체가 나의 김치에 요점이야. 소금에 절여진 배추나 무에 매운 김치를 원하면 고춧가루를 넣은 양념을, 하얀 김치를 원하면 채수와 양파, 과일즙을 적당한 마늘, 생강과 섞으면 국물까지 시원하게 먹는 깍두기와 백김치가 되지.


내 또래의 사람들이 십 년 후 이십 년 후 과연 무엇을 먹고살고 있을까? 알약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고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긴 해. 그때 내가 김치를 담그는 기술을 갖고 있다면 이거 참 멋진 일이 아니겠어? 그래서 친구들에게 얘기하지. 내 옆에 꼭 붙어있으라고.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김치를 담글듯해.


젓갈과 설탕을 넣지 않은 깍두기. 실온에서 잘 발효가 되면 보글보글 끓는데 그때 냉장고에 넣는다.


[김치는 이렇게 만들었어요]


1. 계절에 맞는 채소가 말랑해질 때까지 소금에 절구어요.

2. 설탕 대신 배, 사과, 볶은 양파를 블렌더에 갈아서 면보에 걸러서 액체를 사용해요.

3. 다시마 등을 넣은 채수와 진간장으로 간을 해요. (치트키로 가끔 보다는 자주 연두도 사용합니다.)

4. 실내온도와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실온에서 4-7일 두면 표면에 보글보글 작은 기포가 올라와요. 바로 이때예요! 냉장고에 넣어주세요. 다음날부터 잘 발효된 김치를 먹을 수 있습니다.


* 백김치 두 포기를 만드는데 배 두 개가 8800원이었어요. 충격이었죠.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죠. 배즙을 넣어도 되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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