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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일만 Oct 27. 2024

악어 (1)

노일만 단편선 #16

전화가 온다. 그것을 빨리 받는다(중요하다). 수화기 너머의 상대방은 인삿말도 자기소개도 없이 곧바로 코드를 부른다.

“에이-쓰리쓰리제로에잇나인 대쉬, 엔-투세븐에잇.”

진규는 포네틱코드를 이용해 상대방의 말을 다시 반복한다.

“알파, 쓰리쓰리제로에잇나인 대쉬, 노벰버-투세븐에잇. 코렉트?”

“코렉트.”

상대방은 전화를 끊는다.

진규는 시스템에 ‘A33089-N278’을 입력한다. 절대 틀리면 안된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 시스템은 다음과 같이 메시지 창을 띄운다.  

    ‘Personal’의 ‘deadly’ 분류에 해당합니다. 컨펌하시겠습니까?  

진규가 엔터를 누르자 창이 사라진다.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알 수 없다. 진규는 전화 상대방이 누군지, 코드는 어떤 의미인지, ‘분류’란 무엇인지, 코드가 무슨 기능을 하는지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이곳 월터솔루션즈에 입사한 이래 진규가 받은 가르침이라곤 딱 세 가지였다. 반드시 전화를 받을 것, 벨이 세 번 울리기 전에 받을 것, 절대 코드를 틀리지 말 것. 전화가 울렸다.

“이-파이브포나인세븐 대쉬, 아이-세븐세븐제로제로.”

“에코, 파이브포나인세븐 대쉬, 인디아-세븐세븐제로제로, 코렉트?”

“코렉트.”  

    ‘Country’의 ‘daily’ 분류에 해당합니다. 컨펌하시겠습니까?  

진규가 엔터를 누르자 창이 사라진다.

그 다음은.




매니저는 에단 호크를 닮은 사람이었다. 젊은 날 잘 생겼던 에단 호크 말고, 나이를 먹은 뒤 어딘가 얍삽한 동네 아저씨 같은 용모가 된 에단 호크.


이곳 월터 솔루션스로의 첫 출근날, 호크는 몇 가지 지침을 내려주었다. 하루에 여덟 시간 근무이고 출근 시간은 이 주 간격으로 달라진다. 오전, 오후, 저녁으로 3교대 하는 식이다. 업무는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게 중요하다. 그 다음은 코드 입력이다. 절대 코드를 틀려선 안 된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

호크는 진규를 ‘폰 룸’이라는 곳으로 안내했다. 한 평짜리 작은 방인 폰 룸에는 책상과 의자, 컴퓨터와 전화가 놓여 있었다. 호크는 도움이 필요하면 메신저에서 자신을 찾으라고 한 뒤 자리를 떠났다.


전화는 불규칙하게 걸려왔다. 한 통도 오지 않는 날이 있는가 하면 일 분에 몇 통씩 오는 경우도 있었다. 전화 상대방의 억양도 다양했고, 통화 품질또한 일정치 않았다. 조용한 방에서 전화를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고 마치 네이탄밤이라도 쏟아지는 것 같은 전쟁터에서 다급하게 전화하는 것 같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전화를 빨리 받고, 코드를 틀리지 않는 것. 진규에게 중요한 것 오직 그것뿐이었다.


전에는 호기심이 들기도 했었다. 이게 뭘까? 나는 지금 무슨 일을 하는 걸까? 그러나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진규는 혼자서 ‘폰 룸’이라는 곳에 근무했고 다른 직원들은 개방형 사무실에서 서로 얼굴을 보며 일했다. 진규는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 것인지, 개방형 사무실의 직원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호기심은 점차 사그러들었다. 그리고 또래 친구들이 버는 월급의 두 배 정도를 고작 이런 일로 벌 수 있다는 게 상당히 만족스럽기도 했다. 부모님도 처음엔 ‘거기가 뭐하는데냐’라고 물으시다가, 회사 홈페이지에 쓰여 있는대로 “시스템 솔루션 업체예요”라고 말하자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퇴사를 결심한 건 최근의 일이었다. 어느날 퇴근 후 자취방 침대에 누워 있다가 생각했다. ‘인생이 이게 다가 아닐텐데.’

다음 달이면 만 서른이었다. 진규는 서른 살이 된 기념으로 세계일주가 하고 싶어졌다. 넉넉치 않은 형편 때문에 해외여행 한번, 어학연수 한 번 못갔던 진규였다. 벌써 이 년이나 월터솔루션즈에 다니며 차곡차곡 월급을 모았는데, 이번 기회에 바람도 좀 쐬고 시야도 넓히고 돌아와 좀 더 근사한 일이 하고 싶어졌다. 다녀온 친구들이 말해주었던 유럽, 남미, 북미, 동남아 등을 검색하면서 대충 비용을 헤아려보니, 빠듯하게 돌아다니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그래. 퇴사하자.’

다음날 메신저를 통해 퇴사하겠다는 말을 하자 호크는 딱 두 가지 질문을 했다.  


- 신T중하게 생각하신 거지요?

- 네.

- 퇴T사 후 동종업계 취업이 안되는 건 아시지요?

- 네.  

첫 글자 뒤에 T를 넣는 건 호크의 버릇이었다. 그가 왜 그렇게 타이핑하는지 역시 진규는 조금도 알 수 없었다.


호크는 사직원을 작성하라고 일러주었다. 시스템을 통해 사직원을 제출한 진규는 마지막으로 호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가기 전에 인사드리고 싶은데, 어디로 가면 뵐 수 있는지요?

그러자 메신저 하단에 ‘....님이 입력 중입니다’라는 표시가 떴다. 표시는 꽤 오래 머물러 있었다. 지금까지 호크는 무슨 질문을 하든 곧바로 답장을 했었다. 긴 메시지를 쓰는 것일까, 뭔가를 망설이는 것일까? 이윽고 표시가 사라지고 호크의 메시지가 창에 떴다.  

- 인사 나눌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또 만날 거니까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나서 진규는 회사를 나왔다.



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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