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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하다 Apr 08. 2021

숨 고르고 살아가고자

지금 여기 멈추어 선다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세. 정말로 무섭고 힘든 일과 마주쳤을 때에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열까지 세는 거야. 겁먹거나 놀랐을 때에는 잘못된 결정을 내리거나 멀리해야 할 것을 찾게 되거든.* 


 우리는 숨을 고르지 않고 살아간다. 스스로 숨을 잘 들이마시고 내쉬고 있는지 확인할 시간이 없다. 요즘 부쩍 내 몸은 숨을 쉬지 않으려고 한다. 지하철을 탈 때 그리고 두려운 일과 마주쳤을 때 숨을 참는다. 숨을 꾹 참으면 무서운 지하철에 내 몸을 끼워 맞출 수 있다. 지독한 일이다. 살기 위해 의도적으로 호흡할 시간을 만들어야만 한다. 오늘은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라 점심을 거르고 뒷산에 갔다. 산을 오르다 몇 번을 멈춰 서서 주변을 살폈다. 평소 다니지 않던 길, 벚꽃이 진 자리에 피어난 붉은 잎사귀와 기와지붕을 넋 놓고 바라보면 동네 고양이를 만날 수 있다. 한창인 배꽃나무, 꽃사과나무, 개나리, 이름 모를 연두색 나무 잎사귀는 내 마음을 훔친다. 빼앗긴 마음을 돌려받으려면 한참을 바라봐야 한다. 


 오늘 내가 바라본 것들 : 새가 나무에 앉았다. 푸드덕 날아서 바로 옆 가지로 옮겨간다. 떨어지는 벚꽃 잎은 어디로 내려앉나 내 시선도 함께 내린다. 그제야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 뛰노는 소리, 지팡이 달그락 거리며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 까악 까악 까마귀 날아가는 소리, 뿅뿅뺙뺙쨕쨕거리는 예쁜 새소리, 사각거리는 연두색 나뭇잎 소리, 살랑거리는 봄바람 인사까지 듣고 나면 나도 숨을 고른다.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소오옵) 내쉰다 (후우우) 잠깐 산책하는 와중에도 살펴야 할 것이 이렇게나 많은데, 나를 너무 오랜 시간 돌보지 않았구나, 생각한다. 나에게 미안해서 퇴사를 생각했다가 우선 휴가를 쓰자고 다짐한다. 다음 주, 아니 그다음 주에는 휴가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모두와 친구가 되고 싶은 오로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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