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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Feb 22. 2021

자다 깨는 게 제일 나빠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자

하루 종일 이재하가 힘들게 했다. 울고 떼쓰고 어질고 소리 질렀다. 쫓아다니며 ‘아빠’를 수천 번 불렀다. 그 소리가 내 귀에 ‘방자야~’로 들렸다. 부르지 않아도 환청이 들려왔다. 딸에게 하루에 오십 번만 부르라고 했는데 알아듣지 못했다. 보통 이런 날은 맘마도 안 먹는데 의외로 밥은 잘 먹었다. 그래서 순간 좀 예뻤는데 낮잠은 빼먹었다. 밥심으로 졸음을 이겨낸 것 같았다. 아내가 퇴근하고 돌아오자 ‘재하가 오늘 낮잠도 안 잤는데 일찍 자지 않을까?’란 희망 섞인 이야기를 건넸다. 아내는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이재하를 믿어?」     


하지만 재하는 하루 종일 그렇게 아빠를 괴롭히더니 선물을 하나 주었다. 저녁 먹고 씻자마자 8시에 잠이 든 것이었다. 도리를 아는 아기였다. 알고 보면 효녀인 우리 딸, 키운 보람이 있었다. 아내는 딸기 우유 두 팩으로, 나는 카모마일 차 한가득으로 축배를 들었다. 인터넷 공구사이트에서 이사 기념 접대용으로 다량 구매했지만 코로나로 손님이 없어 찬장에 고이 있었던 카모마일이었다. 나는 재하가 깰 것 같으면 제 때 젖을 물리라고 엄마의 역할을 강조하며 차를 들고 내 방으로 왔다.      


오래오래 자거라


지난 성탄절에 나에게 스스로 줬던 게임 선물을 드디어 한번 해보려고 해설 동영상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등에 소름이 돋았다. 고개를 천천히 들어 거실을 보니 검은 실루엣 덩어리가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잠이 깬 딸을 아내가 안고 있는 것이었다. 속삭이는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추궁을 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젖은... 왜 안 물리고?」

「... 그럴 새도 없이 일어나 버렸어」

재하는 나를 보며 ‘아빠~아빠~’했다. ‘방자야~ 9시부터 쉴 수 있을 줄 알았냐?’라는 뉘앙스였다. 순간 속이 울렁거리며 어질어질했다. 몹시 화가 났다. 


거실에 계속 있을 수 없어서 우리 셋은 서둘러 방에 들어왔다. 재하는 다행히 완전히 깬 것은 아니었다. 아내가 딸을 품에 안자 나는 재빨리 문자를 보냈다.

「인디언 수유를 하시오!!」

「그게 뭐야?」

「잘 때까지 물리라고...」

「....」

아내도 보던 웹툰이 끊겨서 약이 올랐는지 필사적으로 재하를 얼렀다. 나도 딸의 발을 주물렀다. 그러나 재하는 삼십 여분이나 젖을 물고 있더니 벌떡 일어났다. 안마 덕에 혈액순환이 잘돼 피로가 풀린 모양이었다. 가슴 통증을 호소하던 아내도 몹시 화가 났다.  

   

재하는 어둠 속에서 다시 뛰어놀았다. 네가 자도 아빠는 나가 놀지 않겠다고 불외출 선언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평소대로 열한 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 이재하가 그날 행한 수많은 악행 중 자다 깬 게 제일 나빴다. 손이 부르르 떨려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새벽, 어제 미처 뽑지 못한 컴퓨터 코드를 뽑으러 방에 들어갔다. 책상 위에는 식어 버린 차 한 잔이 있었다. 순간 너무도 원통하여 카모마일을 원샷했다. 차가운 음료를 한 번에 마셨더니 머리가 띵했다. 오늘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예쁘니까 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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