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 가장 사랑한 책은 '아낌없이 줄 수 있는 나무'였다. 책을 소장하지 않았지만, 그 책을 가장 아꼈다. 이상하게도 그 책 떠올리기만 해도 항상 따뜻한 마음이 들었다. 자라서 냉장고 같은 사람이 되기를 두려워했던 그 시절 아낌없이 줄 수 있는 나무는 나에게 온기가 되어 주었다.
어쩌다 나는 그 책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기쁜 마음으로 책을 다시 손에 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무덤덤했다.
따뜻하기보다는 나무가 바보 같다고 느껴졌다.
'소년은 매번 받으려고만 하다니 참 이기적이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정말로 행복했을까
왜 항상 나무는 무언가를 나누어 주고 난 이후에 행복하다고 했을까.
나무는 소년을 사랑했을까
소년은 나무를 사랑했을까
누가 더 사랑했을까
사랑도 기브앤테이크가 명확한 시대에 나무와 소년의 이야기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부족한 것을 이야기하고 필요할 때만 찾아오는 관계.. 다 자란 어른이 된 자식을 아이처럼 챙기는 부모가 여전히 세상에는 많이 존재한다.
그것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관계인 것 같다. 안 그럼 내 것을 모두 내어주는 바보 같은 짓을 누가 할 것인지 가끔 부모와 자식과 같은 연인관계가 있기도 하지만 전부를 내어주는 것은 부모의 사랑과 희생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정말로 행복했을까
사랑의 크기를 굳이 비교하자면 주는 사랑이 훨씬 더 크고 단단해 보인다. 그렇다면 소년은 나무를 사랑하긴 했을까 하는 의문까지 들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나무에게 항상 먼저 다가온 것은 소년이었다. 소년도 나무를 사랑했다.
난 사랑하고 싶어서 정말 함께있고 싶어서 너무 많은 나를 버리고 왔다
난 이제 내가 없다고 니가 다 가졌다고 화를 내고 싶지만 니가 없다
바보같은 사랑을 했지 하지만 사랑은 바보같은 것 전부를 주고도 항상 미안해하고 매일 아쉬워하며 마지막엔 결국 혼자 남는 일
- 신승훈 나비효과 中
기브앤테이크가 명확한 시대, 아낌없이 줄 수 있을까
부모가 아니더라도 어른이 되어 가면서 사회에서 해야 하는 역할과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늘어난다. 책임과 의무만이 우선시 되어갈수록 삶에서 내 것은 점점 사라지고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버린 것처럼 밑동만 남은 허무한 마음마저 든다.
사랑한다고 해서 바보처럼 내 것을 모두 내어줘야 할까.
내 것이 없는 데 무언가를 나눌 수는 없듯이, 그동안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만큼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가끔 정말 아낌없이 주는 것처럼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저 사람의 마음은 어떤 모양일까 궁금했다.
정답은 없다.
기브앤테이크가 명확한 사람에게는 그만큼의 사랑만 주게 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더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만, 또 기브앤테이크를 잘못하면 바보가 되기도 한다. 관계는 참 어렵다.
신기하게도 자기계발서에도 기버이야기가 등장한다. 베풀어야 다시 더 크게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런 것이다. 주는 것을 아끼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답은 없지만, 소년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더 행복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