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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Dec 15. 2021

인생은 실전이야

주사 맞은 부녀

아침에 일어났더니 아내 낯빛이 어두웠다.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아기 귀신이 가슴에 앉아 있는 뒤숭숭한 꿈을 꾸었다고 했다. 재하가 아마 새벽에 쮸쮸 달라고 올라타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 했더니 급 수긍했다. 내가 추가접종 맞는 날이라 염려가 되었나 보다고 생각돼서 약간 감동했다.

「괜찮아. 별일 없어. 혹시 그래도 뭐 무슨 일 있을까 봐 어젯밤에 이것저것 신상에 대해 써서 문서함에 넣어놨어. 쓸 일은 없겠지만 뭐 필요하면 써」

「알았어」

「근데 누가 보면 부끄러우니 암호는 걸어 놨어. 비번은 내 옛날 차번호야. 그게 뭐였냐면」

「... 몰라  귀찮아」 

언제 걱정했냐는 듯이 내 말을 자르고서는 아기 귀신에게 인사도 안 하고 발걸음도 가볍게 총총 사라졌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출근할 때 기분이 제일 좋아 보인다.      



재하는 내 마음도 몰라주고 쿨쿨 잤다. 원래 열 시에 주사 맞으러 가기로 했는데 재하는 일어나지도 않았다. 결국 어린이집도 째고 병원에 같이 가게 됐다. 부스터 샷 구경도 하겠다고 했다. 내가 인상 쓰며 아프다고 하는 걸 보며 웃었다. 비록 병원 오는 길은 안겨 왔지만 착한 우리 딸은 아빠 아야 하다고 하니까 집에는 혼자 잘 걸어갔다. 다만 웃으면서 「아빠, 아야」를 반복하는 게 약간 기분이 나빴다.     


남의 주사는 괜찮지...


밥 차리기 귀찮아서 덮밥을 시켜 먹었다. 재하는 새우만 좀 먹고 안 먹겠다고 도망 다녔다. 착하다는 말은 취소하기로 했다. 그다음에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좀 누워 있었다. 평소 같으면 재하가 놀자고 막 끌어낼 텐데 그날은 아기도 아빠가 아프다는 걸 아는지 자기 혼자 조용히 놀았다. 벽에 스티커 붙이는 걸 좋아해서 내내 붙이고 있는 듯했다. 심지어 나는 좀 잤다. 재하가 잠결에 들리기로 「쉬 쉬」 이러는 것 같았는데 일어날 수 없어 그냥 잤다. 조금 눈을 붙이고 일어나 딸과 놀려고 하니 냄새가 났다. 응가가 엉덩이에 잔뜩 있었다. 닦을 때 보니까 한참 전에 싼 거였다. 아까 쉬쉬 하던 게 응가했다는 뜻이었나 보다. 우리 딸은 응가했는데 아빠도 안 깨우고 혼자 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착한 것 같기도 하다.     



며칠이 흘렀다. 재하 얼굴에 뭐가 많이 났다. 잦은 알레르기와 아토피 유병자였던 우리 부부는 딱 보자마자 이건 병원 가서 주사 사이즈라는 걸 알았다. 딸이 아픈 것도 걱정됐지만 엊그제까지 감기로 어린이집 결장했는데 이틀 다녀오고 또 아프니 기가 찼다. 사실 내가 더 걱정됐다. 재하가 깨서 쮸쮸 달라며 킹콩처럼 가슴을 두드리면서 울었다. 엄마는 슬퍼하면서 갔다. 그런데 분명 눈물 흘리고 나갔음에도 베란다에서 보니 뒷모습이 가벼워 보였다.     



울부짖는 재하에게 오늘은 어린이집 안 가고 병원 가자고 하니 짜증을 그쳤다. 얼른 가자고 했다. 그간의 병원 놀이가 효과가 있었나 보다. 재하는 아빠가 추가접종 맞는 걸 보고 와서는 재미가 붙었는지 계속 주사 놀이를 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써먹겠다 싶어 의연하게 장난감 주사를 맞는 재하를 「우리이↗ 재↗↗하아는↗ 주우↗사도↗ 잘 맞네에에에↗」하며 마구 칭찬해 주었다. 물론 나는 그거에 찔리면 계속  「아이고오~」하면서 굴러야 했다. 그러면 또 재하는  「아빠 아야」하면서 흐뭇해했다. 



병원에 재하는 둥실둥실 안겨서 동네 구경을 하면서 갔다. 자기는 ‘아야’ 하기 때문에 안길 당연한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재하 또래의 아이를 만났다. 안겨 있는 재하를 보고 「아기네~」 이렇게 이야기했다. 병원에서 재하가 바닥에 발을 딛자 그 꼬마보다 5센티는 키가 컸다. 그 귀여운 친구는 당황하며 「... 아기 아니네」라고 읊조렸다. 우리 딸은 으쓱대며 내가 말은 못 하지만 키는 크다며 나를 키 재는 곳으로 끌고 갔다.      



의사 선생님이 알레르기라고 주사 맞아야 한다고 했다. 재하는 그쯤이야 하는 표정으로 주사실로 당당하게 들어갔다가 대성통곡을 하고 나왔다. 인생은 실전이라는 걸 약간 알게 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런 그림을 그리다니...


의사 선생님이 분명 이거 맞으면 잘 거라고 했는데 집에 와서는 재하는 계속 놀자 했다. 티브이도 보지 않겠다 했다. 아픈 날에는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합법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데 안 본다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한 총각 친구한테 전화가 와 자기가 요새 힘들다고 했다. 나도 애가 아파서 힘들다고 했더니 뭐가 어렵냐고 했다. 이 새끼는 애가 아프면  「아빠 나 몸이 안 좋아서 좀 누워 있을게」 이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열 받게 하지 말라고 하면서 끊어 버리고 재하를 보니 또 병원놀이 세트 앞에 앉아 있었다.      



한 손에는 주사기를 들고 나에게 얼른 오라며 손짓을 했다. 당분간 가까이 가지 않을 것 같았는데 어지간히 좋아한다 싶었다. 「우리 재하 의사 될 거야?」 이런 헛소리를 하면서 앞에 앉았다. 「선생님, 배가 아야 해요」라는 내 말은 듣지도 않고 갑자기 주사부터 내리꽂았다. 「아야」가 아니고 「으아아악」 소리가 절로 나오는 세기였다. 혹시 그 장난감에 내가 모르는 바늘이 그간 달려있었나 부터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아빠의 비명을 듣고 재하는 킬킬 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는 듯이 그제 서야 잠이 들었다. 



P.S: 그동안 애가 어린이집을 가지 않고!!! 가도 두 시간만 있다 오고!!! 집에서 아빠랑 있겠다고 개진상을 부려서!!!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ㅠ.ㅠ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제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약간 아주 약간 어른스러워져서 아침에 징징거리면서도 또 순순히 어린이집에 가더라구요. 아무튼 딸의 협조 덕분에 이렇게 오래간만에 글 올리게 되어서 아주 기쁩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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