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인 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드레아 Mar 27. 2017

그때, 진해 아가씨 이야기 4편

떠남과 만남이 교차하다


 [1971년 5월 오후 6시, 진해 여좌동]


 아까 5시쯤에 회사에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고 언니에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챘다. 언니에게 연락을 취하고 싶었지만 회사에도 없는 언니에게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다. 언니 회사의 상사인 경리 과장에게는 언니와 연락이 닿으면 바로 알려 주겠다고 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경리 과장은 조금만 더 기다려 보고 소식이 없으면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때였다.


 때르릉 때르릉 때르르르릉~~~


 " 여보세요? " 총알같이 수화기를 낚아채며 내가 말했다. 


 " 애려이가? 내다. 옆에 어무이 아부지 계시나? "


 " 언니야!!  니 지금 어데고? 무슨 일이 생깄나? 회사에서 전화 오고 난리 났다 아이가? "


 " 어무이, 아부지 옆에 계시냐고? "


 " 옆에 엄따! "


 " 그래. 알읐따. 방금 회사엔 연락했다. 괘안타. 걱정하지 마라. 내가 난중에 집에 가서 말하꾸마. 혹시 어무이 아부지 내 찾으시면 친구 만나서 저녁 묵꼬 좀 늦는다케라. "


 " 언니 니 지금 오덴데? "


 " 지금 태은 씨하고 같이 있다. 일단 끊으게. 난중에 집에서 얘기하자. 집에다 단디 얘기해라 니! 알긋째? 끊는다. "


 "언니! 언니!"


 더 다그쳐 묻고 싶었으나 신호가 이미 끊어졌다. 언니는 무사했다. 태은 씨와 함께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목소리를 들어 보니 위험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언니가 집에 들어온 시각은 저녁 아홉 시 반이 막 지날 무렵이었다. 그대로 나와 이야기 없이 귀가했더라면

아버지한테 한 소리 들었을 게 틀림없지만 언니와 통화 후에 내가 약을 쳐 놓았기 때문에 언니는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 다 큰 처녀가 너무 늦게 다니지 말고. " 아버지는 이 말 딱 한 마디 하시고 방으로 들어가셨으니까 말이다.


 방에 둘만 같이 있게 된 우리는 폭풍같은 수다로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는 이러했다.


[3시간 전]


" 태은씨, 이래 하시면 안 되는 거 아임니꺼? 태은씨 오늘 진짜 왜 이러세요?

저 빨리 회사로 복귀해야 합니더. " 언니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방법으로 나오는 남자에게 너무 강하게 말하는 것도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감정을 자제하며 설득해 보려고 노력했다.


" 수련씨, 오늘 제가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수련씨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제가 오늘 그 답을 듣지 못하면 절대로 수련씨를 보내 드릴 수 없습니다. 일단 도착한 후에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차타면서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 대위는 작심을 한 모습이었고, 모종의 결과를 얻기 전에는 이 사달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차는 약 반 시간을 달려 진해에서 마산으로 이어지는 꼬불꼬불 휘어지는 산길 도로에 진입했다. 수련 언니에게 일어난 사건은 매우 놀랍고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으나 운전을 하는 이 남자는 상당히 침착한 모습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언니와 이 대위는 산중턱의 한 찻집으로 들어갔다. 평일 오후였기 때문인지 가게는 한산했다. 홀에는 그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손님이 없었다.


 " 수련씨, 오늘 이렇게 무례하게 수련씨를 모신 것을 사죄합니다.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이런 결례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 이태은 대위는 테이블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이내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 이왕 이렇게 된 거 태은씨 말이나 좀 들어 보께예. " 수련 언니가 이미 엎지러진 물이라는 심정으로 앞에 앉은 이 도발적이고 사내 냄새 물씬 나는 남자에게 말했다.


 남자는 차에서 내릴 때 공공칠 가방 같은 걸 하나 들고 내렸는데 지금 그걸 열고 있었다. 그 속에서 보랏빛 나는 벨벳 재질의 작은 꾸러미를 꺼내는 것이 보였다. 수련 언니는 그것이 대체 무슨 물건일까 호기심이 일었다. 이태은 대위가 그 물건을 테이블 위로 올려 언니와 그 사이에 사뿐히 내려 놓았다.


 사실 그가 은행 앞에 갑자기 나타나 반강제로 언니를 붙들어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끌고 가려고 했을 때만 해도 언니는 혼비백산하여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니가 완강하게 거부했더라면 이 대위가 가지고 온 차에 타지 않고 그 찻집까지 끌려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비록 시작은 거칠었지만 언니도 그 남자가 싫지 않았고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 이건 제가 월남에 갔을 때 준비한 것입니다. 그때만 해도 이걸 선물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만 미래에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주어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월남 파병에서 받은 수당과 봉급을 모아서 사두었습니다. "  그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5편에서 계속)



https://brunch.co.kr/magazine/karma

https://brunch.co.kr/@ndrew/223#comments

https://brunch.co.kr/@ndrew/225

https://brunch.co.kr/@ndrew/227

https://brunch.co.kr/@ndrew/370


매거진의 이전글 인연에 관한 '정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