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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Dec 05. 2018

초능력을 갖게 된 인류의 미래는?

37. 듀나,『민트의 세계』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매주 수요일 발제 / 월요일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 12월의 주제는 [혐오와 연대]입니다!


*12월 주제 [혐오와 연대] 업로드 일정표

- 12월 5일(수)    『민트의 세계』, 듀나(2018)

- 12월 12일(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장 마크 발레(2013)

- 12월 19일(수)  『말이 칼이 될 때』, 홍성수(2018)

- 12월 27일(수)   「런던 프라이드」, 매튜 워처스(2014)



INTRO : ‘공간’에서 ‘연대’까지


지난 발제까지 우리는 ‘공간’이라는 키워드로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담긴 이야기들을 살폈다. 

울 선언에서는 서울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미시사의 자취를 보며 우리 각자의 공간 경험을 나누었고, <초행>에서는 서울의 특정 공간에 머무르지 못하고 계속 이사하고 이동하며 고군분투하는 청춘의 맨 일상을 마주했다. 이후 대안적 상상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실패담이 되어버린 공동 주택과 육아에 대한 환상과 현실을 그린 『네 이웃의 식탁을 보았고, <고양이 케디>를 통해 인간이 아닌 길 고양이의 시선으로 타국의 생활을 엿보았다.


주된 시점은 ‘공간’에 맞추어 있었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공간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더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가 읽어간 이야기에는 공통적으로 결국 누군가 존재함으로써 공간이 정의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존재하여 살아가고 있어야만, 그 공간의 이야기도 살아 움직였다. 


그러나 그 공간에 존재하는 누군가는 단 1명일 수도 없었고, 모두가 같은 이들(혹은 같은 종)인 것도 아니었다. <고양이 케디>에서처럼 사랑스럽게 서로를 지켜주며 공존하기도 하지만, 『네 이웃의 식탁』에서처럼 균열과 파국이 일상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떨까?


아마 시간이 더 흐른 후엔, 공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이 변할 것이고 공간도 변화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꽤 극단적으로 변하게 된다면, 어떤 일들이 발생할까. 옆 사람과의 공존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까. 그게 가능은 한 것일까?


그 극단을 생동감 있게 상상하기 위해서는 SF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린 듀나의 『민트의 세계』를 읽어 가기 시작했다. 



*『민트의 세계』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배터리와 초능력을 가졌음에도 여전한 것

SF소설인 『민트의 세계』는 30년 후,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울 미래를 상상한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어김없이 사회 문제는 존재한다. 보통 SF소설을 읽을 때 독자들은 낯선 상상의 세계에서 때때로 기시감을 느끼기도 할 테다. 마치 해외여행 가서 국내의 비슷한 장소들을 떠올리듯, 소설 속 묘사에서 현실과의 닮은 점들을 본능적으로 찾게 된다. 『민트의 세계』를 읽으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빠른 전개는 다소 불친절한 듯 흘러가지만 잘 짜인 새로운 세계관을 이해한 이후엔, 결국 현실의 사회 문제들과의 공통점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2049년의 인류는 모두가 초능력을 가지게 된다. 다만 그 능력들은 ‘배터리’의 기능을 하는 인간에게 링크되어야 활용할 수 있으며 그 능력의 정도와 타입도 각자 다르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인류의 출현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유발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여전한 것들은 여전하다. 공고한 시스템이 그러하고 기득권의 결탁과 통제, 그리고 그것을 은폐하거나 밝히려는 그 모든 갈등들이 그러하다. 


거대 기업 LK와 정부는 개개인의 능력들을 시스템화하고 통제하려 한다. 심지어 더 뛰어난 능력자들을 미리 선별해서 어렸을 때부터 특수학교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감금하고, 이들의 능력을 자신들이 원하는 때에 사용하려 통제하기도 한다. 정부와 대기업은 서로를 완전히 믿지는 못하지만, 하나의 욕망을 공유하고 있다. 그건 기존의 시스템을 유지하며 자신들의 여유로운 삶을 유지하는 것이다.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자가 핍박하고 통제하는 이들 사이엔 필연적으로 그 시스템을 부수려는 욕망이 생긴다.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욕망과 부수려는 욕망, 두 욕망이 충돌하고 갈등을 유발하는 서사는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꿈을 꾸는 세력은 대체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이들이다. 가족이나 연고도 없는 민트가 LK특수학교에서 주류의 아이들과 다른 결로 존재한다는 것이나 ‘민트 갱’을 모으는 과정에서도 모이는 캐릭터들에게도 그런 설정들이 조금씩 등장한다. 이렇듯 여전히 새 시대의 서막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혹은 없을 것이라 여겨지던 새로운 세대로부터 시작된다. 



민트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서로의 능력을 착취하고 영혼을 창조해 더 많은 이들을 속이려는 인류의 미래는 디스토피아다. 곳곳에서는 봉기가 일어나고 폭력이 난무한다. 그런데 이런 세계에서 민트는 다른 무리와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움직인다. 시스템의 지배 하에 놓인 LK특수학교 아이들은 능력을 통제당하고 세상에서 격리되어 키워진다. 민트는 그 아이들에게서 이상한 기운들을 읽고, 단체 환각에 중독된 아이들을 뒤로한 채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래서 결국 민트가 찾은 대안이 무엇인지는 소설을 전체를 다 읽고 나서도 아리송한 공백으로 남는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더 이상 지구에는 희망이 없으므로, 대안을 찾는다면 새롭고 다른 존재들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편리함과 속도의 부작용. 스스로 지식을 쌓고 자기 힘으로 생각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었다. (278)


스스로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면서 번성하게 돕는 것, 그를 통해 우주를 다양한 정신들로 채우는 것은 민트와 친구들의 의무였다. (331)


민트는 지구를 탈출하며 쥐, 햄스터, 두더지, 박쥐, 얼룩 고양이를 ‘작은 친구들의 나라’ 대표로 뽑아 데려가기도 한다. 그런 작은 가능성들을 안고 민트는 새로운 행성 ‘타이탄’으로 향한다.


아마 그 종들은 어떤 것으로든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민트의 세계』에서 미래의 가능성은 ‘환각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지식을 쌓아가는 독립 존재’에 있다고 말할 뿐이다. 그 독립된 존재들이 서로를 혐오하거나 통제하려 들지 않고 각자의 역할을 하며 공존하는 새로운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작품 속에서도 이것은 끝내 등장하지 않고 끝나 버린다. 결말 이후의 세계는 우리 각자의 상상력에 달려 있다.



다시, 2018년도의 한국

책을 덮고 나면 또 다시 현실이다. 여전히 크고 작은 갈등과 사건 사고로 시끄럽고 불안한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정말 언젠가는 인류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꺼내기 조차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더 이상 인류의 미래가 인류에게 놓이지 않을 때, 그때는 정말 돼지의 두뇌나 새로운 행성인 ‘타이탄’ 밖에 희망이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듀나는『민트의 세계』라는 서늘한 농담으로 던지고 있다.  


무엇이 폭력인지 밝히고, 알아가고, 그것과 싸우는 과정은 어쩌면 참 길고 지루하기만 할 테다.『민트의 세계』와 달리 우린 초능력도 없고 배터리도 없어서 더욱 그렇겠지. 그러나 그 지루한 과정 속에서도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것만은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하찮고 가벼울 수 있지만 그래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무어라도 해야 할 것이다. 그래 봤자 우린 모두 거품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 자신을 포함해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
하지만 그래 봤자 우린 모두 우연의 파도 위에 생긴 거품일 뿐이다.
거대한 야망을 품은 가볍고 하찮은 거품들.
그래도 그 거품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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