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중견 연차를 위한 작은 고백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회사에 들어와 일을 하다보면 여러가지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 몇년 전 해외 근무에 관심이 많았던 내게 싱가포르 주재원 자리는 꽤 탐나는 것이었다. 슬쩍 어필을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날 당시 원장님이 갑자기 나를 호출하신다는 연락에 부리나케 달려갔었다.
'내년에 지금 싱가포르에 있는 사람 들어오면, 대신 자네가 나가도록 해'
와. 이렇게 되는건가? 그 이후 사전 출장도 한 차례 다녀왔다. 지속적으로 연락도 주고 받았다. 싱가포르에 대해 공부와 조사도 했다. 공공연하게 다른 사람들도부터 부러움도 받았다. 그리고 연말.. 슬슬 주변 정리를 하려는데 뭔가 돌아가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다를까. 이런저런 이유로 파견은 취소되었으니 혹시라도 집이나 차를 판 건 아닌지 걱정된다는 상급자의 연락.
상심이 컸다.
그래 뭐.. 회사에서 내 뜻 대로 되는 건 아닐 수도 있으니까.
마음을 추스리던 차에 내가 하는 역할에도 변화가 생겼다. 부서장님을 보좌하는 일이었는데, 그 분과 좋았던 점도 많았지만 안좋았던 일화도 있다 (참고). 그 일을 일년 간 마친 후 원래 있던 포지션으로 가서 어떻게 일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더니, 부서장님이 나에게 다른 일을 맡겼다. 그것도 TF(Task force)라는 임시조직이었다. 어차피 임시조직은 곧 팀이 될 조직이니까 너가 잘 맡아서 해보라는 당부와 격려도 곁들여서 말이다.
그 말만 믿고 일년 열심히 과제도 하고 평가도 좋았다. 그랬는데 팀이 되기는 커녕 TF가 아예 다른 부서 밑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동의 이유는 연구와 개발의 시너지를 위해서! 그래.. 그래도 여기서는 또 다른 기회가 있겠지하는 마음으로 또 일년을 보냈다. 일년 후에도 팀으로 승격(?)은 실패. 음.. 이쯤되면 내 운영 능력의 부족이 아닐까? 하는 자괴감과 함께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이 올라왔다. 팀이 될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셈이고, 증명을 못한 이유가 리더였던 나의 부족함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참고 또 일년. 연말이 되어가는데 여전히 팀으로 안될 분위기라 부서장님을 찾아가 이제 해체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참고 기다려 달란다. 부아가 치밀었다. 대체 우리를 신경 써주기는 하는거야?라는 반발심과 실망감이 밀려왔다.
그러던 와중에 또 다시 조직 이동. 이번엔 통폐합을 통해서 꽤나 거창한 변경이 일어났다. 이번엔 바라던 바와 같이 임시조직은 사라졌다. 팀이 되지 않은 섭섭함보다 임시조직으로 지내면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사라진게 더 기뻤다. 애매한 위치에서 의무감만 강요받던 자리에서 내려온 것도 좋았다. 이게 작년 말인데, 그 즈음 싱가포르에 파견할 사람을 뽑는다는 공고가 나왔다. 일년만 일하는 조건이었다. 지원서를 열심히 썼다. 이번이 아니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 지인을 통해 상황을 물어보니 내가 뽑힐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 싱가포르에서 일을 하고 있다.
만족하느냐고? 글쎄... 내가 기대했던 그 막연한 환상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최근 후배들과 메신저로 얘기를 하거나,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일, 회사와 관련하여) 많은 고민을 하고 사는 듯 하다.
일이 잘 풀리질 않아요.
저를 어필하고 싶은데 잘 안되네요.
윗사람이 날 몰라줘요.
어떻게 사는게 좋은건지 모르겠네요.
나도 잘 모르겠다. 욕심을 부린다고 손에 쥐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마음을 내려놓는다고 갑자기 술술 풀리는 것도 아니었다. 대신 다른 것들을 좀 얻고 배웠다. 예를 들면 연구와 개발의 시너지라는 것이 책에 있는 것처럼 쉽지 않다는 것. 이질적인 문화가 섞인 곳에서 혁신이 일어난다는 기대감은 어떤 다른 문화와 노력이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얻게 되었다. 조직에서 약속이란 공수표와 같았다. HR을 통해 전사 게시판에 내 이름 세글자가 나오기 전에는 발령에 대한 모든 것은 루머고 허구였다. 나는 내가 속한 작은 조직만이 중요하지만, 윗사람은 더 큰 조직과 명분을 걱정하는 것도 알았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할 때 나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방법도 배웠다.
이승환의 애원이라는 노래가 있다.
헤어진 연인에게 보내는 걱정을 담은 내용 중에 아래 구절이 있다.
'많은 바람, 많은 욕심, 그것 때문에 세상에 지치지 않게'.
결론은 식상하다.
그냥 지금 이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자.
맘 먹은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도 조직(상사, 부하, 조직 그 자체)을 이해하는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