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영화' 동주에선 조연, '시인' 동주에겐 주연
동(冬) 섣달에도 꽃과 같은,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
청년 윤동주는 의지가 약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시에 우수한 것이겠고, 그러나 뼈가 강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일적(日賊)에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일제시대에 날뛰던 부일문사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배앝을 것뿐이나, 무명(無名)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지용의 추천사 中
동주는 별로 말주변도 사귐성도 없었건만 그의 방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가득 차 있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동주 있나”하고 찾으면 하던 일을 모두 내던지고 빙그레 웃으며 반갑게 마주앉아주는 것이었다.
“동주 좀 걸어 보자구” 이렇게 산책을 청하면 싫다는 적이 없었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밤이든 새벽이든 산이든 강가이든 아무런 때 아무데를 끌어도 선뜻 따라나서는 것이었다. 그는 말이 없이 묵묵히 걸었고, 항상 그의 얼굴은 침울하였다. 가끔 그러다가 외마디 비통한 고함을 잘 질렀다.
“아-”하고 나오는 외마디 소리! 그것은 언제나 친구들의 마음에 알지 못할 울분을 주었다.
(중략)
“무슨 뜻인지 모르나 마지막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운명했지요. 짐작컨대 그 소리가 마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는 듯 느껴지더군요.”
이 말은 동주의 최후를 감시하던 일본인 간수가 그의 시체를 찾으러 후쿠오카에 갔던 그 유족에게 전하여준 말이다. 그 비통한 외마디 소리! 일본 간수야 그 뜻을 알리만두 저도 그 소리에 느낀 바 있었나 보다. 동주 감옥에서 외마디 소리로서 아주 가버리니 그 나이 스물아홉, 바로 해방되던 해다. 몽규도 그 며칠 뒤 따라 옥사하니 그도 재사(才士)였느니라. 그들의 유골은 지금 간도에서 길이 잠들었고 이제 그 친구들의 손을 빌어 동주의 시는 한 책이 되어 길이 세상에 전하여지려 한다.
불러도 대답 없을 동주 몽규었만 헛되나마 다시 부르고 싶은 동주! 몽규!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강처중의 발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