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생각보다 할 만하다
아이와 등원하는 길,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내가 아이 손을 잡고 있는 게 아니라
아이가 내 손을 잡아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언젠가 내가 존경하는 분이 내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요즘 그런 느낌을 자주 받는다. 2년 차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도 물론 있겠지만 여전히 바쁘고 여전히 외로운 싱가포르의 생활인데 큰 어려움 없이 이 정도로 지낼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아이들 덕분이다. 혼자 있었다면, 아이들이 주는 에너지가 없었다면, 나는 1년도 채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딸은 태어날 때부터 엄마 바라기, 엄마 졸졸이였다. 나랑 둘이 있으면 순둥이가 되고, 맛있는 게 있으면 내 입에 하나 먼저 넣어준다. 며칠 전에는 딸이랑 같이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책을 하나 읽고 자겠다고 해서 그러라 했고, 나는 읽지 않은 메일이 한가득이라 딸이 잠들고 나면 다시 책상에 앉아서 일을 더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책을 다 읽기를 기다리다 내가 먼저 깜빡 잠이 들었다. 딸이 나를 조심스레 깨우다가 내가 잘 못 일어나니 "엄마, 그럼 5분 더 자. 내가 5분 더 책 보고 깨워주고 잘게." 한다. 잠결에 듣는 그 목소리가 참 달콤했다. 5분이 지나고, 딸은 나를 깨워준 다음에 1분도 안되어 금방 잠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 45분. 이 늦은 시간까지 얼마나 졸렸을까.. 미안함과 고마움이 밀려들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혼자 뒹굴뒹굴 누워있다가 스르륵 잠이 들고, 혼자서도 꽤 오래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능력자이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하고 물으면 언제나 "둘 다."라고 대답하는 중도의 대명사이다. 아직 혼자 자는 걸 무서워해서 아들이 잠이 들 때까지 함께 있다가 나오는데, 며칠 전에 갑자기 "엄마, 나는 엄마가 참 좋아. 다시 태어나도 엄마 아들로 태어날 거야." 한다. "고마워, 우리 아들. 이런 말은 어디서 배웠을까~?" 하면서 태연하게 넘겼지만 예상치 못한 아이의 말에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물론 늘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만 있는 건 아니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제한 때문에 번번이 실랑이를 해야 하고, 같이 붙어 있으면 5분이 멀다 하고 싸움이 시작되는 그야말로 '흔한 남매'인 아이들이다. 그래서 지금의 다소 안정적인 시기가 오기까지 나의 육아 동반자들과 수많은 고비를 함께 넘어야 했다. 그동안 쏟은 눈물이 몇 트럭은 되리라.. 역시 시간은 많은 것을 잊게 한다.
아무튼 오늘의 나는,
아이들 덕분에 웃고,
아이들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고,
아이들과 더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기 위한 방법은 뭘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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