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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네 Nov 01. 2024

세 번째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130km를 끝내며

[올레 22] 9코스 대평-화순 12km

이번 올레 걷기 여행의 마지막 주인공은 올레 9코스였다. 기가 막힌 날씨 덕분에 박수기정 앞으로 펼쳐진 바다는 지난 일주일 본 제주도 바다 중 가장 아름다웠다.

그리고 가장 힘든 길이 펼쳐졌다.

‘몰질‘이라는 돌길이었는데 고려시대 대평포구에서 원나라로 말들이 짐을 싣고 이동하던 길이었다고 한다. 사람인 나도 힘든데, 말들이 이 좁은 길을 다녔다니, 그것도 무거운 짐을 싣고. 7kg의 백팩을 집어던지고 싶었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 말이다. 메에에~‘라고 혼자 울부짖으며 뚜벅뚜벅 몰길을 올라갔다.

어느새 백팩 없는 올레꾼들이 모두 나를 제쳤다. 아직 1km도 걷지 않았는데 땀범벅이 된 나는 가방을 펼쳤다. 한 번도 입지 않은 두 벌의 티셔츠, 3+1으로 사놓고 3캔이나 못 먹은 논알코올 캔. ‘언젠가’ 필요할 줄 알았던 물건들이 내 욕심의 짐이 되어버렸었다. 인생 여행에서도 혹시 몰라 가지고 있는 것들은 버리는 게 낫다는 판단이 섰다. (서울로 돌아와 당근을 하며 백만 원 가까이 벌었다!)


한밭마을로 들어오니 평지가 보였다. 그리고 다시 오르막길, 평지, 오르막길. 군산 정상에 도달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중간에 평지가 없었다면 나는 탈진했을지도 모른다. 평지 덕분에 쉴 수 있었고 좀 더 즐겁게 산행을 할 수 있었다.


평지의 중요성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지금껏 나는 평지에 있으면 불안해했다. 나를 제치고 가는 사람들을 보며 조바심이 났고, 쉬지 않고 뛰다가 결국 혼자 지쳐 정상을 포기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평지는 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평지의 시간은 꼭 필요하다. 오르고 있지 않다고 해서 멈춰 있는 게 아니다. 오르막을 위해 재정비를 하는 아주 중요한 시간인 것이다. “그래 나 지금 인생의 평지일 수 있어! 하지만 이 순간도 소중해! 재정비!”


곧이어 정상으로 가는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엄청 가팔라 보이지만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길과 만만하지만 시간이 걸릴 것 같은 길. 마음은 전자였지만 체력상 후자를 택했다. 다시 한번 행복의 기본은 체력이다라는 것을 느꼈다. 정상 코 앞에 마지막 쉼터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간 오름 등산길에는 정상 바로 좀 직전에 쉼터가 있었던 것 같다. 원래 사람들은 늘 마지막 몇% 때 더 힘이 드나 보다.

드디어 다다른 군산 정상!

한참을 있었다. 굴매오름 전망대에서는 한라산부터 서귀포 밤섬, 중문, 가파도와 마라도까지 웬만한 제주도가 다 보였다. 그리고 모든 소리가 다 들렸다. 기계, 차, 바람, 새소리 등 모든 것이 공존했다. 고요함 속에서는 모든 소리가 다 들린다. 생각이 복잡할 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는데 말이다. 물건뿐만 아니라 머리를 비워야 비로소 이 넓은 세상의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눈을 감고 앉아있으니 이렇게 큰 세상에서 나는 아주 작은 점이라는 것을, 피해만 안 끼치고 마음 편히 살자라는 생각이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내 몸과 마음은 하나인가 보다. 머리와 백팩을 비우니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 져 금세 뛰어 내려왔다... )


안덕 계곡길로 들어오니 졸졸졸 물소리보다 새들의 노랫소리가 훨씬 컸다. 뭐라고 하는 걸까? 확실한 건 혼자서 떠드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소통하고 있는 거겠지?

‘엄마, 저기 혼자 걷는 애 누구야?’

‘딸, 얼른 와서 지렁이나 먹어 ‘

끊임없이 소통하는 새들 속에서 다시 사람이 살짝 그리워졌다. 그래서일까, 자연과 얘기하기 시작했다.


푸바오가 나올 것 같은 대나무 숲에서는 “임금님 귀 진짜 당나귀 귀였어?”

용처럼 생긴 구름을 보고는 ”나, 용이 될 상이라고? 퐈하하하하“


혼자서 떠들다 보니 어느새 목표지점 화순해수욕장에 가까워졌다. 오랜만에 보니 더더욱 반가운 바다, 지금 이 순간에는 더 바랄 게 없었다. 너무너무 행복했다. 몽글몽글한 나무들을 보며 마음도 몽글몽글해진 걸까? 왜인지 몰라. 그냥 웃고 있었다.

8일간의 130km, 세 번째 올레 걷기 여행이 끝났다!

첫 번째 여행은 행복, 두 번째 여행은 평온, 세 번째 여행은 꿈과 사람, 그리고 체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준 여행이었다.


지난 8일간 생각할 주제는 정해놓지 않았다. 마음 가는 대로, 내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 마음은 많은 것들을 말해주었다.

내가 꿈꾸는 나의 이미지는 예쁜 사람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연스럽고, 조화롭고, 행복을 주는 사람.

나를 설레게 하는 꿈을 발견했다. 나의 강점 + 좋아하는 것 + 내가 필요로 하는 것, 즉 사람의 조합이었다.

행복은 뜻밖의 조합이다. 나는 욕심쟁이기 때문에 기대치를 낮추기보다 새로움을 찾는 여유를 위해 버리자.

행복의 정의는 계속 바뀔 수 있지만 결국 행복은 사랑이다. 내가 사랑을 하든, 남이 서로 사랑을 하든, 어쨌든 직간접적으로 사랑을 느낄 때 나는 행복했다.

마지막, 행복도 체력이다. 체력을 기르자!


“바다야 고마워, 그냥 빛나줘서.
하늘아 고마워, 그냥 있어줘서.
자연아 고마워,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줘서.

나, 고마워.
이렇게 시간 내서 나에게로 여행을 떠나 줘서, 너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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