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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글 Jan 25. 2022

시작점에서의 다짐

나를 위한, 학생들을 위한

처음이라는 말은 어떤 단어 앞에 붙든지 특별함을 더해주는 효과가 있다. 그건 모두가 느껴본 처음이라는 것에 대한 설렘, 두려움, 떨림 같은 미묘한 감정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공감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처음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다.     


내 처음들도 그랬다. 첫 등교, 첫 만남 등 처음은 항상 설레고도 걱정되는 마음을 함께 가지고 왔다. 내 첫 출근도 그런 감정들을 함께 가지고 왔다. 다른 것들과 비교할 때 두려움이 더 컸다는 차이점을 가졌다. 기다리던 택배와도 비슷했다. 누군가 택배는 도착해서 까기 직전이 가장 설렌다고 했는데 내 처음 출근날도 그런 맥락이었다. 직접 현실을 마주하기 직전에 걱정이 가장 많았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전날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폭풍 같던 첫날을 보내고 퇴근하며 나는 어떤 학생이었는지 생각에 잠겼다.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고 나니, 나는 어떤 모습의 학생이었을지 궁금증이 생겼다. 내 담임 선생님은 나를 보고 힘이 나셨을까? 나는 반 친구들에게 어떤 학생이었을까? 생각은 자연스럽게 내가 만난 선생님, 학교생활로 확장되었다. 기억을 되짚어 봤지만. 초등학생 때는 역시 잘 기억나지 않았다. 굵직굵직한 일들은 생각이 낫지만 대부분 흐릿했다.     


오늘 나와 만난 학생들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된다면 지나간 일이 되고,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어차피 잊힐 기억이라면 우리 반 친구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오늘이 즐거운 하루였으면 했다. 우리가 함께 보내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학생들에게 즐거운 하루를 선물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학교는 놀이공원이나 놀이터는 아니었기에 즐거움만을 주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내 나름의 약속을 정했다.      


1. 학년에서 얻어야 할 기본 교과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내게 배운 학생이 내년에 공부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와 만난 동안 손실 없이 학습 내용을 얻어 갔으면 해서 1번 규칙을 정했다.      


2. 학생의 기본 예의범절을 신경 쓴다.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교과서 속의 세상만이 아니다. 반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그래서 2번째 규칙을 정했다. 나와 만나는 동안에 교과 내용을 놓치는 것보다, 학생이 기본 인성을 갖추지 못한 모습을 내년 담임 선생님에게 보이는 것이 더 싫었다.     


복잡한 생각, 복잡한 감정을 나만의 약속으로 정리했다. 그러자 처음의 혼란은 사라지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남았다. 학생들을 즐겁게 해 줄 것, 다만 얻어가야 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도록 도울 것. 그것이 내가 첫 출근 이후로 스스로 다짐하는 나와 우리 반의 방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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