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카세를 먹다가
결혼기념일 기념으로 일식 오마카세를 간 날이다. 옆에 앉아 있던 노부부가 전국 각지의 오마카세를 다녔던 모양인데, 도도한 인상의 할머니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반백발이었는데 60대 정도 되려나. 아침 신문에서 본 시니어 모델 모습과 유사한 느낌. 단발머리에 웨이브를 살짝 넣었는데 피부도 관리를 열심히 한 듯하고. 네이비 반폴라에 밍크 같은 느낌의 북슬한 짧은 기장의 베스트를 입고 있었다. 나이대를 고려할 때 키도 크고 손가락도 길어 보였는데, 액세서리를 좋아하지 않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엄지와 검지에 낀 반지가 너무나 멋스러워 보였다. 내가 늙는다면 저런 모습이고 싶다고 생각한다. 꼿꼿한 등과 어깨, 알이 큰 진주 귀걸이가 은발과 너무나 잘 어울리던 그녀에게 자꾸 눈길이 갔는데.
그곳은 캐치테이블로 사전 예약을 해야만 하는 곳이었다. 비교적 젊은(?!) 나조차 조금 귀찮기도 하고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일이라 잘하지 않거늘, 어플을 볼 때 안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설마' 직접 하셨을까 싶었다. 70대인 우리 엄마 아빠를 위해 내가 대신 예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니, 그분도 자녀분이 해준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 보기도 하였다. 도도한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셰프와 각종 생선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며 오마카세에 대한 지식을 뽐내었다. 임연수어가 어쩌고 저쩌고, 맞는 소스가 어쩌고, 다시마의 조리법이 저쩌고. 화로구이에 담아야 하는 숯의 양이 10kg는 되어야 하는데 어디서 구해오는지부터 어떤 숯이 고급인지까지.
나의 반짝반짝한 눈빛을 일부러 피하시는 건지, 정말로 모르시는 건지, 한 번도 내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코스가 마무리되고 남은 돌솥밥을 우리에게 싸 주라고 하던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기회를 얻은 내가 슬쩍 물었다. "여기 직접 캐치테이블로 예약하신 건가요?" 도도한 자태로 끄덕, 하고 말던 그녀는 이어지는 대화를 거부하는 느낌. 나는 좀 더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는데 이유도 모르고 까였달까. 나가는 길에 큰 차를 탄 기사가 와서 그들을 픽업해 갔다. 사실 그게 가장 부러웠을지도 모른다. 눈길 한 번 받지 못한 나는 꼿꼿한 그녀의 자태를 되새김질하며 다짐했다.
'나도 열심히 운동해서 꼿꼿한 자세로 곱게 늙어야지.'
그렇게 운동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며 마무리한 오마카세 식사의 추억. 그날 나는 검지에 맞는 반지를 끝끝내 찾아내지 못하고 남편의 결혼반지를 엄지에 끼운 채, 그녀를 오마주 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나도 반할 만큼 곱고 멋있게 늙을 거야, 의지를 다지며..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눈길을 도도하게 받아낼 거야.
그렇다. 이것은 테니스 연재물이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열심히 운동을 한다. 좀 더 유연한 노후를 위하여, 조금 더 단단한 할머니가 되기 위하여. 시술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평소의 자세와 평소의 태도가 내 모습을 결정한다. 오늘도 하체 튼튼 사이드 스텝을 하며 포핸드, 백핸드, 내친김에 서브 연습까지 이어진다. 언젠가 경기를 하고 마음 수련도 하려면.. 갈 길이 멀다! (신문에 젊은 쥐의 피를 수혈한 쥐의 수명이 연장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던데, 나중에는 회춘도 살 수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어쨌든 할 수 있는 현재 최선의 노력은 운동이다!) 오늘도 열심히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