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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운선 Jun 24. 2024

덩굴풀처럼

이사 오고 나서 여러 종류의 식물을 들였다. 집에서 자가용으로 한 시간 반 정도 가야 하는 큰 화원에 가서 화초를 사 오기도 하고, 구청에서 나누어 주는 텃밭용 화단을 받아서 이런저런 씨앗을 뿌리기도 했다. 시골의 엄마에게 받아 온 파나 고추 등을 심어 보기도 했다. 제대로 크지 못해 죽어 빈 화분이 생길 때는 당근에서 화초를 사서 심었다. 토양이 여유로우면 식물이 자라기 더 나을까 싶어 텃밭용 화단을 하나 더 구입해 화초를 옮겨심기도 했다.     


올해는 심각하게 고민이 됐다. 작은 화분의 화초들은 모두 죽었다. 텃밭용 화단 두 개에는 내가 심지 않은 게 분명한 덩굴풀이 온통 덮고 있었다. 애들은 징그럽다고 뽑아 버리라고 재촉을 했다. “쟤네도 살려고 저렇게 덩굴을 폈을 텐데 어떻게 죽여...”라고 말하면서도 텃밭용 화단을 볼 때마다 심란하고 곤란했다. 겨우내 큰 덩굴풀은 봄이 되자 더 무성해져 화단을 덮고 바닥까지 늘어졌다. 심어 놓은 화초는 모두 죽고 알 수 없는 풀들이 차지한 건 내가 원하는 그림은 아니었다.     

 

그동안 식물을 기르면서 여러 가지 수를 썼다. 원두가루를 발효시키면 토질에 좋다고 해서 만들어 흙에 섞었다. 계란껍데기나 바나나껍질을 말려 가루를 내어 영양을 줬다. 식물 키우는 유튜브를 보고 따라 하기도 했다. 흙을 바꾸어 주면 나을까 싶어서 이런저런 흙을 사서 기존 흙과 섞었다. 하지만 자꾸 죽는다. 지금은 흙만 많아졌다. 시골서 엄마가 올라오셨을 때 저 흙을 가져가시면 안 되냐고 여쭈었더니 엄마는 작은 화단은 가져갔다. 큰 화단은 너무 무거운 탓에 가져가지 못했다.      


덩굴풀을 걷어내고 흙을 봉투에 담아 아파트 화단 곳곳에 버려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게 합당한 행동인지 의문이 들었다. 흙을 조금씩 담아 새벽에 몰래 버리면? cctv는 피해야겠지? 그러다 들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올해 다시 식물 키우기를 잘해 보자고 다짐을 했다.    

 

농사를 짓는 엄마는 식물도 잘 가꾸신다. 시골집은 마당뿐만 아니라 집안에도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자란다. 고개를 돌리면 산이고 들이고 사방이 식물과 나무들인데 따로 또 키운다. 엄마에게 여쭈었다. “어떻게 하면 식물이 잘 커요? 비법 좀 알려 주세요” 나의 질문에 엄마는 “물을 제 때 주면 되지”라며 그 쉬운 걸 묻냐는 투다. 나는 “제 때”를 맞추지 못하는 걸까?     


덩굴풀에게는 미안하지만, 덩굴풀을 걷어냈다. 그 자리에 시금치 씨와 라벤더 씨를 반씩 뿌렸다. 처음에는 싹이 제대로 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점점 내가 아는 모습과는 다른 시금치와 라벤더가 풀처럼 컸다. 햇빛의 부족함이 문제인지, 토질의 문제인지, 물과 공기의 문제인지 비실비실하게 자라고 있다. 시금치라고 먹기도 곤란하고 라벤더라면서 꽃도 피지 않는다. 시금치도 라베더도 아닌 제3의 식물 같다.     

화분이 있는 창가(오일파스텔 ⓒ신운선)

그나마 성공한 건 화분 두 개다. 이사 오며 들인 이후 지금까지 자라고 있다. 여인초는 작은애가 골랐던 화초로 작은애 방에 있다가 분갈이를 하며 거실로 나왔다. 금전화도 분갈이를 하며 여인초 옆자리를 차지했다. 둘은 그림을 그릴 때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키가 훌쩍 더 컸다. 여인초의 키는 내 가슴까지 온다. 너무 크는 것 아닐까? 더럭 겁이 났다. 무리해서 크다가 고꾸라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됐다. 이렇게 잘 컸는데 잘못되면 마음이 많이 아플 것 같다.      


오며 가며 화초를 들여다본다. 위치를 바꾸어 준다. 물을 줄 때가 됐나 흙을 만져본다. 적당히 무심하라는 조언을 들었는데, 내가 과하게 들여다보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덩굴풀을 생각한다. 그 야성의 생명력을 나눠 갖고 싶다는 생각. 누가 뭐라던 내 길을 가겠다는 투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제 영토로 만들어 버리는 기개. 사방으로 뻗어가는 비전.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덩굴풀의 생명력 같았다.       


얘들아, 우리 그거 배우자. 알아서 잘 크자. 그거 어려울까? 하지만 이내 이 작은 화분에 가두어 놓고 자유로운 성장을 바라는 내 생각의 오류를 깨닫는다. 요즘처럼 햇빛이 좋고 기온이 높은 때는 얘들도 더 지칠 수 있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할 거야,라고 생각을 고친다. 그러면서 창문을 열어 준다. 영양제를 짚는다. 물도 받는다. 아프지 말고 잘 크라고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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