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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번 더 안아주기 Feb 19. 2022

01 이제는 여기가 나의 '집'이구나

이제는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진다

한 달 동안의 달콤했던 한국 방문을 마치고 싱가포르로 돌아왔다. 이미 결정된 사실이었다. 갈 때는 넷으로 가지만 올 때는 셋 일 거라는 것. 남편이 육아휴직을 마치고 직장에 복귀했기 때문이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우리 부부는 중요한 소식을 정할 때 누구한테 언제쯤 어떤 상황에서 알리는 게 좋을지 논의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한국으로 떠나기 한 달 전 helper에게 먼저 알렸다. 그동안 남편이 하고 있던 많은 일들을 이제 그녀가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첫째. 어느 주말 저녁에 남편이 딸과 둘이 있는 시간에 소식을 전하고, 그날 저녁 아이를 재우면서 내가 아이와 조금 더 시간을 가졌다. 아빠가 회사를 잠깐 쉬고 싱가포르에 함께 오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라고, 그러니 아빠랑 같이 지낼 수 있는 시간 동안 사이좋게 지내고 떠나기 전에 고마운 마음을 꼭 전하기로 했다. 마지막이 우리 막내. 아직 모든 상황을 이해하기엔 어리기도 하고, 그동안 아빠랑 더 많은 시간을 보냈었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이야기를 할지 가장 고민이 되었다. 결국 막내는 우리가 싱가포르로 돌아오기 며칠 전에 소식을 전했다. 이미 소식을 알고 있던 첫째랑 '아빠가 한국에 있으면 좋은 점'도 list up 하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는데 예상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응. 알겠어. 근데 아빠 태양은 수명이 몇 년이야? 


앗. 태양한테 밀렸다. 아빠가 옆에 없다는 것의 의미를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가 설명해 주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부분이다. 


한국에 있는 기간 동안 처음 2주는 휴가였지만 나머지 기간은 일을 하면서 머물렀기 때문에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많이 바빴다. 남편은 남편대로 직장 복귀 후 하루하루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출국 전 날이 되어서야 우리는 '앞으로 펼쳐질 우리 가족의 새로운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내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아지트 같은 단골 술집에서. 

 

드디어 출국 날. 인천 공항에서 나도, 남편도, 아이들도 눈물을 잘 참았다. 첫째는 아빠한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아 편지를 썼다. '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이구나.'


그렇게 우린 싱가포르로 다시 돌아왔다. 머릿속에서 잠시 지워졌던 집안 곳곳에 대한 기억이 다시 살아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일을 하면서 아이 둘을 나 혼자 잘 돌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뚫고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졌다. 

아, 이젠 여기가 나의 '집'이구나. 

그날 밤 우리 셋은 아빠 없는 싱가포르 생활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회의를 했다. 이 아이들과 함께라면, 약간은 낯선 지금의 가족형태로 지내는 것도 잘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 한 번 해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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