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제가 월남에 갔을 때 준비한 것입니다. 그때만 해도 이걸 선물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만 미래에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주어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월남 파병에서 받은 수당과 봉급을 모아서 사두었습니다. " 그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수련 언니는 이 놀랍고 갑작스러운 이야기 전개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 도대체 이태은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 말이고. 내를 을마나 봤다고, 내를 을마나 안다고 이래 앞뒤 몬가리고 나오는기고? ' 언니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머릿속에서 실타래가 서로 마구 엉켜버린 느낌이었다. '만일 내가 오늘 이 남자를 거절한다면 이 남자는 우찌 나올끈가? 이 사람 쉽게 포기할 거 같지가 않네. 살다 살다 이래 막무가내로 나오는 남자는 진짜 처음이다. '
" 태은 씨, 근데 그거 알아요? 내 만나는 사람 있어요. 같은 회사에 다녀요. " 언니는 종잡을 수 없는 야생마 같은 태은의 고백을 듣고 대뜸 이렇게 물었다. 이미 내가 그에게 언니가 만나는 남자에 대해 귀띔해 주었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었다.
" 네! 알고 있습니다. 처음엔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두 분이 아직 결혼한 사이도 아니고 애련 씨 말로는 그렇게 오래 만난 것도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수련 씨를 만난 이상 저도 물러설 생각은 없습니다. 저한테 기회를 주십시오. 제가 수련 씨를 더 행복하게 해 드릴 자신 있습니다! " 이 말을 하는 태은의 어깨 주위로 은은한 빛과 같은 기운이 감싸고 있었다. 수련 언니는 이 상황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틀림없이 '납치'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사고를 친 남자였다. 자신은 회사 직원들의 월급을 통째로 들고 가는 중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이 '범죄자'와 같은 남자를 경찰에 넘기고 한시라도 빨리 이 남자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하는 게 맞았다.
수련 언니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사건이 절반은 본인 자신의 의지였다는 것을 말이다.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지만, 실은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회사에서 동료로 만났고, 그 사람이 수련 언니에게 호감이 있어 몇 번 데이트를 했을 뿐이다. 언니를 좋아해서 언니에게 잘 해 주었고, 회사에서 같은 부서는 아니지만 직급이 높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매몰차게 굴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인물도 그만하면 준수한 편이었고 소문을 듣자 하니 능력도 있는 남자였다. 거기까지였다. 그냥 그렇다는 거고 수련 언니가 감정적으로 그 남자에게 빠진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 월남에서 온 새카만 이대위는 좀 달랐다. 지난달 서울 가는 기차에서 만났을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비록 언니는 일체 아무 관심도 없다는 식으로 행동했지만, 내가 누군가. 수련 언니와 평생을 같이 산 피붙이 동생 아닌가. 그 새침데기는 아마 처음 이 군인 아저씨와 조우했던 그날부터 관심을 가졌음에 틀림없었다. 진해에서 해군사관학교를 나온 새하얀 제복의 장교가 기차에서 처음 본 여인에게 그토록 당당하고 로맨틱하게 다가오는데 어떤 여자인들 무관심할 수 있을까. 흐흐흐 난 다 알아봤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