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에세이] 귀한 사람들의 집
요즘 광명시 도서관에서 강의를 하고 있어서 겸사겸사 근처에 사는 동생네 집에 놀러 갔다.
처음 도서관에서 연락이 왔을 땐 네 번이나 갈아타는 차편을 보며 여기까지 어떻게 갈지 몹시 근심했는데, 길은 두 번 만에 익숙해졌고 멀어서 좀처럼 갈 엄두를 내지 못하던 동생네에 들러 사람 노릇도 하게 됐으니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행운의 광명시다.
3년 전만 해도 동생은 나처럼 고요 속에서 홀로 살았는데, 그래서 둘이 한창 수다를 떨다가도 이야기가 끊기면 침묵이 불쑥불쑥 비집고 들어왔는데, 어제 가보니 동생이 사는 집은 생명으로 넘쳐 흐르고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멈춰도 꽁알꽁알 아기 옹알이가 들리고, 소파에서는 고르릉고르릉 고양이 소리가 들리고, 건넌방에서는 으어억, 하는 남편의 소리도 났다.
작고 귀여운 것으로 가득 찬 이 집에 남편이라는 요소는 몹시 이질적이었는데, 다행히 금방 떠나주셔서 집은 이내 사랑스러움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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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결혼한 지 벌써 2년이나 됐지만, 내겐 여전히 동생 집에 다 큰 남자가 있다는 게 몹시 낯설게 느껴진다.
왜 이곳에 남자가 사는 것이지? 하는 느낌인 건데, 물론 제부가 들으면 굉장히 황당할 것이고, 이곳의 진짜 낯선 존재는 나라는 사실도 잘 알지만, 그러나 나의 고유한 감각이 그렇게 느끼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생각해보니 올봄에 선영 작가님네 갔을 때도 집에 형부가 있었는데 그때는 형부의 존재가 별로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차이일까.
아마 언니네 형부는 나보다 어리고 동생네 제부는 나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언니는 만날 때부터 형부가 곁에 있었고 동생은 혼자서도 야무지게 잘 살고 있을 때 만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언니네 형부는 으어억 소리를 내지 않고 동생네 제부는 으어억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왜 남자는 중년에 접어들면 크악, 으어억 같은 소리를 내는 걸까. 아마 여기 내가 있소,를 뜻하는 사운드 시그널 같긴 한데, 좀 더 관찰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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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이제 막 백일을 넘겼다. 이때 인간은 생애 가장 귀여운 형태로 존재하게 되는데, 그 시기가 찰나처럼 지나가므로 매우 귀한 월령이라고 할 수 있다. 운이 좋았다.
특히 손이 예술이다. 뭐 이렇게 귀여운 게 다 있나 싶어서 펼쳐도 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내 손가락을 쥐여줘 보기도 했다. 안지는 못했다. 무겁다. 동생이 3개월 만에 7kg로 만들었다.
동생에겐 저런 귀여운 아기 인간이 한 명 더 있다. 지금은 친정어머니가 봐주고 계시는데, 제부가 육아휴직을 내는 내년 1월이면 이곳은 아기 두 명에 고양이 한 마리, 남편 한 명까지 더해져 온 집안이 생명으로 바글바글 끓어오를 것이다.
그 집을 진두지휘할 동생을 생각하니 벌써 존경스럽다. 동생의 모든 선택과 결심, 그것이 만들어낸 결과를 하나하나 지켜보는 기쁨이 크다. 앞으로 동생이 마주할 날들은 기쁨과 놀라움으로 가득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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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 적막하고 쓸쓸하지는 않았다. 유례없는 온난화의 따뜻한 손길 덕분에 우리 집에도 생명이 넘치기 때문이다.
방울토마토가 포도처럼 열렸고, 파프리카도 쑥쑥 자라고 있으며 식충이도 꽃을 세 송이나 피었다. 루꼴라와 로메인, 바질과 쑥갓도 열심히 커가는 중이다.
애면글면 키우고는 있으나 내 새끼들, 하지는 않는다. 잡아먹으려고 키우는 식량이기 때문이다. 딱 이 정도가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생명의 크기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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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선물처럼 도착한 책 한 권. 좋은 사람이 쓴 좋은 책이다. 주말에 열심히 읽어서 왜 좋은 책인지 알려드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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