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뉴로그림 노운 May 15. 2022

내가 가는 미용실

단골이 된 이유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것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사람을 끌어야 한다.

일을 잘한다. 그것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내가 일을 잘하는 것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굉장히 기획서를 잘 쓰거나,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잘하거나, 내 능력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가는 미용실은 허름하다. 우연히 알게 되었던 곳인데, 알고 보니 단골 지인들이 많이 겹친다.

나는 나를 드러내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여기만 가면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내 머리를 내어주고, 많은 이야기를 듣고, 또 하게 된다.


나의 미용사는 애가 둘이고 나보다는 동생인 워킹맘이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이야기를 잘한다. 사람들을 잘 기억하고 머리도 마음에 들게 잘라준다.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고 그저 머리카락을 맡기면 되니 편하다. 이것저것 많이 묻지도 않고 많이 권하지도 않는다. 뭔가 해보면 어떨까 갈팡질팡하는 내게 시기적절하게 이때 이걸 하는 게 제일 좋겠다며 합리적인 조언을 주신다.


머리를 손질하는 훌륭한 기술을 가졌더라도, 그것만으로 내가 단골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술술 하게 만드는 그 기술,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부담스럽지 않게 내 이야기를 하고도 후회하지 않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그 기술이 나를 단골로 만들었다. 타고난 것인지, 만들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기술인 셈이다.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닐 수도 있는데, 애를 쓴다고 되는 것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본인은 그 타고난 재능을 인지하고 계실까? 공감 능력과 기억력이 뛰어나신 분이다. 내겐 없는 능력이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하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단골 선생님, 그 사람의 자매, 단골 변호사, 그 사람의 엄마, 단골 의사, 그 사람의 사촌언니, 그 사람의 엄마, 사립초등학교 보내는 엄마 등 직업군도 다양하고 아는 단골도 정말 많다. 헤어 커트를 하면서 해주는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세상의 모든 진리를 대화를 통해 얻어 나가는 느낌이 든다. 나 역시 굳이 몰라도 될 과거사부터, 엄마 이야기까지 왜 술술 이야기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을 정도로, 이야기하다 보면 그렇게 되고 만다. 침묵이 불편해서 하는 아무 말과는 다르다. 뭔가 대화의 기술이 있는 것 같다.


이쯤 되니 코로나로 인해 손님이 줄어들고 예약이 쉬이 잡히면 오히려 걱정이 된다. 부부가 같이 미용실을 운영하는데 망하기라도 하는 거 아닌가, 애가 둘이라는데 요즘 어렵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어느 날은 인근에 유행하는 소금 커피 두 잔을 사들고 미용실로 향했다. 커피 두 잔 값이 아깝지 않은 사람들이다.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단골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 머리를 맡기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편안하게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개인의 천부적인 스킬이 다소 부족하다면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곳에서 배워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마케팅이나 상술 등의 노하우를 빌어 보완하는 것이다. 화미주 등의 많은 분점이 있는 미용실이 그러하다. 단골이 스스로 단골을 정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득이 단골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굉장히 단점이자 장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마음에 아주 쏙 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망하지도 않는다. 한번 다회권을 끊어 놓으면 소모할 때까지 부담 없이 다니면 되지만, 그것이 끝나갈 즈음 다른 상술을 권장받는 순간이 오고 또 어느새 다른 데는 가지도 못하고 발목 잡힌다. 아무 대화를 하지 않고 그저 입 다물고 있다 와도 이상하지 않지만, 가끔 이야기하고 싶어도 말이 겉돌아 불편하기도 하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기도 하지. 상업적이지 않아서 편하고 좋고 단골로 만들었는데, 한편으로는 상업적으로도 잘되길 바라는 이 마음이란. 그러면서도 내가 예약을 잡는 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만 잘됐으면 싶고. 이기적이기까지. 어린 시절의 나는 대형 브랜드에 다녔지만 지금은 단골 허름한 미용실에 다닌다. 그리고 그게 편하고 좋은 나이가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